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하는심해어 May 23. 2024

터져버린 둑

갑작스레 난치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12월 말부터 얼굴 피부가 이상했다. 

생전 여드름도 잘 안 나던 피부였는데 결혼식 메이크업을 받아 뒤집어졌겠거니,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밤낮으로 수분을 보충하고 관리하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피부과에 가게 됐다.


처음 갔던 피부과에서는 5초 쓱 보고 항생제만 투여해 줘서 일주일간 꾸준히 약을 복용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차도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다시 피부과를 알아보다가 집 근처에 있는 허름한 동네 피부과를 찾았다. 

그곳에서 나이 지긋하신 원장님께 한소리 들었다. 

"피부를 낫게 한다고 이것저것 바르는 게 더 안 좋아요.
아무것도 바르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

이것저것 바른 나로서는 너무 뜨끔했고, 그곳에서 처방받은 2주 치 약을 들고 나왔다.


그 후로 나아졌는가, 아니다

다음 피부과 방문에도 차도가 전혀 없었다. 

액체로 된 스킨, 선크림 등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고 오로지 로션 하나만 바르고 약도 꼬박꼬박 먹었는데 피부는 나아지지 않았다. 점점 발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모양새였다.


그러던 와중에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업무가 터지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주요 인력들이 장기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고, 모든 백업은 갑작스레 나에게로 다 몰리게 되었다.

주말에도 집에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을 했다.

자기 전까지도 일 생각, 눈 뜨자마자 일 생각.

그냥 머릿속에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미친 듯이 머리만 붙잡고 일에 매달렸다.


이게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욕심이었을까.

그날은 외부일정이라 새벽 3시부터 현장에 나가있어야 했다.

전날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출근을 했고, 일에 대한 불안함과 신경 써야 하는 것들 때문에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종일 서서 일해야 했다. 그리고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나마 큰 프로젝트를 넘겼기 때문에 마음 놓을 법도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완벽히 마무리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았고 그날 밤에도 잠도 깊게 자지 못한 채 눈감고 되짚어 보며 기억나는 todo list들을 정리했다. 30분마다 떠오르는 것들을 그때그때 적었기에 잠은 거의 자지 못했다.


그다음 날 아침, 피부는 나아지지 않은 상태였고 되려 얼굴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이렇게까지 부어본 적도 없고 잘 붓지도 않는 스타일인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그리고 두 다리도 엄청 붓고 무릎에 통증도 느껴졌는데 꼭 3일 내내 서있었던 것 같은 붓기와 통증이었다. 

진짜 무리해서 체력도 한계가 왔다보다 생각했으나 특이점이라고 느낀 부분은 양 발부터 종아리까지 붉은 반점들이 빼곡하게 올라와있었던 거였다.

이상했다. 알레르기 같은 반응은 아닌데 반점들이 계속 번질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피부과 예약이 잡혀있어서 피부과에 문의해 봐야 생각했다.


원장님과 얼굴 피부를 먼저 보면서 약이 이렇게 안 듣나 하고 의아해하셨는데,

일단 좀 더 지켜보자고 하고 진료를 마치려는 순간 조심스럽게 다리 쪽 반점들에 대해 직접 보여드리며 여쭤보았다. 

그걸 본 원장님은 순간 놀라시면서 무릎 통증은 없는지 물으셨다.

나는 속으로 '에? 피부과랑 무릎통증이랑 무슨 상관이지?'

실제로 무릎통증이 심했고 그저 전날 오래 서있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기에 원장님이 묻지 않았더라면 절대 먼저 말하지 않았을 부분이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무릎 통증이 좀 심하고 붓기도 갑자기 심해졌는데 연관이 있나요?"


교수님은 심각하게 보시더니 일단 모레 피부과 진료를 다시 잡아주긴 하겠으나,

당장 내일이라도 통증이 더 심해지면 응급실에 가라고 하셨다.

'응급실이요???????'

원장선생님은 아직 확신할 수 없으니 일단 몸상태를 잘 살피라 하셨다.

그렇게 의문만 남기고 회사로 출근을 했다. 뭔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렇게 다음날 오전에 몸 상태가 더 안 좋았다. 몸살기가 온 것처럼 몸은 무거웠고, 얼굴 부기와 발진은 가라앉질 않았고 다리의 부종과 무릎의 통증을 잘 걷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붉은 반점들은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몸상태가 안 좋아서 재택으로 돌리고 싶었으나 출근해야 한다는 대표의 말에 몸을 힘들게 끌고 출근을 했다.

