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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Park Nov 06. 2023

주의 말씀 (시 119:96-105)

끊임없이 삶의 의미가 되는 살아있는 말씀




여러분은 성령이 살아서 자신을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 가장 많이 느낍니까? 개인의 영성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저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낍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찬양 부르는 시간을 즐거워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학교는 미션 스쿨이라 일주일에 한 번 종교 시간이 있어서 말씀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기드온선교회에서 만든 시편 책자를 받아 말씀을 배우고 암기하고 했습니다. 처음 시편 책을 받았을 때도 성경이 참 두껍구나, 생각했는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진짜 성경책을 받고 그 두께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걸 언제 다 읽지?' 그런데 창세기부터 성경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다 읽으면 그다음에는 뭘 읽지?' 하나님 말씀이 좋아서 교회를 다니면서도 사실 말씀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진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들 말하는 것과는 달리 세상의 어떤 학문이든 그것은 그것의 마지막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한 과정을 완성하면 그다음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처음 학문에 발을 들이면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 막막하지만, 사실 1년 2년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결국 종착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고백합니다(96절 읽기).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마지막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학문을 배우는 것은 잔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아서 그것이 가득 차는 마지막 순간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처음 성경책을 받고 그것을 읽을 때, 마치 세상의 학문처럼 내가 언젠가 이것을 다 읽고 전도사님, 목사님처럼 하나님에 대해 철저하게 알게 될 날이 올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을수록 그 반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잔에 물이 차는 것이 아니라, 잔이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내가 몇 가지 깨닫게 되면 그것이 내 잔을 크게 채웠다고 생각했는데, 믿음이 깊어질수록 내가 잔을 온전히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잔은 하나님과 성경이고 채우는 것은 나의 지식입니다. 학문의 잔은 내 지식으로 언젠가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말씀이라는 잔은 나의 지식으로 채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 잔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66권의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계속해서 읽다 보면 분명히 그 끝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조명하고 깨닫게 하고 인도하는 성령을 통해 우리는 66권의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66만 권의 성경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가장 마지막 구절에는 요한의 심한 거짓말이 하나 나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아니, 사람이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한 사람에 대한 일생을 책으로 길게 길게 늘여 쓴다 할지라도 책이 몇 권이나 나올 수 있겠습니까? 물리적인 관점으로 볼 때, 요한은 과장이 매우 심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관점으로 본다면, 즉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움직이고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면, 예수님의 행위와 가르침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로 남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 모두의 삶에서 의미를 주고 도전을 주고 생명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풍만하고 그것이 살아서 역사하는 것을 믿음으로 본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의 말처럼 나의 온 삶과 그리고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세상의 모든 학문은 우리의 삶을 책임지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하기 않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합니다. 먼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따라 벤치마킹 하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성공을 위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가족을 돌볼 시간도 부족할 만큼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 어느 것도 그 사람에게 정해진 성공을 보장해 주진 못합니다. 지식은 살아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역사합니다. 나는 수고하지 않았는데, 나는 배운 것이 많지 않은데 놀라운 복을 경험합니다. 철저히 준비하지 않아도 더욱 완벽하고 가진 능력이 없는데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세상을 창조하고 주관하고 살아계신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97~100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경험과 상관없이 원수보다 지혜롭습니다. 곧, 어떠한 원수도 시편 기자를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그의 명철함이 모든 스승보다, 그리고 노인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스승보다, 더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노인보다 도리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말하는 98절의 주의 계명, 99절의 주의 증거, 100절의 주의 법도는 모두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한 말씀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새로운 지혜와 명철함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시편 기자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제한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을 날마다 다시 묵상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을 받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에 등장한 이 고백은 결국 요한복음에 등장한 요한의 고백과 동일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두려면 이 세상 모든 곳을 내어 놓아도 모자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그 무엇보다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지식이 영향을 주는 것은 나의 머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영향을 주는 것은 온 세계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기 위해 자신의 발이 악한 길로 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본문 101절 읽기) 그러나 그는 그가 악한 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규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주께서 자신을 가르쳤기 때문이라 고백합니다. (102절 읽기) 이를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에 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지키면 그 예배가 우리를 지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의 말씀을 사모하면 그 주의 말씀이 우리를 사모합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의 말씀이 자신의 입에 꿀보다 더 달다고 말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한 번 먹었다고 해서 그것이 다음부터 맛이 없는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은 한 번 먹으면, 다시 생각나서 또 먹고 싶은 법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인 꿀을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생각난다고 고백합니다.


말씀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이 세상의 모든 지식보다 나으며, 더 나아가 죄의 길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1-24). 바울은 사람이 입고 있는 두 가지 옷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는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이라는 옷이고, 하나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라는 옷입니다. 우리는 모두 옛사람이라는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이라는 옷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한 가지 옷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면, 옛사람을 벗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새사람을 입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이 여러분의 새사람이 되어 삶을 인도하고 원수에게서 승리하는 역사를 반드시 만들어 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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