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를 대하는 태도
미국 유학 시절, 나는 FDA 연구소에서 일을 했다. 다인종 사회이다 보니 각종 음식이 점심시간에 등장했다. 나 역시 김치를 최대한 냄새나지 않게 싸가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인도 카레 냄새에 한국 음식 냄새 정도는 다 묻혀버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두가 크게 눈치 보지 않고 전날 남은 음식을 가져와 편히 먹는 분위기였다.
한국 회사를 다닐 때는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다 보니 일하면서 점심시간 전까지 간단히 먹을 고구마 사과 그리고 떡 등을 가지고 다닌 거라 냄새 걱정은 크게 없었다. 중국에서 일할 때는 워낙 중국 음식을 외국인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고 또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중국 친구들도 많았어서 컵라면과 김치 정도는 회사에서 준비해 주셨다. 그럼 그날그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반찬을 밥과 함께 가져다가 김치랑 또는 라면까지 함께 먹곤 했다.
영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할 때는 한참 디톡스에 빠져있던 터라 아침으로 아보카도 스무디를 갈아서 들고 출근했다가 점심때는 샐러드와 간단히 샌드위치 한 조각 정도를 먹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직장 생활은 코로나와 재택근무로 출근을 10번 남짓밖에 하지 않아서 얘기하기 어렵지만 회사 카페에서 500엔 벤토를 팔아서 그걸 사 먹거나 가까운 편의점에 다녀오기도 하고 배고플 걱정할 일은 전혀 없었다.
서론이 길었다. 영국의 회사는 어떨까?
대부분 정말 간단히 싸 오거나 테스코 등의 슈퍼애서 밀딜을 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가서 사 먹어봤자 거의 샌드위치 종류이다 보니 사다 먹는 의미가 없어서 나는 달걀을 활용한 메뉴로 도시락을 싼다. 달걀과 치즈를 넣고 랩을 준비하거나 낱개 포장된 빵과 삶은 달걀 그리고 과일 야채로 샐러드를 준비해 가기도 한다.
우리 팀원들을 봐도 egg and soldier (반숙 달걀에 스틱 모양으로 자른 토스트를 찍어먹는 메뉴), 샐러리 스틱과 훈제연어를 사이에 끼운 샌드위치, 수프 등 정말 간단한 메뉴를 먹고 육체노동을 하는 일이 아니니 이 정도 열량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건장한 남자 동료도 단백질 셰이크 한잔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감자칩 한 봉지로 대신하기도 하는 걸 보면 점심 식사를 대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일반 콜라에는 비만세를 적용해 다이어트 또는 제로 콜라보다 비싼 가격을 적용하고 절대 할인도 하지 않는 나라이니 점심을 필요한 에너지만큼만 섭취한다는 논리가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아이들의 학교에서의 급식만 보더라도 얇은 빵 사이에 치즈 한 장 또는 햄 한 장을 끼워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한참 자라나는 남자아이들에게 버거 반쪽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랐다. 하굣길 아이들을 보면 모두가 배고프다 아우성이고 부모들은 아이 입에 간식을 넣어주기 바쁘다.
간혹 아이들이 원해서 도시락을 싸 오더라도 워낙 다양한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들과 선생님도 많이 있으니 견과류는 학교에 들고 가는 것 자체가 금지이고, 가져온 음식을 나눠 먹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이다. 물론 내가 있는 곳이 런던이 아니라 주변에 먹을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것도 크게 한몫하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런 분위기가 남아있는 건지 회사에서도 동료들과 같이 나가서 점심을 사 먹고 다시 오후 일과를 으쌰으쌰 다지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늘도 나는 아이 픽업 때 제공할 간식을 가방에 넣어두고 간단한 레디밀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으며 이들의 삶에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