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좋을 날

나이듦, 예식, 삶의 태도

by 파도


나보다 세살 많은 사촌오빠가 결혼을 한다.

축하할 일이다.

엄마의 일곱남매 가장 서로 애틋한 큰이모의 아들이고,

이모의 아들 첫째는 쉰이 넘었지만 결혼이 아직이고,

마흔 다섯인 아우가 먼저 가는거라 귀한 자리이다.


누군가의 경사가 모두에게 경사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걱정이 앞섰다.

마흔이 넘은 뒤로는 해마다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에 일이 많아 옷차림을 준비할 일이 없었다.

포멀한 옷에 들만한 가방도 없다.


게다가 내가 결혼하던 십수년전과 달리 물가가 올라서

과거에 4-5만원하던 식비가 요즘 예식장에서는 기본 7만원 이상이다.

이러니 축의금 10만원내고 둘이가면 민폐,

30만원을 내도 우리 네식구가 축하한다고 가면 밉상이다.


그래서 결혼식은 이래저래 부담이다.

더군다나 오빠의 결혼식장은 신부의 친정과 두사람의 신혼집이 부산이라

예식장도 부산, 더더 부담이긴 하다.


나이 많은 신랑에 띠동갑 신부의 예식이라 하객이 없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간절한 마음으로 와달라는

엄마와 이모의 전화까지 받은 터라 마음이 복잡하다.


예식에 대한 정보를 흘린 뒤로

참석 여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던 동거인은


몇차례 '어떻게 할거야' 라는 질문에 한숨만 푹푹 내쉬다가

그제서야 4인기준 기차 왕복여비가 얼마냐 물었다.


그때부터였던 같다.

분노게이지의 시동이 걸린 것이.


물론 비용이 중요하지만,

흔하지도 않은 친정 가족행사에 참석 여부를

계산이 되어야 가늠 되니

계산해서 보고서 올리라는 빈정이 상했다.


시댁행사는 뭐든 수업 재끼고 휴가 내고 바로 출동이고,

친정은 거리를 핑계로 비교하고 측정하여

이리 빙글 저리 빙글 못갈 구실을 만드는 걸로 느껴진다.


무튼 왕복 할인 기차표 금액을 계산하여 보고했다.

고속철도는 너무 비싸니 아침일찍 자차로 다같이 출발하잔다.

운전하면 피곤하니 하루 묵고 오도록

숙박을 알아보는게 좋겠다 했고,

역시 모두 몫이다.


이 와중에 엄마는 예식에 입을 옷을 홈쇼핑에서 주문했는데

그럴싸하다며

너도 하나 주문해줄테니 입어라 하신다.


정중히 거절하고 적당하고 저렴한 옷을 검색하다가

어울릴만한 가방을 찾다가 너무 비싼 명품도 부담이고,

뭔가 싸구려 인조가죽도 싫고,

당당하게 예식장에 에코백을 수도 없는

맹추인 자신도 모두 싫어서 짜증이 치밀었다.


이도 저도 무력하고, 이것 저것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가

당근을 뒤졌다가 지웠다가 하며 하루를 마치고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공부시켰다.

(퇴근 후에 바로 출근을 하는 정말 지친다)


애써 마음을 정돈하고 늦게 귀가한 동거인에게

장바구니의 원피스를 보여주니

그런 스타일 진짜 별로고 너한테 안어울리며

포멀하지도 귀엽지도 않은 그런 옷은 진짜 어중간하다고 한다.


안그래도 무기력하던 참에, 진짜 가기 싫다, 되었고,

장바구니를 비웠다.


하필 저녁, 동거인에게 깜짝 선물로 주려고 몇 주전에 해외직구사이트에서

주문했던 악어표 셔츠가 도착해서 입혀줬는데

길이도 길고 완전 불호 스타일이라며

말도 없이 주문을 하냐고 역정을 낸다.

(주문 왜 했니, 나란거!)


과거 어느 생일에 축구가방을 사줬다가 마음에 안든다고

있는대로 성질을 부리더니

결국 생일선물을 반품을 하고야 말았던 기억이

떠오르며 무력감이 오만배 상승했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모든 사회활동도 포기하고 싶어진다.

히키코모리처럼 방안에만 쳐박혀있다가 미이라가 되고 싶다.


그를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쉼없이 챗바퀴를 돌아도

줄줄 새는 통장을 보며 앞이 보이지 않을 것을 안다.


하루 종일 사람 상대하며 일하는데

주말까지 사람 많은 곳 가는 것도 싫고,

돈때문에 궁상맞아지는 자신이 싫어질 것도 안다.

퇴근하고 피곤한데, 이거해달라 저거해달라 하는 아이들이 귀찮을 것도 안다.

힘들어도 마음껏 힘들어할 수 도 없는

가장의 무게가 무거운 것도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조금은 긍정적일 수는 없을까.

아이들에게도 기대와 우려와 짜증만 배설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 귀엽긴한데, 옷은 자주 입긴 힘들지 않을까."

"기차가 편하긴 하겠지만, 김에 부산 구경도 하고

아이들이랑 부산바다도 보고 올까."

"내 생각해서 서프라이즈했는데 안맞아서 어쩌냐, 고쳐서 입을수있을까."

"다음엔 상의하고 주문해주오."

"아빠가 오늘은 힘드니까, 스스로 하면 안될까."


이런 표현들은 어때라고 말했다가

이런 요구하면 "너 그러다 또 왕따 당할거"라는 말을 들을 같아 두렵다.


그와 함께 산지 12, 그를 떠올리면무력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더불어 나도 그의 무력감에 편승하여 서핑을 한다.


태어났으니 어쩔 도리 없어 살아내는 하루하루.

죽을 방도는 달리 없고 책임질 일은 있으니

밥을 먹고 나가 일을 하고

움직여야하니 마지못해 먹고, 자고, 싸는 .

하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어떤 재미도 호기심도 없는 .


세상 모든 존재가 궁금하고,

세계 구석구석의 문화와 건축과 자연을

알고 싶었던 나는

이제 없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했던 나는

아무 꿈도,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 타인의 삶에 빠져들었다가

다른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전에

얼른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든다.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싶다.

꿈의 공간이 유럽이면 좋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면 좋겠다.


낯선 누군가에게 인사해도

평가 받을 일을 걱정할 일이 없는 곳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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