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괜찮았는데 지금의 나는?
15년이 넘는 나의 회사 생활에서 외국인은 주변에 항상 있었다. 아주 잠깐 한국의 공무원 사회에 속했던 몇 달을 제외하면 (이때도 외국 법률을 번역하는 일을 하긴 했다) 늘 외국인들과 일을 해왔기에 해외 취업도 큰 거부감 없이 겁 없이 뛰어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괜찮았고 지금은 괜찮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그때의 난 외국인이었고 지금의 난 현지인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내 정신건강을 위해 내가 영어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내가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를 해주는 거다
한국어를 상대방이 못할 테니 영어를 할 수 있는 내가 기꺼이 해준다는 식이었는데 어찌 보면 궤변이지만 이런 마인드가 자신감을 갖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이런 마음으로 외국인 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도, 미국 회사에서 한국 법인 직원으로 일하거나 중국 유럽 싱가포르 등지로 파견을 나가서 일할 때도 괜찮았다.
일본에서 일할 때도 일본인 직원들은 모두 일본어를 쓰는데 윗사람들이 영어가 편한 사람들이다 보니 그들을 위해 영어를 사용하는 거라 내 영어가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는 현지 직원으로 고용된 영국 회사의 직원이다. Native speaker라고 속이지도 않았고 인터뷰를 모두 거쳤으니 내 영어 실력이 영국인과 같은 실력이 아니라는 것도 모두가 알고 취업을 한 것이지만 계속해서 영어로 주눅이 들게 된다.
더 이상 내가 영어를 해주는 거다라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영어를 쓰는 게 당연한 조직이다 보니 내 마음가짐은 정말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예전 회사들에선 영어를 네이티브로 쓰지 않는 외국인이 다수였다면 지금은 외국인이 지극히 적은, 어쩌면 나 혼자인 상황이기에 다 같이 눈빛으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없다.
싱가포르에서 10년을 살다가 최근 영국으로 이주한 분과 대화를 하다가 크게 공감을 한 이야기가 있었다. 싱가포르는 공용어는 영어이지만 거주하는 사람들 중 외국인의 비율이 높고, 싱가폴리안이더라도 거의가 중국어를 사용하는 가정 출신이다 보니, 모두가 영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영어는 the first language는 아닌 특이한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싱글리쉬라는 새로운 영어가 생겨나고 영국인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법한 문법 파괴의 문장과 표현이 넘쳐난다.
그런 곳에서 10년을 영어를 사용하며 지냈더니 영국에서 영어를 하려니 말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특히나 발음이 너무 달라서 힘들다는 그분의 이야기였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외국인이 대부분인 상황과 나만 외국인인 상황에서의 언어 수준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다른 것이다.
그때의 외국인으로 지내온 내가 있기에 지금의 현지인으로 채용된 내가 있는 거라고 믿는다. 한국에서 산 시간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을 외국에서 지냈고 전체 외국에서 보낸 시간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시간을 영국에서 보내는 중이다. 시간이 켜켜이 쌓이더라도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열심히 떠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