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희수 Feb 12. 2022

청결

너의 청결과 나의 청결은 달랐다

누군가 나에게 청결하냐고 묻는다면 '글쎄'라고 대답할 것 같다. 평소 청결하면 내 몸과 의복에만 신경을 써왔기 때문이다. 


버츄카드 '청결' 첫 문장은, 

몸을 자주 씻고 주위를 깨끗하게 정돈하고 간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변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간수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내 눈에 더러우면 정리한다. 내 눈에 괜찮으면 괜찮다. 그러니 청결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어질르는 것도 좋았다. 나도 엄마가 되었구나 싶었다. 아이를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좋았다. 아이의 창의성이 길러진다 생각하니 뿌듯했다.



그랬는데, 12살이 된 아들이 거실에 3, 4군데 포켓몬 카드를 뭉텅 거리로 쌓아 놓는 것을 보면 심기가 불편하다.


 "치워라!"라고 말하지만 돌아오는 건,

"1주일만 참아줘." 또는 "내일 할게." 라며 늘 미루었다.


결국, 보기 싫은 내가 치웠다. 


눈에 보이던 심란한 것들이 사라지니 기분도 좋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 한 자리가 미소 짓는 것 같다.

내가 하면 되는 것을 아들에게 치우라고 강요하고 있었던 거다. 


기분 좋은 것도 잠시였다. 이것도 자주 반복되니 싫었다. 아들의 놀잇거리 중에서 하나인 포켓몬 카드가 나는 싫어졌다. 치우는 건 내 몫이니까. 


청결 카드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노** 님이 말해준다. 아이가 놀고 난 자리를 치웠더니, 

"엄마가 내 놀이터를 부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 맞다. 엄마가 정돈했던 곳은 아이의 놀이터다. 아이가 만든 세계가 부서지는 느낌이었겠구나.' 




혹시, 나는 내 아이의 놀이터를 내 마음대로 치운 것은 아닐까? 나의 청결이 아들의 놀이터를 부숴버린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꼭 그랬던 것 같다. 뒤늦게 이 생각이 나를 후려친다.


"시현아, 거실에 어질러 있던(사실 내 생각에) 포켓몬 카드를 엄마가 치웠는데, 넌 기분이 어땠어?"


"괜찮아. 엄마가 치우라고 했는데, 내가 안 치웠잖아. 다시 정리하면 돼!"


정리!

정돈이다.


청결을 위한 다짐 속에 있는 문장,

나는 내 물건과 내 주위를 잘 정돈합니다.


 내가 어지럽게 봐왔던 그 장소는 아들이 정돈해 놓은 것이었다. 2, 3군데 뭉터기로 쌓아둔 카드 뭉치를 자기 방식대로 정돈해 놓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들이 놀다가 사라지면 내 방식대로 정돈한다고 박스에 모조리 담았던 것이다.



춥기 전에는 포켓몬 카드가 있던 장소는 베란다였다. 베란다에 모아두었던 것이 날이 추워지자 거실로 옮긴 것이다. 그래 놓고는 필요한 카드가 있으면 뭉치들 중에서 찾아서 이용했던 거다. 


내게 눈에 안 보이도록 깔끔하게 정돈한 것이 나의 청결이었다면,

박스 속에 쌓여 있던 포켓몬 카드를 거실 바닥에 군데군데 종류별로 분류해 놓은 것은 아들의 정돈이었다.


고무줄로 묶어 모아놓아도 될 것을 굳이 바닥에 모아놓은 이유는,

 

"그게 더 빨리 찾고, 쉽게 찾으니까!"


나는 아들의 놀이터를 파괴하고, 아들이 정돈해 놓은 것을 내 방식대로 어지럽혀 놓고 있었다. 그동안 고무줄로 묶어서 보관도 해보고, 작은 상자들을 요구하던 아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들이 정돈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적용해 왔던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겨울에도 춥지 않고 내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초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