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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Jul 23. 2024

영천을 육회의 도시로 만든 편대장 영화식당

경상북도 영천시 강변로 50-15 「편대장 영화식당」

경북 영천은 백두대간의 보현산과 낙동정맥의 굳센 정기를 이어받은 곳으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유불교의 각종 문화유산이 산재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영천에는 국내 광학 천문관측의 메카인 보현산 천문대가 자리 잡고 있고, 죽음으로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킨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리는 임고서원이 소재하여 우리네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인 충의에 대해 느낄 수 있다.


또한 신라 시대 화랑 설화를 테마로 조성한 화랑설화마을이 문화관광명소로 초등학생 연령의 아이를 둔 가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고려 말 화약을 발명해 왜구를 무찌르는데 기여한 최무선 장군의 출생지 역시 영천으로 금호읍에 최무선 과학관이 마련되어 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을 기린 임고서원과 화랑설화마을 테마파크


볼거리 많은 동네치고 음식이 변변찮은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내 여행 지론인데, 영천에서 반드시 찾아 먹어야 하는 유명한 먹거리가 바로 소고기이다. 예로부터 영천은 우시장, 도축장 등이 오래전부터 상주해 있었으며, 그에 따라 한우사육농가에서는 질 좋은 고급육 생산기술을 받아들이려는 의식이 각별했다.


영천은 강우량이 적고 맑은 날이 많아 모든 농작물의 생육에 유리해 소에게 콩깍지, 포도, 한약재 부산물 등을 풍부하게 먹일 수 있는 좋은 환경적 요건이 조성되어 있는 데다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으로 한우 사육에 대한 기술력이 중첩되니 명품 한우로 유명한 곳이다.


거기에 더해 소고기는 예로부터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의 필수 음식 재료였더랬다. 그리하여 유교 문화가 발달한 영남지역에서는 소고기 요리가 발달하였는데 안동의 헛제삿밥과 갈비 골목, 언양의 석쇠 불고기, 대구의 뭉티기 등이 바로 그런 사례이고, 영천에는 육회가 특히 유명하다.



편대장 영화식당의 출입구 전경


그리하여 영천은 인구 10만여 명의 중소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하면서도 맛으로 유명한 소고기 식당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영천 시외버스 터미널 옆에 자리한 「편대장 영화식당」은 대한민국 육회 전문 식당의 시조 격이자 각지의 미식가들이 찾는 전국구 식당으로 자리매김하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1962년 1대 장옥주 사장이 성내동에서 소금구이 전문점으로 시작하며 「영화식당」이란 상호로 개업을 했다가 1973년 영천 시외버스터미널이 이전할 때 함께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구이로 시작한 식당이었으나 단골손님이 원하면 가끔 해주던 육회가 소문나면서 아예 육회 전문점으로 전향한 케이스이다. 2005년경 상호명 「영화식당」이란 상표권 분쟁에서 패소한 뒤 장옥주 사장의 셋째 아들 편철주氏가 중대장 출신임에 착안하여 지금의 상호 「편대장 영화식당」이 된 것도 알아두면 식도락가에게 즐거움을 줄 만한 이야기이다.


파와 미나리를 함께 무쳐낸 영천식 육회 (편대장 영화식당)


육회는 지방질이 거의 없는 우둔살, 홍두깨 등 살코기 부위를 세로 방향으로 잘게 잘라내어 간장과 참기름 등 갖은 양념으로 무쳐낸 요리이다. 조리 방식에 있어 양념의 개량과 방식이 딱이 정해져 있지 않으나 대체적으로 서울 지역은 간장 양념을 베이스로 하되 계란 노른자와 채 썬 배를 함께 무쳐 먹으며, 전북에서는 고추장을 밑간으로 하여 밥과 함께 비벼 먹는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전남은 육회보다는 육사시미를 주로 즐긴다.


영천식 육회는 간장 양념에 파와 미나리를 함께 무쳐내는데 우리가 결혼식 부페에서 먹는 냉동식 육회의 채로 썰어낸 두께에 비해 훨씬 잘게 커팅되어 부드러운 식감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육회비빔밥 특 사이즈와 함께 제공된 된장찌개


육회비빔밥을 주문하면 된장찌개가 함께 제공되는데 통상 고깃집에선 짜투리 고기로 찌개를 끓여내지만, 이 집은 시원한 멸치 육수와 고소한 된장콩이 주는 매력을 보여주니 그것이 육회 비빔밥과 궁합이 썩 괜찮다.


음식의 설계 역시 반세기 업력이 쌓인 내공 때문인지 굉장히 치밀하다.


육회 양념은 참기름이 메인이고, 잘게 썬 파와 미나리 등으로 색감을 주고 다진 마늘과 간장 지극히 기본 양념만 사용한  듯한데 그 맛을 어찌 분석해 볼 수도 없이 식도로 훌렁 넘어가 버린다.

비벼 먹는 용도로 나온 상추 겉절이는 도드라지지 않는 약간의 신맛이 나는데, 이게 고소한 참기름으로 무쳐낸 육회와 어우러지면서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육회에 흔히 곁들여 먹는 채 썬 배나 고명으로 올라간 계란 노른자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미나리와 파, 간장, 깨, 후추, 참기름, 설탕 등 우리네 식탁에 기본으로 사용되는 소스로만 가볍게 무쳐냈기에 오히려 육회의 고소한 맛이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가게 한편의 벽면에는 뽀빠이 이상용 선생님께서 “하늘 아래 최고의 육회가 바로 여기”라는 사인 문구가 적혀 있는데, 식당 문을 나서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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