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이종무로 157 「고기리 막국수」
강원도 산골의 소박한 막국수가, 용인 고기리 숲길 끝에서 「고기리 막국수」라는 담백한 간판을 걸고 대한민국 냉면의 새로운 정점으로 우뚝 섰다.
최근 들어 순메밀 막국수가 동치미 육수로 변주되며 평양냉면 스타일로 축이동을 했고, 메밀 기반 요리의 고급화가 가속화되며 냉면과 막국수의 경계는 점차 옅어져가고 있다. 차가운 육수에 말았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관념적으로 우리는 냉면과 막국수를 다른 좌표에 놓고 인식하고 있다.
냉면이 한국 음식의 미학을 대표해왔다면, 막국수는 그 바깥에서 조용히 제 길을 걸어왔다.
냉면은 실향민의 기억 위에 세워진 음식이다. 담백한 육수 속에 그리움이 스며들고, 맑은 맛 안에 단련된 절제가 있다.
반면 막국수는 훨씬 자유롭다. 육수보다 메밀 본연의 맛을 앞세우고, 강원도의 들깨와 들기름, 김으로 투박하면서도 깊은 토속 풍미를 낸다.
막국수라는 이름 자체가 그 자유로운 성격을 말해준다.
옛날에는 메밀을 껍질째 거칠게 빻아 면을 뽑거나,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만들어 내서 ‘막(바로 지금)’ 국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마구 만들어 먹는다”는 느낌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본질은 무질서가 아니라 메밀의 거친 맛과 즉석의 신선함을 담은 자유로움이다.
그러나 이 집의 막국수는 다르다.
무심한 듯 단정하고, 투박한 듯 정결하다.
만드는 과정의 꼼꼼함과 맛의 완성도는 이름난 평양냉면 명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들기름 막국수 한 그릇이 나온다.
주방에서 이미 들기름과 깨로 버무려진 면 위에, 잘게 부순 김가루가 소복하게 쌓여 있다. “비비지 말고 떠먹어보라”는 안내가 따라온다.
첫입을 뜨는 순간, 들기름의 고소함이 부드럽게 퍼지며 메밀의 구수한 곡향과 김가루의 바삭한 바다 향이 뒤따른다. 이 조화는 정교한 기술이 아니라, 재료에 대한 깊은 신뢰에서 나온다.
면이 절반쯤 남았을 때 육수를 부으면, 들기름 향이 육수 위를 떠다니며 입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낸다.
고소함과 청량함이 교차하는 그 찰나가, 이 음식의 진짜 심장이다.
최근 들어 묵직하게 청량하면서 무심한 맛을 이어가던 냉면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빠르게 변하였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달아지고, 짜졌으며, 감칠맛이 더해졌다.
심심하다는 평가를 피하려 자극을 더했지만, 그 과정에서 냉면 본연의 고아함은 일정 부분 사라졌다라고 본다. 평양냉면 교조주의자인 내 입장에서 그 고아함은 단순히 맛의 담백함이 아니라, 마음의 층위였다.
실향민의 그리움과 그 시절을 품은 절제.
고기리 막국수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 고아함을, 조용히 되살려 보여준다.
개장 전부터 줄을 서는 손님들에게 직원은 정중하게 개시를 알리는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가장 먼저 도척하여 제일 오래 기다린 손님에게 고마움을 담아 작은 메밀과자 한 봉지를 선물해준다.
이를 보며 음식의 시작은 조리실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공간 곳곳에는 생화가 놓여 있다.
장식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꽃이다.
음식의 향기 옆에서 제철의 색을 더한다. 그릇의 단정함, 손의 동선, 꽃 한 송이까지 모든 것이 같은 결에서 나왔다. 음식을 들기도 전에 주인장의 깊은 배려를 경험하니 마음은 이미 배부르다.
막국수는 원래 강원도의 소박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고기리 막국수는 그 소박함 속에 기품을 세운다. 메밀을 다루는 손의 감도, 들기름을 붓는 비율, 김가루의 질감 하나하나까지 정제되어 있다.
그래서 이곳의 막국수는 단순한 지역 음식이 아니라, 한국 면 요리의 또 다른 정점으로 느껴진다.
고기리 막국수를 경험하고 나오는 길에,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