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차 부부의 하루
1부 — 서정민
사촌오빠가 결혼을 한다. 축하할 일이다. 마흔다섯에 하는 결혼이고, 큰이모의 아들이다.
엄마는 꼭 와야 한다고 했다. 하객이 적을까 걱정된다고.
정민은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부산. 네 식구. 기차표. 축의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옷장을 열었다. 검은 원피스 하나, 니트 원피스 하나.
장례식용과 일상용 사이 어디쯤의 옷들뿐이었다.
예식장에 들 만한 가방도 없다.
네이버를 열어 하객 원피스를 검색했다.
명품은 부담스러웠고, 보세옷은 싼 티가 났다.
여섯 개의 원피스를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뺐다 반복했다.
이도 저도 귀찮아서 청바지에 에코백을 들고 예식장 앞에 서 있는 자기 모습을 상상했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날 밤, 도영이 늦게 들어왔다.
“어떻게 할 거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물었다. “왕복 기차비가 얼마야?”
그 순간, 정민은 알았다. 아, 이건 돈 문제구나.
그녀에게 그 질문은 ‘가고 싶어?’가 아니라 ‘얼마나 드는데?’로 들렸다.
도영은 시댁 행사에는 늘 고민이 없었다.
거리가 멀어도, 일정이 빡빡해도, “뭐해? 빨리 가야지.”가 먼저였다.
친정은 늘 계산이 붙는다.
정민은 할인 기차표를 찾아 금액을 말했다.
도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 돈이면 차로 가는 게 낫지. 새벽에 출발하자. 숙소는?”
그녀가 알아봐야 한다. 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정민은 고른 원피스 사진을 도영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어때?” 도영은 화면을 보더니 말했다. “애매해. 너한테 안 어울려.”
정민은 웃는 척했다. 그리고 장바구니를 비웠다.
그날, 몇 주 전 주문해둔 셔츠가 도착했다.
도영이 좋아하는 브랜드. 깜짝 선물이었다.
도영은 입어보더니 인상을 썼다.
“길이가 너무 길어. 완전 내 스타일 아닌데. 왜 말도 없이 주문해?”
정민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문득 몇 년 전 생일이 떠올랐다.
필요없는 선물이라고 환불해오라는 도영의 말에 가방을 반품하러 가던 날,
계산대 앞에서 괜히 작아졌던 자신.
‘왜 주문했니, 나란 사람.’ 반복된 엇갈림에 자괴감이 밀려왔다.
밤이 되자 모든 사회활동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결혼식도, 친척도, 사람 많은 예식장도.
도영이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다르게 말해줄 수는 없을까.
‘기차 타고 가서 부산 바다라도 보고 올까?’, ‘옷이 좀 긴데 고쳐서 입을까?’,
‘나 오늘 좀 힘든데 자기가 알아봐 줄래?’
그 정도의 말.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괜히 또 철없다고, 현실 모르냐는 눈빛을 볼까 봐.
정민은 잠들기 전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을 검색했다.
끝없이 이어진 길.
낯선 사람과 스쳐 지나가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녀는 생각했다. 잠들면 적어도 계산은 멈춘다.
꿈속에서는 누구도 “얼마야?”라고 묻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깨지 않는 꿈이었으면 했다.
2부 — 이도영
사촌 결혼식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도영은 불안했다.
지난달 작업비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클라이언트는 다음 달에 주겠다고 했다.
건물주는 월세를 올리겠다고 문자했다.
그는 낮에 그 문자를 보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저녁에 정민이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도영은 이미 숫자를 세고 있었다.
네 명 KTX 왕복. 축의금. 숙박. 며칠 매출 공백.
이번 달 카드값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왕복 기차비가 얼마야?”
그는 그 질문이 칼처럼 들렸다는 걸 몰랐다.
그는 가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다만, 다녀온 뒤가 두려웠다.
통장 잔고를 보는 밤이. “차로 가자. 새벽에 출발하면 돼.”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는 게 가장 현실적인 사랑이라고 믿었다.
정민이 원피스를 보여주었을 때 도영은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사실 잘 몰랐다. 여성 정장은 다 비슷해 보였다.
그는 솔직하게 말하면 도움이 될 줄 알았다. “애매해.”
정민의 표정이 잠깐 굳는 걸 보았지만 그는 피곤해서 더 생각하지 못했다.
셔츠를 받았을 때, 그는 당황했다.
요즘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무언가를 선물받는 일도 부담이었다.
‘이 돈이면…’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길이가 맞지 않았다.
