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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라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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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녁바람 Oct 10. 2023

걷는 여자 -2

원래부터 걷는 걸 좋아했다. 고딩때였나, 지하철역으로 다섯 정거장이나 떨어진 학원까지 걸어갔다가 (수업은 땡땡이치고) 돌아온 적도 있다.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시립미술관과 덕수궁을 거쳐 명동 가는 길, 광화문에서 종로 인사동을 거쳐 동대문까지, 그리고 신촌기차역에서 이대 후문까지, 그냥 평범한 길이지만 참 많이도 걸어다녔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햇볕이 뜨거운 날엔 모자를 쓰고,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터져 굳은살이 될 때까지 걸었다. 평일엔 집 앞 산책로를 통과해 하천 옆 자전거도로를 따라 걷고, 주말엔 남편과 국립수목원 둘레길이나 근처 저수지에 가서 걸었다.

걷는 길에 만나는 풍경들

처음엔 마음이 복잡해서 걸었고 그 다음엔 살빼려고걸었는데 지금은 혼자 또는 함께 걷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 걷게 된다. 얼마 전부터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수영을 시작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칼로리 소모 부담은 헬스장에서만 느끼는걸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나니 야외에서 걷는 시간이 더 즐거워진다.


가끔 8년 전 다리가 부러졌던 날 밤을 생각한다. 응급실에서 당직의사가 내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이거 못 붙일 것 같은데...’ 라고 혼잣말을 했더랬다. 분쇄골절이 너무 심해서 다섯시간 넘게 수술하고 철심 28개 박고 병원에 누웠을 때. 한 걸음, 계단 하나가 너무나 큰 고난이었을 때.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이겨 내고 난 다시 이렇게 ‘걸을 수 있는’ 여자가 되었다.


열두 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10월, 걷기에 딱 좋은 달이다. 그 끝이 어디인지 여전히 알 수는 없지만 열심히 힘차게 걸어가보자. 걷는 여자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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