회사에서도 잘 걷지 못할 정도여서 결국 점심을 거르고 오후에 퇴근을 했다.

퇴근길에 통증도 그렇고 어제보다 심하면 심했지 나아진 부분이 없었기도 했고 피부과원장선생님의 우려 섞인 한마디가 뇌리를 다시금 스쳤다.

"당장이라도 통증이나 증상이 심해지면 응급실로 가세요"

진짜 못 참을 정도는 아니어서 집 근처에 다다를 때까지도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 상태가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닌데..? 오랜만에 일찍 퇴근했는데 그냥 집에서 푹 쉬고 다음날 피부과 가면 되잖아? 계속해서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나온 김에 병원을 가보자고 마음먹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은 여전히 문전성시였고 나는 어리둥절하게 접수를 마쳤다.


응급실 선생님들이 나를 보더니 의아해하면서 어떤 일로 왔냐고 물었고 나는 그간 있었던 증상들을 얘기했다. 그리고 진행된 혈액검사. 베드에서 가만히 누워서 결과를 기다리는데 의사 선생님이 급하게 오시더니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다.

"혈뇨를 보시고 계시네요!? 혈액수치도 지금 문제가 많습니다."

네? 나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생리 중도 아니었고 소변색을 매번 확인하면서도 혈뇨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괜찮은 것 같은데 수치가 그렇게 안 좋나..??

갑자기 선생님들이 분주해지셨다. 류머티즘내과와 피부과에 협진을 넣어 교수님들 만나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베드 채로 피부과로 이동했고 피부과에서는 의사 선생님들이 모여 내 증상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

'... 그게 확실한 것 같은데..?', '증상이 너무 명확해', '수치로 봐도 그렇네요'

그 후 선생님이 류머티즘 과도 봐야 한다며 응급실에서 더 대기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대기하다 보니 류머티즘 교수님이 오셔서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현재 수치과 증상으로 루프스가 의심됩니다. 일단 바로 입원하셔야 해요."


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제가요? 갑자기요? 

추가 검사들을 위해서 일단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추가검사라고 하니 뭐 해봤자 2-3일이겠지 하고 그리고 어차피 내일부터 주말이니 일 걱정을 두고 편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애 첫 입원이란 걸 하게 되었다.


입원 병동에 자리가 없어서 암환자 병동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항암치료하는 50-70대의 분들이 날 맞이해 주셨다. 영문도 모른 채 입원했고 병원생활 한 번도 해보지 않아 더욱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렇게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음날 새벽부터 CT에 엑스레이에 추가 검사를 위해 미친 듯이 피를 뽑아갔다. 그리고 내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부어갔고, 발은 코끼리 발처럼 두 배 이상이 되었다. 

그리고 검사 결과와 함께 찾아온 교수님들, 

현재 빈혈 수치 너무 심해서 수혈이 필요하며 단백뇨 수치가 너무 높고 혈압도 너무 높은 상태, 그리고 심장과 폐에도 물이 차있는 상태라서 숨쉬기 힘들 수 있다. 부종과 붉은 반점은 상체까지 올라올 수 있으니 일단 이것을 잡아야 하는 상태라고 하셨다. 이러한 증상으로 루푸스 의증이 확실하며 신염인지는 추가 검사를 통해 받아봐야 한다. 일단 산정특례는 등록이 가능하니 걱정하지 말라.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에 어벙벙하게 네네 하며 들었다. 산정특례는 뭐고 루푸스는 뭐야????????

이후에 스테로이드 링거를 맞았으며, 심장 초음파 검사, 골수검사까지 잡혔다. 퇴원은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일단 수혈을 처음으로 받으면서 무덤덤한 채로 결국 회사와 지인들에게 알렸다. 갑작스러운 입원소식에 모두가 놀랐다. 하긴 나도 아직까지 믿을 수 없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다음날부터 검사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진짜 이상해지긴 했다. 몸상태는 더더 심해졌다.

혈관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부어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간호사들이 혈관 찾기에 애를 먹었다. 기본적으로 한 번에 못 찾아서 두세 명의 간호사가 교체되어 찔러야 겨우 피를 뽑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검사 때문에 혈액을 자주 채취해야 했는데 혈관을 찾을 수 없어 찌르고 또 지르고.. 양팔, 손등에 멍이 계속에서 커져갔다. 

또 숨 쉬는 게 힘들어졌다. 누워서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숨쉬기가 힘들어서 밤에는 앉아서 자야 했다. 고혈압은 있어본 적이 없는데 혈압도 계속 높게 나오고 일어나면 1kg씩 늘어갔다. 평생 15년 동안 몸무게 변화 없던 몸인데..??? 이럴 수 있나? 오히려 먹는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몸무게가 늘어가지? 진짜 이상했다.

