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의 도시, 대전의 노포 냉면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산로 36번길 34 「진남포면옥」

by 권오찬

대전은 누가 뭐라 해도 밀가루의 도시이다. 성심당의 튀김소보로와 과일시루 케이크는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히트 상품이고, 대전의 칼국수는 업력과 조리법에 따라 따로 족보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그 역사가 깊고도 넓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도시에는 평양냉면 노포 역시 제법 많다.

대전은 철도 교통의 요지로 부산항을 통해 받은 미국의 원조물자인 밀가루를 전국에 보급하며 밀가루의 도시로 자리잡게 한 배경이기도 하지만, 전란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 역시 같은 이유로 대전에 제법 많이 자리잡았다.


한국전쟁이 유엔군의 개입으로 금세 끝날 것이라 예상했던 이들은 속초와 함경도, 백령도 등 이북 접경 지역에 자리잡았지만, 좀 더 신중한 이들은 대전에 자리잡았다. 국군과 유엔군이 이기면 기차를 통해 고향땅으로 올라갈 수 있고, 밀리면 부산까지 내려갈 수 있었을테니 어쩌면 불안이 팽배하던 시대, 대전은 가장 실리적인 선택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빈 손으로 고향을 떠나 남으로 무작정 내려온 이들은 장사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었고, 농경보다는 수렵과 채집 생활에 의지했던 북방 지역 사람들답게 부지런한데다 기질은 억세니 대부분 탄탄하게 대전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 대전을 대표하는 성심당, 혜천대학교, 대전교통의 창업자는 이북 출신 실향민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전에는 숯골원냉면, 사리원면옥, 진남포면옥 등 오랜 냉면 노포가 존재한다. 대전의 냉면집은 대부분 평양식인데, 대전에 정착한 실향민 대부분이 동북쪽의 함경도 지방보다는 서쪽의 평안도와 황해도 출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대전 유성구에 소재한 70여년 업력의 2대 대물림 식당인 <진남포면옥> 역시 실향민 1세대가 창업한 평양냉면집이다.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의 이정모 창업주는 1954년 대전역 인근 작은 면옥을 열고 간판을 「대동면옥」이라 달았다. 대동강과 대동문을 떠올리게 하는 상호였다. 진남포는 대동강 하구에 있는 도시이고, 대동문은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문으로 평양을 상징하는 고대 유적 중 하나이다.


그 가게를 지금 자리로 옮기고 이름을「진남포면옥」으로 바꾼 건 둘째 아들 이관식 사장이다. 2대째 70여년의 세월동안 여전히 그 시절, 그 맛을 내기 위해 진남포면옥의 주방에선 여전히 동치미를 담그고, 소고기 육수를 내고, 메밀면을 뽑는 작업을 직접 하고 있다.


진남포 면옥의 냉면은 전형적인 평양 스타일이다. 메밀과 전분을 섞어 직접 뽑은 면, 소고기 아롱사태로 우려낸 맑은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반반 섞어 만들어낸 시원하면서도 톡 쏘는 청량감이 있는 냉면이 참으로 반갑기만 하다. 고명은 편육과 삶은 계란 반쪽, 오이절임 등 단촐하지만 그 이상의 화려함은 평양냉면에게 있어 사치일 뿐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영업 방식이다.

<생활의 달인>을 비롯해 여러 유명 방송에 소개되었고, 전국에서 이 냉면맛을 보기 위해 몰려들지만 주방에서 소화할 수 있는 양만 만들어 '맛'을 지키기 위해 하루 150그릇 정도의 냉면만 만들어 장사하고 있다. 더 팔면 돈은 벌겠지만, 그럼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 진남포면옥의 철학이다.


대전은 밀가루의 도시, 과학의 도시, 행정의 도시로 불린다. 하지만 진남포면옥의 냉면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이 도시가 본래 <실향민의 도시>였다는 사실이 다시 선명해진다.

우리가 대전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새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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