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외교관이던 아버지 덕에 일본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아시아에서 보낸 그녀는 작품에 일본의 문화나 일본식 문체를 자주 등장시키곤 한다. 이런 동양풍의 분위기가 그녀의 작품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며 인기에 한 몫하고 있다 . 노통브는 벨기에인이며 프랑스 문단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가다. 1992년, 향년 25세에 첫 작품 <살인자의 건강법>이 프랑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아멜리 노통브 신드롬’의 주인공이 된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그녀만이 가진 특유의 기괴한 블랙 유머와 촌철살인과 같은 신랄한 대사로 단박에 거대한 팬덤을 만들어 낼 만큼 기지가 보이는 작품이다.
내가 이 책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두 주인 공 사이에 오가는 대사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발상 때문이다. 화자나 제삼자를 내세워 상황과 작중 인물의 심리에 대한 친절한 묘사나 설명을 하지 않고도, 오직 대화를 통해 인물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인물의 내적 심경 변화를 그려내며 마지막 반전까지 던져주는 그녀의 문학적 상상력에 무릎을 딱! 하고 내리친 적도 있다. 이런 그녀의 문학적 고유함에 사로잡혀 나 또한 대화로만 이루어진 단편 소설을 끄적이기도 했다. 물론, 위트와 괴랄함, 독설과 지식, 언어적이자 심리적 팽팽함이 귀신 같이 조화로운 그녀의 소설과 달리 어둡고 침울하기 짝이 없는 졸작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글짓기에 있어 기발한 상상력만큼은 그녀의 것을 닮고 싶어 한 내 나름의 결과물이다.
노통브의 처녀작에 매료된 이후, 나는 그녀의 모든 소설을 섭렵했다. 그녀는 1년에 꼭 한 작품씩 출간하는 다작 작가이기도 했는데, 그녀의 젊은 시절 소설들은 과연, 노통브다움을 가감 없이 뽐내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책은 <제비 일기>다. 이 책에는 사랑에 실패한 후 인간의 감정 스위치를 꺼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살인청부업자로 변해버린 한 남자가 나온다. 아주 무미하고 건조한 문체로 그의 살인 행위를 그려나가던 노통브는 잘 흘러가던 플롯 속에서 별안간 제비 한 마리를 죽여 버린다. 어느 날 문득 남자의 집 창문으로 날아 들어와 티브이에 머리를 처박고 벽 사이에 끼여 죽은 제비. 제비의 죽음을 마주한 이후 남자는 자신이 죽였던 장관의 딸을 떠올리게 되고, 묘한 감정 – 아마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랑 –을 느끼며 그녀가 쓴 일기장을 목숨 걸고 사수하게 된다. 종국에는 일기장을 뺏기지 않으려 한 장 한 장 뜯어먹는 미친 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감각이 마비된 듯했던 살인자의 삶에도 사랑의 불씨가 여전히 존재함을 역설한다. 사랑이란 감정을 잃고 누군가의 감정을 말살하는 살인 행위를 일삼던 자가 결국 날것의 죽음, 있는 그대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 경지의 감정인 사랑의 감정을 되찾았다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노통브스럽기 그지없다. 거기다가, 작가의 말에 나오는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살인자가 되었을 거예요.’란 그녀의 첨언은 노통브스러움을 배가시킨다.
노통브다움, 노통브스러움이란 작가의 독창성과 특유성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가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녀의 한국어 판 소설은 문학세계사라는 출판사를 통해 발매되는데 대부분의 책 표지에 그녀의 얼굴이 인쇄되어 나온다. 조막만 한 얼굴에 속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큰 눈과 앙 다문 입이 고집스러워 보이는 외향의 그녀가 독자를 맞이한다. 특히, <불쏘시개>란 작품에는 그녀의 커다란 두 눈만 상단에 덩그러니 인쇄되어 독자로 하여금 작가에게 제대로 관철당하는 느낌을 지워준다. 독자가 작가의 작품을 평가하기 이전에 작가가 독자에게 자기 책을 읽는 이를 끝없이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마구 전달하는 이 메시지는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책을 아주 열심히 읽게 만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녀의 당당함이 좋았다. ‘내 책을 얼마나 잘 읽는지 지켜보겠어.’라는 듯한 그녀의 자신감 넘치고 독기 어린 시선을 가지고 싶었던 까닭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그녀의 책은 <너의 심장을 쳐라>이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와 매번 나를 헷갈리게 만드는 이 책은 노통브다움이 많이 옅어진 책이다. 무릎을 딱! 하고 치게 만들 만큼 당찼던 그녀의 젊은 시절 패기나 반전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여전히 분명했다. ‘당신은 지금 적절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
나는 아멜리 노통브의 팬으로서 적절하게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 파워풀한 그녀의 작품은 나 역시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나이가 들어 노쇠한 육체와 그만큼 힘이 빠진 상상력으로 쓰인 덜 노통브다운 글은 나도 잔잔한 여운으로 읽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다. 애정 하는 그녀의 문체가 예리함에서 유순함으로 바뀌었을 때, 범인들이 아무리 이제는 그녀의 시대가 지났다고 선언할지언정, 진정한 독자라면 그 변화 사이에 무색의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그녀의 시간까지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