(나중에 몸무게 변화를 추적해 보니 +10kg > -15kg의 변화를 보였다. 무려 한 달 만에 말이다..)


몸의 이곳저곳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기분이었다. 그 가운데 이해가 필요했고 왜 내가 산정특례를 받게 되는지 병에 대해 알아보면서 루푸스가 자가면역질환이고 난치병인걸 알게 되었다. 난치병,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평생 관리해야 한다고???? 갑자기? 왜??? 왜 이병이 나에게 찾아온 걸까. 난 유전인자도 없었고, 그렇다고 햇빛과 친하지도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몸이 힘들어지자 멘탈도 깨지기 시작했다.

밤에 고통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었고 그냥 눈물만 나왔다. 나는 조용히 숨죽여 울었다.


내가 있던 병동의 항암치료받는 분들은 2-3일 치료받고 퇴원하기에 6인실 병동의 대부분이 새로운 환자로 채워졌다. 다들 날 의아하게 쳐다보았고 그 층의 유일한 젊은 환자라 더 시선을 끌었다.

일주일이 훅 지나고도 수치는 나아지지 않았고 퇴원은 또 미뤄졌다. 이번엔 면역수치가 더 떨어져서 멸균식을 먹게 됐고 팔에 수많은 멍을 뒤로하고 결국 팔에 주사관을 삽입했다. 

결국 신장 조직검사가 급하게 잡혔다. 설명으로만 들었을 때는 혈액 채취하는 것만큼 간단해 보였는데, 다음날 나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새벽부터 준비하고 오전 일찍 조직검사를 진행했는데 조직검사 종료 직후부터 통증이 심해졌다. 원래도 신장조직검사가 바늘을 직접 깊게 삽입하기 때문에 내부 출혈이 불가피한지라 6시간 지혈만 잘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의 통증이 심상치 않았다. 오래도록 검사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직접 지혈했음에도 내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입원실로 옮겨져서 수혈에 진통제, 산소호흡기까지 달고 간호사 3명이 번갈아 붙어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냥 숨을 쉴 수 없었고 참을 수 없는 통증에 과호흡도 오면서 그저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 현장에서 되려 같은 병실의 치료받는 암환자분들이 더 당황했을 지경이었다. 

'아니 멀쩡히 검사하러 간 아가 반나절만에 왜 중환자가 되어서 왔어!!??'


그렇게 나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12시간을 꼬박 누워있었고 겨우 안정을 찾게 되었다.

24시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소변도 누워서 봐야 했다.


무사히 고비를 넘기고 깨어나서도 수혈을 이틀 동안 받아야 했다. 내 경우엔 신장 조직검사 후에 내부 출혈이 심했어서 통증도 그만큼 동반했던 것 같다고 한다. 

(수혈을 이때 4팩을 이틀에 걸쳐서 받아야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지 혈액은행에 혈액도 똑 떨어져서 지정헌혈자도 구해야 했다. 지인 중에 내 지정헌혈번호로 헌혈을 해야 내가 혈액은행에서 피를 받을 수 있는 프로세스로 전국적으로 피가 모자란 상태였다. 겨우 지인들한테 연락을 돌려 4명을 구했고 나를 위해 헌혈을 해 주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20살 중반까지 이미 헌혈 50번을 해 금장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혈액기부를 했는데도 막상 내가 필요할 때 도움받을 수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고 씁쓸하기는 했다.)

이제 골수 검사, 신장 조작검사 결과가 나오면 됐기에 퇴원을 해달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한 지 3주 차였다. 

이제 더 이상 할 검사도 없고 약으로 치료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입원하면서 검사 결과 기다리기엔 2-3주나 기다려야 했기에 그냥 집으로 가있기로 했다.

그렇게 3주간 다이내믹했던 첫 병동 생활은 일단락됐다.



병원 퇴원한 지 하루 만에 발등이 찢어질 정도로 부어버렸다. 쉬어도 모자랄 판에 3주간 쌓인 집먼지, 곰팡이들, 밀린 이불옷빨래 등 청소로만 하루를 보냈고 이에 너무 무리해 버린 탓이었다. 그렇게 뒷날 앓아누웠지만 마음만은 후련했다. 여전히 약은 버겁고 식단 조절 탓에 먹는 것은 제한적이고 잠도 편히 못 잤지만 그래도 집에 와서 편했다. 

