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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스 Jul 18. 2017

몽골 홉스굴에서 한량처럼 살아보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울란바토르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인적이 드물다
몽골, 또 한 번 오고 싶었어

지난 몇 년 간 향수병에 걸렸다. 여름이 되면 3년 전에 갔던 몽골에 대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초원, 손에 닿을듯한 구름, 습기 하나 없는 선선한 바람. 초원을 달리면서 들었던 촌스러운 몽골 노래마저 그리웠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여름이었다. 몽골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패기로 우여곡절 끝에 해외 탐방 프로그램에 지원해 합격했다. 지원비를 들고 대학교 동기 셋과 외국인 학부생으로 있던 몽골 언니까지 넷이서 푸르공을 타고 몽골 일주를 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다짐했다. 다시 방문하겠노라고.


윈도우 바탕화면에서 보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오자

올해 회사 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힘든 날이 많았다. 물리적인 시간과 창의력의 한계가 잘 하고 싶은 욕심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잠을 잘 때도 수시로 일하는 꿈을 꿨다.


머릿속을 비워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몽골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몽골로 떠나고 싶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초원이라는 뻔한 수식어로 표현하기 아쉬울 만큼 몽골은 멋진 나라다. 화려한 건물 하나 없는 몽골 초원에서 복잡한 마음을 비우기로 결심했다.


태초의 땅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광활한 초원을 가로지르는 여행

몽골 여행의 묘미는 초원을 달리는 일이다. 홉스굴을 가기 위해 울란바토르에서 다르항을 지나 에르데네트 그리고 홉스굴이 있는 무릉 도시까지 약 1000km를 달려야 했다. 국내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다.


대지를 달리다 보면 저 멀리 초원 위 흰돌, 검은 돌 같은 바둑돌이 수 십 개 이상씩 박힌 모습이 보인다.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귀여운 염소와 양 떼들이다.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초원에서 염소, 양 떼들을 마주하는 일은 참 신비롭다. 삼삼오오 모여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몽골이 태초의 땅이라 불리는 이유를 두 눈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길을 건너는 양, 염소 떼를 보면 심장이 쪼그라든다 (1.불안해서 2. 귀여워서)

울란바토르에서 홉스굴까지 가는 길 내내 횡단보도나 연결다리가 없었다. 때때로 양, 염소 떼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길을 건널 때가 많았는데, 인솔자 없이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행여나 차에 치여 다칠까 하고 말이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100m마다 소가 그려진 경고 표시판이 있었다. 양, 염소, 소떼가 수시로 출몰하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몽골 초원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익숙하다는 듯 클락션을 울려대며 지나갔다.


4년 전, 우리도 푸르공을 타고 초원을 달렸다
고요함 속에 평화가 깃들어 있다
몽골에서 피부로 느낀 시간관념

그렇게 9시간 이상을 달렸을까. 이번 몽골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홉스굴이 있는 도시 무릉에 도착했다. 무릉에서 약 100km를 더 달려야 홉스굴에 도착한다. 하룻밤은 근처 호텔에서 묵었다가 홉스굴로 떠나기로 했다.


사실 몽골에서는 '언제 도착해요?' '얼마나 남았어요?'의 시간 표현이 금기어다. 부정을 탈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서울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대체로 시간관념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온 유목민 생활에서 비롯된 생활 습관이 아닐까 싶다.


설명이 필요없는 영롱한 홉스굴 호수
홉스굴 호수엔 반짝이는 보석이 가득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시장에서 장을 보고 홉스굴로 향했다. 그렇게 1시간을 달렸을까, 저 멀리 에메랄드빛 호수가 너울거렸다. 차를 타고 달리던 우리 모두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햇빛에 비친 홉스굴 호수는 투명하고 아름다웠다. 누군가 호수 표면 위에 보석을 흩뿌려 두고 간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호수가 바닷물보다 깨끗하고 영롱하게 빛날까.


끝없이 펼쳐진 호수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게르와 일반 가정집을 택해서 숙박할 수 있다
홉스굴에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자연이 빚어낸 그림 앞에 절로 무릎을 꿇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홉스굴은 멋진 자연경관으로 몽골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이다. 주변에 울창한 나무와 잔잔한 호수가 조화를 이뤄 깨끗한 풍경이 탄생했다. 멍하니 홉스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실성한 듯 웃음이 나왔다.


죽기 전에 언제 또 이런 경치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지어진 행복한 미소였다. 무엇보다 홉스굴은 평화로웠다. 때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닥에 담요 하나만 깔고 호수를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호수 앞에서 원하는 만큼 사진도 잔뜩 찍었다.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뇌 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홉스굴엔 공통 샤워시설도 따로 갖춰져 있다
심심하면 와서 농구를 할 수 있다
호수를  바라보며 그네에서 쉬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특히 내가 홉스굴을 방문했던 시기는 나담축제가 열리기 바로 한 주 전이었다. 나담축제는 우리나라로 치면 설날, 추석만큼 길게 쉬는 연휴라 할 수 있다. 휴일이 시작되기 전 주에 방문해 홉스굴엔 인적이 더 드물었다. 가끔씩 호숫가에 띄워진 배 위에서 아이들이 돌을 던지고 놀거나 농구를 하는 가족이 전부였다. 아침 먹고 쉬다가 점심 먹고 쉬고, 또 그렇게 저녁을 먹고 쉬면서 뒹굴거리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파란색 그라데이션으로 퍼지는 홉스굴 호수
이틀날은 말을 타고 호숫가를 거닐었다

홉스굴엔 와이파이나 셀룰러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다. 예상치 못하게 인터넷과 단절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심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상태가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졌다.


사실 평일 내내 메일, 카톡, 전화로 시달리고 나면 주말엔 휴대폰을 내팽겨 칠 때가 많았다. 대신 낮잠을 자거나 티비를 보거나 무언가에 몰두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홉스굴에선 달콤한 낮잠 대신 끝없이 펼쳐진 잔잔한 호수가 내 마음을 위로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가웠어
몽골, 우리 또 만나자

0.2초처럼 흘러간 홉스굴의 1박 2일 여정. 배 위에서 만난 귀여운 해군 보이가 기억에 남는다. 모자가 탐난다고 말을 건네니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겐 모자를 빌려주지 말랬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카메라 앞에서도 꽤나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발목까지 오는 워커 운동화에 야구잠바와 해군 모자를 쓴 모습은 꽤 멋졌다. 남자다움이 묻어났다.


몽골에선 걸을 일이 별로 없다
황홀한 홉스굴의 풍경, 잊지 않을 거야

가끔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주말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를 자책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홉스굴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눈을 뜨고 아침밥을 먹다가 졸리면 다시 스르르 잠드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리고 열과 성을 다해 두 눈으로 호수 풍경을 담으면 된다.


눅눅한 서울의 날씨를 참을 수 없을 때면 홉스굴에 갔던 사진을 펼쳐본다. 행복을 되새김질하며 2개월 후에 다가올 가을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또 언제 가게 될지 모르는 몽골 여행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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