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664 건설빌딩 1층 「봉밀가」
서울 한복판, 냉면의 미학을 담아낸 미슐랭 식당이 있다.
서울에서 가장 자극적인 동네에 자리잡았으나, 가장 자극이 없는 음식을 내는 곳.
유행이 하루 단위로 바뀌는 강남의 거리에서 오직 자신의 속도로 음식을 빚어온 식당, 그 이름은 「봉밀가」다.
얼마 전 봉밀가에서 가족 외식으로 어복쟁반과 평양냉면을 경험하고 나서며 문득 「평양냉면을 닮은 식당」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내 개인적인 통찰에 불과하지만, 평양냉면의 본질은 절제와 균형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극을 덜어내고, 화려함을 비운 자리에 남는 본질의 깊이를 탐구하는 일. 봉밀가는 그 미학을 음식에도, 운영 철학에도 고스란히 녹여냈다.
봉밀가가 개업했던 2014년 당시만 해도 평양냉면은 지금처럼 대세가 아니었다. 함흥냉면의 직관적이고 매운맛이 시장을 이끌던 시절, 평양냉면은 소수의 애호가들만 찾는 ‘심심한 음식’으로 분류됐던 시기였고, 평양냉면 1세대 식당들이 을지로와 청계천변을 따라 성업하던 강북 전성시대였던지라 강남에서의 평양냉면 식당 개업은 모험과도 같은 선택이었더랬다.
봉밀가는 그 흐름을 거슬렀다. 광고도, 인플루언서의 후광도 없이 오롯이 자기 해석의 냉면을 내놓았다. 평양냉면이 주목받지 못 했던 시절, 냉면 불모지인 강남에서 돌냄비우동 같은 대중적 메뉴로 무명의 시간을 버텨내며 견뎠다.
그렇게 미약하게 시작한 식당이었지만, 이제는 9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되며 서울에서 가장 ‘핫’한 냉면집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냉면 애호가들은 안다, 평양냉면의 세계에는 엄격한 족보가 있다는 것을..
1·4 후퇴 시기 월남한 홍영남·김경필 부부의 의정부 계열, 대동면옥의 맥을 잇는 장충동 계열, 그리고 우래옥·을밀대 같은 독립 계열이 오랫동안 그 줄기를 이어왔다. 오늘날 등장한 신흥 냉면집들 또한 대부분 이 계통 안에서 변주된다.
그러나 봉밀가는 그 어느 계열에도 속하지 않는다.
명확한 계승도, 명문가 출신의 스승도 없다.
그렇기에 이 집의 냉면은 ‘어디서 배운 맛’이 아니라 ‘스스로 완성한 맛’에 더 가깝다.
한 그릇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그림자를 보는 대신 새로운 출발점을 마주한다.
이 점에서 봉밀가는 평양냉면의 ‘형식’을 잇는 집이 아니라 ‘정신’을 잇는 집이라 할 수 있다.
맛을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맛을 대하는 태도에서 깊이를 찾는다.
절제의 미학을 조용히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식당이다.
평양냉면을 오래 즐겨온 사람이라면 안다.
계보 없는 냉면이 교조주의적 성향이 강한 냉면 마니아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나 봉밀가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전통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으로.
결국 음식의 세계에서 진짜 힘은 자극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봉밀가의 냉면은 그 사실을 매일 증명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완전하고,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그래서 나는 봉밀가를 ‘서울에서 가장 자극적인 동네에 자리했으나, 가장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내는 식당’, 이라 부르고 싶다.
그래서 봉밀가는 「평양냉면을 닮은 식당」 이라는 나의 한줄평이 내 마음에 썩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