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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Aug 15. 2022

제주 고기국수에 대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주도 제주시 일도이동, 파도식당

제주 동문시장 근처에 자리 잡은 빨간 간판의 파도식당에서 멸치국수를 경험하고 불현듯 톰 크루즈 주연의 2002년作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2002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래사회 3명의 예언자가 예지하는 범죄 현장 기록을  보고 범죄 예정자를 미리 수감한다라는 흥미로운 설정의 영화인데, 3명의 예언자가 바라본 미래가 동일하지 않을 경우 1명의 '소수의견'은 폐기 처분된다 하여 영화 제목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이다.


다들 제주도에서 가장 유명한 향토음식이라 하면 첫 번째로 떠올리는 것이 <고기국수>인데, 밀가루 건면에 관한 이야기는 차제하고라도 이 척박했던 제주 땅에서 돼지고기는 과연 풍족한 자원이었을까? 우리가 흔히 먹는 제주의 고기국수가 제주 사람들의 일상식이자 음식의 원형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매우 타당한 호기심이 아닐까?


그래서 금번 제주 휴가 여행에서의 첫끼니는 그 호기심을 해결하게 위해 멸치국수를 주력 메뉴로 하는 국수 노포 <파도식당>으로 정하였다.


제주에서는 가문잔치에 반드시 돼지를 잡기에 혼례 1~2년 전부터 돼지를 기르는 것이 관례였다. 자녀의 혼인 날짜를 잡을 때 통시(돼지를 키우던 측간)의 돼지가 몇 마리인지 셈에 넣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문잔치에서 먹던 제주 몸국과 통시에서 키우던 똥돼지(제주민속촌)

가문잔치에는 친인척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모두 참석했기에 음식의 양을 불리기 위한 방법으로 탕으로 조리하였고, 거기에 해초인 모자반을 넣어 건더기의 양을 늘린 것이 우리가 아는 <몸국>이다.

제주의 대표적인 향토음식, 고기국수

그러나 태평양 전쟁 당시 전선에 보급할 식량 물자로 톳과 모자반 등의 해초류까지 수탈되며 몸국은 점차 먹기 힘든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가문잔치 음식으로 몸국은 관습적으로 꼭 필요했던 음식이었기에 대체재를 찾던 와중 육지의 <잔치국수>가 제주에 등장하였고 1920년대 밀가루 건면 공장이 제주에 들어오면서 돼지고기 육수에 국수를 말고, 반찬으로 내던 수육을 고명으로 얹으면서 <제주식 잔치국수>인 현재의 고기국수의 모습이 완성된다.


그러나 가문잔치가 늘상 있는 일도 아니었던 데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4.3 사건 등 역사적으로도 물자가 귀할 수밖에 없었던 제주에서 현재 우리가 먹는 고기 고명 잔뜩 올라간 진한 국물의 고기국수는 언감생심이었을게다. 심지어 현대화 과정을 거치며 제주의 전통적인 결혼 풍습은 희미해지고 1970년대 가정의례 준칙이 권고를 넘어 강제성을 가지면서 돼지 도축이 어려워지니 해방 이후 고기국수는 사라졌다가 관광 수요에 의해 1990년대 다시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히려 과거 제주 옛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먹던 국수는 오히려 제주에서 흔히 잡히는 <멸치 육수로 말아낸 국수>라는 결론이 나온다.

‘멸치국수’가 포함된 제주 노포 국수집의 메뉴판

실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신생 식당은 돔베고기와 고기국수를 주력 메뉴로 판매하는데 반해, 지역주민들이 찾는 노포 국수집에서는 십중팔구 <멸치국수>가 메뉴판에 자리하고 있다.


파도식당은 우리가 아는 고기국수 대신 멸치국수와 멸고국수를 판매하는 동네 주민 맛집이다.

파도식당의 국수 3총사 (멸치, 멸고, 비빔)

국수 전문점이라 메뉴가 단촐하여 멸치, 멸고, 비빔까지 모두 주문하였다. 제주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멸고국수'라는 음식이 존재하는데, 멸치로 육수를 낸 잔치국수에 고기 고명이 올라가있는 형태이다. 간소하게 후루룩 말아먹는 분식이었으나 모든 메뉴가 제주라는  '지역적 향토성'과 유부국수라는 '가게의 특수성'이 더해지니 맛이 제법이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시원하면서도 진한 멸치 육수 그대로가 더 입맛에 맞았는지라 순위를 매긴다면 멸치국수, 비빔국수, 멸고국수 순이었다.

유부를 잔뜩 올린 비빔국수

비빔국수의 경우 멸치육수를 따로 내주시는데 면에  육수를 두어 수저 넣고, 유부를   청해 비비는 것이  집의 음식을   맛있게 즐기는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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