이창동 <오아시스>
이 말은 나에게 있어서 또는 누군가에게 있어서 주체와 객체를 통틀어서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종두와 공주는 유사한 점이 너무나도 많다. 사회와는 단절된, 소외된 개인으로서 '사회'라는 구조와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이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어떠한 조건 없이, 이유 없이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것에서 그들은 묘한 끌림을 느꼈을 것이다.
종두의 기괴한 행동은 그 물줄기를 따라 더 올라가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가 가진 죄책감으로 공주의 집을 들리는 것을 보면 어떠한 책임감과 순수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다 큰 종두에게 다그치고 나무라는 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오아시스는 종두와 공주를 대변하는 메타포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상상 속 유토피아이다.
단절된 하나의 식생을 이루는 것처럼 소외되어 보이지만 사람들은(엄밀히 말하는 가족) 갈증과 필요를 통해 그것을 '이용한다.'
영화학자 토머스 샤츠는 『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에서 멜로드라마를 '순수한 개인(보통 여자)이나 커플(보통 연인)이 결혼, 직업, 핵가족 문제들과 관련된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환경에 의해 희생되는 대중적인 연애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한국 고전 멜로 영화에는 약자로서 여성이 존재하고 그들의 억압 기제를 바라볼 수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치, 경제, 역사가 달라지듯 영화의 장르에 있어서도(단순히 과자 같은 영화도 많이 나왔지만)'오아시스'를 통해 변화를 느낄 수 있는데 종두와 공주가 약자로서 그들의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2000년 당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멜로 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정말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였을까? 하지만 사랑의 패러다임과 로맨스물에 대한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잊혀 가는 아름다움, 희생에 대한 물음은 아니었을까?
내가 아직 무엇인가를 평할 만큼 영화를 많이 본 것도, 정통한 것도 아니지만 영화를 통해 나는 사유해 나가고 있다. 그것이 리얼리즘으로 장식된 것인지, 네오리얼리즘으로 바라본 현실인 것인지를 떠나 생각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느끼게 하는 것에 좋다.
끝나가는 한 한기를 돌아보며 '한국영화사'라는 수업을 통해 한국 영화의 역사와 고전작품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2000년대의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생각들을 끄적거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