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사진만이 꼭 정답은 아니다
"초점이 나간 사진들도 모아놓고 보니 꽤 그럴싸한 작품 같더라."
며칠 전 사내 필름 카메라 동호회 모임에 갔을 때 일이다. 누군가 초점이 나가고 흔들린 필름 사진을 화젯거리로 내뱉었다. 망한 사진 같아 보여도 찬찬히 놓고 보면 그 나름대로의 작품성이 있다고 했다. 우연의 찰나로 찍힌 사진이기에 쉽게 나올 수 없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브런치 메인에서 본 필름 사진이 떠올랐다. 필름 롤이 두 번 감겨 장면들이 겹친 사진이었다. 당시 작가는 한 번 썼던 필름인 줄 몰랐다고 했다. 우연한 실수로 완성한 사진이었지만 이상하긴 커녕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그날 이후 동호회에서 얘기했던 초점 나간 사진이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았다.
나는 언제나 인화된 필름 사진 중 반듯하고 선명한 사진으로만 골라 저장했다. 초점이 나가거나 흔들린 사진은 웬만하면 두 번 이상 꺼내보지 않았다. 사진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피사체를 잘 담아내는 것이 사진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흔들린 사진은 의도하지 않아서 어쩌면 더 매력적인 사진일지도 모른다. 이 기회에 초점이 나가고 흔들린 필름 사진을 한 번 모아서 골라보기로 했다.
일부 폴더만을 열어봤을 뿐인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밝고 선명한 사진 사이에서 잊고 지냈던 사진을 하나씩 꺼내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흐릿한 필터가 주는 빈티지한 매력이 있었다. 뿌옇게 낀 안개 사이로 호수를 보는 것처럼 은은한 분위기를 냈다.
지금까지 나는 충분히 매력적인 사진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오토보이3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자동 필름 카메라다. 수동으로 노출이나 셔터 스피드를 조정할 수 없다 보니 카메라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다. 초점이 엉뚱한 곳에 잡힐 때도 많고 흔들릴 때도 많다.
그래서 카메라의 단점을 가리기에 급급했나 보다. 밝고 색감이 예쁜 사진만 찾아 헤맸다.
어쩌면 행운의 사진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초콜릿 봉지에 '또또또'가 적혀있으면 슈퍼에서 하나 더 공짜로 바꿔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5개 사야 1개가 겨우 나올 만큼 드문드문 나오는 행운이었다.
마치 '또또또' 초콜릿처럼 수십 장의 필름 사진을 넘겨보고 나서야 핀이 나간 사진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흐릿한 사진도 빈티지한 매력을 준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필름 카메라는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 뒤에 사진을 인화하는 묘미가 있다. 추억이 흐릿해질 무렵 사진을 꺼내보면 그때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래서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찍었는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흔들린 사진일수록 그 감정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 이런 마음으로 찍었지. 하지만 핀이 나가서 많이 아쉽다.라는 생각이 한 번 더 보태진다.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주는 마음이 더해져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에게 자동 필름 카메라는 다 좋은데, 많이 흔들려서 결과물이 아쉬울 때가 많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색감과 초점을 잘 잡는 수동 카메라를 하나 더 사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모임 이후로 마음이 달라졌다. 예측할 수 없는 흔들린 사진이 좋아졌다.
또 다음번엔 어떤 사진을 모아볼까. 남은 필름 사진을 꺼내볼 생각에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