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쑥향 가득 보리비빔밥

인천시 강화군 길상명 강화동로 113 「봄날」

by 권오찬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계급 전쟁> 시즌 2가 장안의 화제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셰프들의 요리가 여럿 공개되었지만, 그중 내 눈길을 가장 많이 사로잡은 것은 미슐랭 1 스타, 솔밤 소속의 아기맹수가 내놓은 「박주산채」라는 주안상이다.


「박주산채 : 薄酒山菜」는 변변치 못한 술과 산나물로 이루어진 술상을 겸허히 낮춰 부르는 표현인데, 뜨끈한 국물 한술, 씹는 재미를 주는 고기 한 점 없이 봄나물과 제철 식재료만으로 구성한 주안상이 어찌 흑백요리사에서 가장 치열한 1라운드를 통과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백종원 심사위원은 "나물로도 술을 먹을 수 있네"라고 감탄하며 생존을 외쳤더랬다.



강화도에 가면 이러한 밥상을 받아볼 수 있는 식당이 있다. 바로 강화도 길상면 국도변에 자리한 「봄날」이라는 식당이다.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 「솔밤」처럼 화려한 파인 다이닝은 아니지만, 이 집 역시 고기 없이 나물만으로 든든하고 깊은 맛을 내는 곳이다.

솔밤과 강화도 식당 인근 주민들이 알음알음 다니는 봄날이라는 식당이 서로 맞닿아있는 지점은 '한반도의 식재료가 가진 깊이와 가능성을 식탁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토록 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마당의 장독대와 시절 지난 20세기 영화 사진이 객을 반겨주는데, 이를 통해 주인장이 직접 담근 장을 사용하는 집이고 업력이 제법 오래되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집의 인기 메뉴인 「약쑥나물보리밥」을 주문하면 상다리가 휘어질 듯 풍성한 나물 반찬의 향연이 펼쳐진다. 들깻가루로 정갈하게 무쳐낸 오이무침, 씁쓰레한 맛을 잘 살려낸 씀바귀, 탱탱한 식감의 가지나물, 빛이 날 정도로 싱싱하게 데쳐낸 냉이나물 등 하나하나 나물의 개성을 잘 살려냈다.


이 집이 전국의 여타 비빔밥 식당과 다른 점은 바로 고추장이 아닌 '쑥가루와 간장'으로 밥을 비빈다는 점이다. 강화도에는 예로부터 특별한 약쑥이 자생해 왔다. 마니산을 중심으로 한 얕은 산자락과 햇볕 잘 드는 바닷가에서 피어나는 「사자발약쑥」은 청정한 토양과 해양성 기후 덕분에 효능이 일반 쑥에 비해 뛰어나다고 전해진다. 이 사자발쑥은 강화도의 대표적인 향토 특산물로, 건강 식재료를 넘어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비빔밥에 쑥가루를 넣어 비벼낸다는 음식에 대한 설계는 '제법 맛있는 식당'을 넘어 '지역의 향토성을 품어낸 기품 있는 음식을 내는 집'으로 한층 격을 높인다. 실제 카운터에는 강화도의 향토 음식발국대회에서 수상한 경력 등이 소개되어 있어 음식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음식에 대한 설계도 대단히 치밀하다. 큰 대접에 비벼먹으라고 내준 나물 4종은 간을 거의 하지 않고 식감을 오롯이 살려냈는데, 밥 위에 적당히 뿌린 쑥가루와 나물의 식감이 어우러져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뿜어낸다. 만약 비빔밥에 얹어낼 나물의 양념이 강했다면 쑥향의 존재감이 죽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빔밥을 사랑하는 미식가라면 황포묵과 다채로운 나물이 올라가는 '전주 비빔밥', 육회와 선짓국이 돋보이는 화려한 꽃밥 스타일의 '진주 비빔밥', 빨간 양념의 육회를 얹어낸 익산의 토렴식 '황등 비빔밥' 외에 이제 약쑥 가루로 비벼 먹는 ‘강화도 약쑥비빔밥’을 본인의 지식 사전에 추가해도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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