말이 어떻게 들릴지 고민하기 전에 튀어나왔다. “왜 말도 없이 주문해?”
사실은 ‘이런 데 돈 쓰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진짜 필요한 건 월세야.’ 라는 말은 삼킨 거였다.
정민이 조용해졌다. 도영은 가끔 정민이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정민은 여전히 어딘가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부산에 가면 바다를 보자고 말하고, 언젠가는 산티아고를 걷고 싶다고 한다.
도영은 그 말을 들으면 두려워진다.
혹시, 이 집이 그녀에게는 너무 좁은 건 아닐까.
그는 묻고 싶다. “나 때문에 답답해?” 하지만 대신 묻는다.
“기차비 얼마야?” 밤이 되면 그는 통장 앱을 다시 연다.
입금 예정일을 확인한다. 계산기를 켠다. 그리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질까. 정민은 옆에서 잠들어 있다.
그는 그녀가 수면제를 먹는다는 걸 안다. 모르는 척한다.
불을 끄면서 그는 중얼거린다.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건지는 그도 모른다.
3부 — 부산, 10분의 바다
결혼식 당일, 새벽 네 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도영이 먼저 일어났다.
정민은 부엌 불이 켜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숙소를 비교하다 잠들었기 때문에 머리가 무거웠다.
아이들을 깨우는 일은 늘 전쟁이었다.
큰아이는 “왜 이렇게 일찍 가야 해”라며 이불을 끌어당겼고,
작은아이는 차라리 학교 가는 게 낫겠다며 짜증을 냈다.
정민은 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도영이 먼저 말했다.
“아빠가 오늘 운전 오래 해야 해서 그런데, 너희가 좀 도와줄래?”
아이들이 투덜거리면서도 움직였다.
정민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흥분하지 않는 도영의 모습이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다. 차는 아직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렸다.
네비게이션은 졸린 목소리로 길을 안내했다.
톨게이트를 지는 순간, 텀블러 뚜껑을 열던 정민의 무릎 위에 커피가 조금 쏟아졌다.
“아, 진짜.”
정민이 짜증을 내자 도영이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산티아고를 갈 걸 그랬나.” 정민이 흘끗 쳐다봤다.
“거긴 톨게이트 없지?” 도영이 대꾸했다.
“대신 다 걸어가야 되잖아. 기름값은 안 들겠네.” 둘 다 웃었다.
피식하는 짧은 웃음이었지만 같은 방향으로 웃고 있었다.
결혼식장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큰이모는 정민의 손을 꼭 잡고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 말에 정민은 괜히 울컥했다.
예식이 끝나고 식사를 마친 뒤, 도영이 시계를 보았다.
“체크인 시간 좀 남았네.”
정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또 계산이 시작될까 봐. 잠시 후 도영이 말했다.
“해운대까지 15분이래.” 정민이 그를 보았다.
“가서… 10분만 보고 올래?”
그는 덧붙였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정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는 생각보다 파랬다.
바람은 아직 차가웠고, 모래는 신발 속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아이들은 파도 가까이까지 달려갔다가 물이 튀자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다.
정민은 가만히 서 있었다. 이곳이 산티아고는 아니었다. 유럽도 아니었다. 그냥 해운대였다.
그래도 바다는 바다였다. 도영이 옆에 섰다.
“사진 찍어줄까?”
“아니.”
정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같이 찍자.”
아이에게 휴대폰을 건네주며 그녀는 도영 옆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어색하게 어깨가 닿았다.
찰칵. 사진 속 두 사람은 조금 피곤해 보였고, 조금 부어 있었고, 하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날 밤 숙소에서 아이들이 먼저 잠들었다.
도영은 휴대폰으로 통장 앱을 열었다가 닫았다. 정민이 그걸 봤다.
“아직 안 들어왔어?”
도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응. 나 요즘 숫자 보면 심장이 좀 빨라.”
말해놓고 나서 스스로도 놀란 얼굴이었다. 정민은 웃지도, 위로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랑은 계산하지 마.”
도영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었다. 불안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밤, 도영은 통장 앱을 일부러 안봤다.
정민은 수면제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창문 밖으로 바다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산티아고는 아니었고, 통장은 여전히 빠듯했고, 내일도 카드값은 빠져나갈 것이다. 그래도 오늘 밤은 서로를 덜 계산했다.
현실은 여전히 팍팍했지만 이상하게도 잠은 쉽게 올 것 같았다.
깨지 않는 꿈은 멀리 있지 않았다.
서로를 안쓰러워하는 이 밤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