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나서부터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이 더 예민해졌다. 어떤 날은 꿈에서도 글을 쓴다. 꿈속에서 귀신같은 문장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무릎을 딱 치며 내일 요놈을 꼭 써야지 하고 깜빡 한 잠자고 나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천하제일의 문장가가 될 기회를 잠 때문에 놓쳤구나. 안 그래도 글 쓰는 재주가 미천하여 어떻게든 무엇이든 끌어당겨 써야 하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으니 참 아쉽다. 글 쓰는 것도 한 낮 맑은 제정신에 좋은 글이 나와 주는 타이밍이 딱 맞아야 한다. 잠이 오는 내 몸을 탓할 수도, 꿈속에서 쓰지도 못할 영감을 내려준 하늘을 탓할 수도 없는 이런 날은 평소 좋아하던 필력가의 산문집을 읽는다.
이외수의 에세이집 하나를 읽다 보니 딩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딩크족은 불효 막심한 쉐키들로 짐작으로만 부모의 고충을 이해하고 체험으로 이어지지 않는 자식들 이란다. 나는 그의 외모와 문체에서 뿜어내는 고유한 기이함을 참 좋아하지만 이럴 땐 좀 싫어진다. 남자라서 이렇게 쓴 것이 너무 분명할 때. 여자라면 달랐을 문장이다. 그렇담 나도 딩크인데 나도 불효자인가. 우리 부모님은 나의 선택을 존중해 준다고 했다. 속으로는 내심 얼른 떡두꺼비 같은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맘도 있는 것 같은데 그 마음을 깨끗이 무시한 나는 이기적인 불효자일까. 자식 된 도리를 위해서 나는 꼭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주군에 대한 충과 부모에 대한 효를 대명률이란 형법으로 다스렸던 조선시대에 내가 태어났더라면 자식을 낳아 부모의 고충을 헤아리지 않은 불효의 벌로 곤장 50대쯤은 달게 맞아야 했으려나?
요즘은 어쩔 수 없이 아이 없이 살자고 결정하는 커플들도 많다. 7년째 난임 문제를 겪었던 내 친구 하나는 병원에 가도 둘 다 큰 문제가 없다고 하니 애가 왜 안 들어서는지 이해할 길도 없이 딩크가 됐다. 결혼 한지 꽤 지나 주위에서 애 안 낳느냐고 사정없이 물어 댈 때마다 그냥 어색하게 웃어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래서 그녀는 힘겹게 딩크족이 되고 말았다. 저출산 국가에서 젊은 부부가 애를 왜 낳아야 하는지 인정사정없이 계속 역설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거기다 대고 ‘저희 난임부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만큼 가슴 사무치는 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딩크가 된 이들 부부는?
나의 딩크의 정의는 이렇다. DINK, Double Income, if that is what you want, No Kids, that is what I want. 당신이 맞벌이를 원한다면 아이 없이 사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이란다.
나는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대한민국 여자로서는 괜찮다는 직업을 가지고 나서 타의에 의해 선 시장에 투입되었다. 그 덕에 여러 선 자리를 거쳐 몇몇 이성을 만나 보았다. 직업군은 다양해도 결혼에 대한 생각은 참 한결같았다. 일단 본인 정도면 결혼을 위한 배우자감의 직업의 마지노선이 교사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대부분 인생 미션 중에 이제 남은 게 딱 결혼뿐이니 어서 빨리 마지막 임무를 해치우고 싶어 했다. 이들 대부분이 어서 빨리 가정을 꾸려 여우 같은 마누라에 토끼 같은 자식을 보고 싶어 했다. 여우 같은 마누라를 보기 위해, 결혼을 자기 인생의 마지막 미션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뭐 여우가 되어줄 의향도 있었다. 그런데 토끼 같은 자식을 키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 아닌가. 집토끼들 어마 무시하게 먹고 어마 무시하게 싼다... (개인적인 경험일 뿐 모든 이성을 일반화하는 것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나는 육아는 결혼과는 아예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혼이야 다 큰 성인 둘의 합의에 따라 진행하기도 무르기도 하는 선택의 문제라지만 자식을 낳는다면 책임져 기르는 것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의무이다. 대부분은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애를 낳고 싶은 마음까지는 있었지만, 육아에 대한 생각과 이해도는 깊지 않았다. ‘너무 귀여워서 한 세 명은 낳고 싶은데, 애들은 낳아놓고 살다 보면 다 알아서 크지 않을까요?’라고 말해 주는 사람은 차라리 귀엽기라도 했다. '저는 애를 낳고 기르는 것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여자의 몫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모성애라는 말은 자주 쓰여도 부성애라는 말은 그만큼 안 쓰이잖아요.’라고 말하는 출산과 육아에 자기는 야릇한 기분만 내려는 고 놈이 나타난 후에는. 육아를 구체적으로 고민해본 사람은 그나마 이러했다. 본인이 캠핑을 좋아하고 별 보는 것을 좋아해 내 자식이 태어나면 캠핑을 데려가서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구경하겠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캠핑 따라갈 만큼 클 때까지는 어찌하실 건지... 이것도 나에겐 그냥 환상에 가까운 소리 같았다.