(아무래도 병원 다인실에서 나는 소음들과 잠꼬대, 코골이들은 잠귀 밝은 나에겐 다 불편함 뿐이었다. 게다가 새벽 4시에 혈액검사 7시에 혈압검사.. 도대체가 깊이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게 퇴원한 지 3일 만에 일은 터지고 말았다. 

낮부터 등이 가렵더니 조금씩 뭔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팔 왼팔로 크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첫날엔 참을 수 있는 가려움이었고 임시방편인 물파스로 참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이튿날 새벽 2시 몸에서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열감과 함께 발진이 온몸을 뒤덮었다. 

상체 뒷면 전체를 덮고 앞면까지 다 덮었으며 미칠듯한 가려움에 죽는 줄 알았다. 1월이었으니 한겨울이었는데 그 야밤에 아이스팩을 억지로 대고 얼음물에 적신 수건을 몸에 두를 수밖에 없었다. 움직일 힘도 없었고 그냥 눈 감고 이대로 잠들고 싶었고, 몸도 지쳐있는 상태에서 덮쳐진 발진과 가려움으로 나는 날이 새도록 고통스러워했다. 그저 이 밤이 빨리 지나고 차라리 발진이 빠르게 덮여서 가라앉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뜬눈으로 고비가 지나고 붉은 발진이 지나간 자리는 착색된 것처럼 검붉게 흔적을 남기고 하체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지난밤 겪었던 고통에 비하면 이것은 버틸만한 수준이었다. 고비가 지나가긴 했구나.. 응급실 가지 않고 버텨낸 게 용했다. 

그래도 하루만 더 있으면 외래에 가니 고비도 이겨낸 김에 그냥 기다렸다. 그러고 간 외래에서 교수님은 기겁하셨다. 지난 발진의 흔적을 기록한 사진들을 보시며 이걸 어떻게 버텼냐며.. 왜 응급실을 안 갔냐며.. 

약물 알레르기가 확실하다고 하셨다. 

우선 신장조직검사 결과로 루프스 신염 4형으로 확진이 나왔기에 신장 치료도 긴급하지만
알레르기가 너무 심했기에 알레르기부터 잡자고 하셨다. 
그렇게 알레르기 주사도 맞고 앞서 처방받았던 약 중에 최소한의 약만 남기고 알레르기를 일으킬만한 약을 일단 다 중단했다. 



이렇게 다이내믹하고 롤러코스터처럼 천국과 지옥을 오간 1월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2024의 액땜을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건가? 나보다 더한 액땜을 할 수도 있는 걸까? 

스트레스 과로 등 내부에서 참다 참다못해 신경이 이상을 일으켰고 내 신경세포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으며 같은 동족인 내부 세포들을 외부 침입자로 오해하고 죽이면서 몸 이곳저곳을 공격한다. 

루푸스가 무서운 것은 언제 어디에서 또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냥 계속 조심하면서 살펴가면서 관리하면서 달래줘야 하는가 보다

사실 루푸스는 진단이 어렵다고 한다. 증상이 나타나더라고 1-2개의 증상이기 때문에 다른 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고 증상도 미비해서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10가지의 증상이 있다면 8-9가지가 한 번에 둑 터지듯 와다다다 터져버린 거였으니 말 다한거지..

그저 일만 했을 뿐인데, 담배 술도 안하고 오로지 일에만 몰두했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난치병을 얻었고, 건강을 잃었고, 미래가 어두워졌고, 직장을 잃었다. 

헛웃음만 나오는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이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책망하고 싶어도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그나마 뇌 쪽으로 공격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루푸스 환우들 사이에서 루푸스는 스트레스로 인한 병이라고 했다. 

루푸스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완벽주의자의 병이라고 했다. 

내 생각으로는 30대의 가임기 여성이 주로 걸리는 이유는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 순간, 정점에 있는 여성들이 책임감과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욕구로 똘똘 뭉쳐 스트레스를 감수한 채 일에 몰두하며 건강과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왜 그렇게 나 자신을 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했나 싶다. 스트레스라도 풀 취미를 만들던가.. 풀 데도 없긴 했지.. 뭐가.. 뭐가 그렇게 중한디!!!!!!!

그저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제발 나처럼 되지 않기를, 제발 자기 자신을 먼저 지키면서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이 기회로 푹 쉬고 몸 좀 추스르고, 내가 어디에서 내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도 고민해 보고.. 그렇게 한 템포 쉬어가야겠다. 

사실 다시 일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너진 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그저 막막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3 관계의 종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