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live star star city all see
뉴욕 여행을 다녀와서 이상한 증상에 시달렸다.
퇴근길에 회사 앞 공원을 걸어갈 때면 “뉴욕에 있는 공원은 이렇게 작지 않았어” 라며 혼잣말을 읊조리는가 하면, 바람이 부는 추운 날엔 함께 걷고 있는 사람에게 “뉴욕은 햇살이 따사로웠어” 생뚱맞은 대화를 걸기도 했다.
지나가며 보이는 모든 것을 뉴욕에 비교하기 시작했다. 마치 뉴욕에 1년쯤 살다가 돌아온 사람이라도 되는 것 마냥 상사병을 앓았다.
고작 10일밖에 여행하지 않았냐며 주위에서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을 끙끙 앓으며, 그렇게도 유난을 떨었다. 회사 옆자리 매니저님은 이상 행동을 보이는 나에게 콕 집어 병명을 진단했다.
“이거 뉴욕병이야. 뉴욕병에 걸렸네”
뉴욕에 다녀왔던 자신의 지인도 향수병 걸린 사람처럼 뉴욕, 뉴욕거렸다고. 헤어진 연인에게 미련이 남은 전 애인처럼 구질구질하게 굴었다. 하지만 병명을 진단받고 나서도 몇 주 간은 뉴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왜 그렇게까지 뉴욕에 집착했던 걸까. 그만큼 뉴욕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여행지였다. 사실 어떤 여행지인들 신선하지 않겠느냐만, 뉴욕은 기존에 경험했던 여행지와는 많이 달랐다.
특히 초록색으로 물든 워싱턴 DC가 그랬다.
워싱턴 DC에선 가는 곳마다 푸릇푸릇한 풍경을 마주했다. 텔레토비 동산에 온 것도 아닌데 도시 전체가 공원으로 쭉 이어졌다. 공원에는 요가하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공을 몸에 끼고 부딪히는 게임을 하는 사람까지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평일이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분명 관광객은 아닐 텐데 평일 낮 시간에 공원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이라니. 그저 부러웠다. 나도 질세라 그 여유 속에 녹아들기로 했다.
다짜고짜 공원 잔디에 누웠다. 돗자리도 없이 그냥 풀썩.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빛, 그리고 여유로움이 넘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시간이 채워졌다.
뉴요커의 오지라퍼 문화도 신선했다.
뉴욕 여행 때 입으려고 샀던 분홍색 원피스를 개시한 날, 화장실을 기다리려고 줄 서 있는 카페 종업원이 나에게 예쁘다며 말을 걸었다. “대체 이런 옷은 어디서 살 수 있는 거야?”라는 질문에 당황해서 “한국.. 한국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당장이라도 해외배송으로 옷을 보내줘야 할 것만 같았다.
첼시마켓에서 랍스터 먹을 땐 캔맥주 맛을 묻던 쿨한 뉴요커 언니들도 있었다. 박물관에서 할아버지에게 책자 접는 것을 도와드렸더니 다짜고짜 북한과의 관계를 물어봐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뉴욕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때마다 당황스러운 감정이 먼저 들었다.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다짜고짜 말 시키는 건 예의가 없는 무례한 행동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전혀 달랐다. 허물없이 다가오는 뉴욕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지하철 안에서 버스킹 공연을 할 때 관객으로 구경하던 한 뉴요커는 봉을 잡고 춤을 추기도 했다. 뉴욕은 흥이 나면 흥이 나는 대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해도 되는 곳이었다.
뉴욕병에 앓은 건 날씨, 공원 크기가 아닌 사람의 온도, 공간의 분위기가 그리웠기 때문이 아닐까. 우물 안에서 살다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개구리 마냥 뉴욕 도시의 신선함에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그래서 한참을 근육통처럼 뉴욕에 끙끙 앓았나 보다. 어학연수, 교환학생 한 번 해보지 않은 나에게 뉴욕 여행은 큰 깨달음을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live live star star city all see. 살다 살다 별별 도시를 다 보네." 그게 바로 뉴욕이다.
뉴욕 여행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여행을 접하고 싶은 생각이 꿈틀거린다. 뉴욕병은 어느 정도 완치했으니 앞으로 몇 년간은 다른 여행병에 앓아 누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