이런 사람도 있었다. 나를 콕 찍어 여교사니까 소개해달라는 남자. 만나봤다. 왜 여교사를 만나고 싶으셨냐 물어봤다. 방학이 있으니 애 키우기에 좋을 것 같고 맞벌이해서 집 대출금 갚기도 좋을 것 같단다. 이야~ 딥따 솔직한데? 차 한 잔만 마시고 헤어졌다. 저런 사람도 있었다. 서로 마음에 들어 한 번 진지하게 만나 볼까 하고 만나던 사람인데, 앞서 언급한 ‘이런 사람’과 비슷한 소리를 하길래 그럼 혹시 내가 교사가 아니어도 나를 만날 거냐고 물어봤더니 마구 흔들리던 동공의 소유자. 헤어졌다. 더 좋은 사람 만나시라고 말하자마자 바로 카톡 프사에 하트 표시와 딴 여자 사진이 올라오던 그였다.
별로 좋을 기억 없는 내 선 경험을 모아 요약하자면 이 정도가 되려나?
여전히 출산과 육아는 여자의 몫이니 여자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시대의 흐름상 남자도 참여해야 하는 바 하긴 할 건데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고 아직 구체적 계획도 없고 어쨌든 낳아 놓으면 애는 클 테고 애가 크면 손잡고 캠핑 가서 별구경은 하고 싶기는 한데 거기다가 맞벌이하며 집 대출금도 같이 갚을 여자여야 하니 그러려면 방학 있는 교사랑 결혼하면 좋은 것 같은데... 모르겠다, 그냥 나랑 결혼을 전제로 만나 볼래?
나는 원더우먼이 아니다. 원더우먼이 될 생각도 없다. 내 하루 24시간 중 기본 8시간은 사회의 일꾼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필수적으로 줄어들 8시간 정도는 예민한 내가 잠자는 시간으로, 나머지 8시간은 누군가의 여우 같은 아내로, 누군가의 곰 같은 며느리로, 빚 갚는 채무자로, 한 가정의 살림꾼으로 거기다 나 하고 싶은 거, 그림 그리고 책 읽는 거 하나 정도는 해야 하는 취미러에다 토끼 같은 자식들 엄마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 모든 것을 다하면서는 못 살 거 같다. 거기다가 내가 교사가 아니었으면 사랑하지 않았을지 모를 정도로 모호한 남편 쉐키(이외수 씨의 표현을 빌렸습니다)를 믿어가면서 까지는 더더욱 못 배긴다. 내가 딩크가 된 것은 내게 주어 질 다수의 책무의 주무를 맡는 것에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이지 불효자라 서가 아니다.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엄마로의 승급을 포기했다. 프로 주부가 되어 저 모든 것을 일로서 받아들여 노동계약서 상 하루 8시간만 육아를 포함한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합당한 월급을 받으며 초근 시 수당까지 받으면 또 모를까... 대한민국의 많은 여자들이 아마 또 주부에다 엄마에다 맞벌이까지 하라면 그냥 곤장 50대 맞고 치우겠다고, 두 팔 걷고 나 먼저 매 맞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싶다.
내 나이 30세 때 같이 근무하던 한 남자 생물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여자가 왜 일찍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야 하냐면 20대 여자의 자궁이 제일 건강하거든. 건강한 자궁으로 임신을 해야 건강한 아이를 낳아. 여자랑 크리스마스의 상관관계 알지? 하하. 스물다섯 넘어가면 여자는 매력 없어~ 이미쌤 올해서른 아니야? 이미 늦었네. 올해 안에 빨리 애 낳아.”
생물학적으로는 맞는 말일지 모르겠다. 그렇담 기왕 생물 수업 시작하신 거 좀 더 생물학도 답게 남자의 노화와 남성 수태력과의 상관관계도 설명해 주시지 그랬나... 여자 나이랑 크리스마스의 상관관계라... 글쎄, 25세는 이미 오래전에 훌쩍 넘은 지금도 나는 가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매력적인 30대 여자에게는 참지 않는 것이 또 매력일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