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를 꼬신 적이 없다. ’행복하게 해주겠다‘’손에 물 안 묻히고 살게 해 주겠다‘는 식의 멘트는 커녕, 그 흔한 프로포즈 이벤트도 없었다. 다만.. ”결혼하면 (지금 이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 같아 싫다“고 하자 ”그러면뭐 어때“라고 답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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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사랑이란, 잘 먹(이)는 것. 봄엔 꼭 달래장을 만들어 식탁에 올리고, 여름엔 열무비빔국수와 얼음을 동동 띄운 오이냉국이 주특기. 가을엔 대하구이와 꽃게탕을 먹이려 서해안을 데려가고, 겨울엔 온라인으로 석화와 꼬막을 쇼핑한다. 생일엔 쌀밥에 미역국과 불고기와 잡채가 차려진 저녁 밥상이 필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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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회의원 선거날. 휴일에 근무하고 평일에 쉬는 터라 일을 시작한지 두 달 만에 남편과 함께 보내는 휴일이었다. 매년 결혼기념일엔 여행을 갔었지만 올핸 그러지 못해 내심 이벤트를 기대했다. 하지만 남편은 시댁행을 택했고.. 니가 그럼 그렇지, 하면서 속으로 팔자 타령을 했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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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 5년을 살면서 어머님의 손맛에 길들여진 탓에 분가 후에도 늘 어머님 반찬을 그리워 한다. (그러나 합가는 사절 ㅋ)그래, 난 나쁜며느리. 이번에도 반찬이나 잔뜩 땡겨(?) 오자, 는 심보로 갔더랬다. 이런저런 얘기 하며 시간을 보내다 도토리묵을 하셨다길래 이게 웬 횡재야 하며 챙겨서 나서려는데, 아버님이 뜬금없이 내게 그러신다. ”힘들면 (회사) 다니지 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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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가슴 한 가운데서 뜨거운 공이 울컥 하고 올라왔다. 아마도 내가 휴일에 쉬지 못한다 하니 힘든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하신 듯 하다. 여섯 번의 뇌 수술과 오랜 병원 생활을 하신 후 워낙에 말수가 적으셨던 아버님은 최근들어 더 말씀이 없으시다. 그런 아버님이 오래간만에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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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첫인상은, 여자 화장실 앞에서 어머님의 핸드백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남편과 결혼해야겠단 생각을 굳힌게 말이다. 시댁에 사는 5년 동안, 당신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손녀딸을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고, 오는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맞이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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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버님을 닮았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건 당연하겠지. 그 시절, 내게 도망쳐도 된다고 포기해도 된다고 말해준 사람은 남편이 유일했다. 그리고 지금, 아버님은 내게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다. ‘어차피 결론은 본인이 갖고 있는’, 기 쎈 마나님과 오십 년 넘게 해로한 아버님의 지혜로움일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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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결혼기념일. 커플링이나 맞출까 했지만 금값이 너무 올라 그냥 말기로 했다. 결혼 반지 없이 산 지 오래기도 하고 솔직히 반지가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얽힌게 많아 커플템은 그닥 갖고 싶지 않다. 두 개 살 돈으로 그냥 내 꺼 비싼거 하나 사고싶을 뿐?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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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 평범한 매일을 갖기 위해 우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뜨거워 불타 없어질 만큼 강렬한 사랑은 이제 내겐 너무 힘들다. 고장난듯 안난듯 오래된 우리집 보일러처럼 적당히 미지근하게,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드라마 ‘연애시대’의 대사에 ‘연애는 어른들의 장래희망’같은 거라던데, 각자의 장래희망이 뭔지 오늘 저녁 남편과 딸램과 함께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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