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과 장점 : 강강약약,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함, 할 말은 하는 성격, 논리적,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평소에는 조용함, 한 번 꽂히면 끝까지 밀어 붙임, 책임감 강함, 맺고 끊음과 공사 구분 확실, 주변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음.
성격의 단점 : 강강약약, 융통성과 애교가 없음, 사회성 부족, 저질 체력, 말투가 날카롭다는 지적을 많이 받음. 의외로 남 앞에 나설 때 소심한 구석이 있음.
부모님과의 관계 : 좋음. 아버지와는 상이한 정치 성향과 세대차이로 간혹 트러블이 있음
친구들, 지인들과의 관계 : 좁고 깊게 사귐. 극호와 극불호로 나뉘는 주변인들이 있음. 멘토로 따르는 이가 있음. 자연인이나 속세에 욕심 없는 자들과 친함
좋아하는 것 : 글짓기, 교육법전 읽기, 드라마 보기, 반려견 돌보기, 유튜브 멍 때리기 좋은 영상 보기
싫어하는 것 : 공짜밥, 꼰대, 허세 극혐, 권력 남용, 시답잖은 농담, 회식, 술자리 등 모임 참여 권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 임용고시 수석, 노조 지부장으로 선출된 순간
가장 좋아하는 순간 : 정퇴. 정퇴 하기 위해 일하는 타입
가장 아끼는 물건 : 교육법전 I, II
“아오, 씨발, 또 패스워드를 잘 못 쳤네.”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는 순간 영모의 입에서 쌍욕이 터져 나왔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쉽게 설정해 둔 비밀번호 ‘0000’ 대신 ‘아름고등학교18’을 쳐 넣었기 때문이다. ‘아름고등학교18’에서 ‘18’이 단순히 ‘1학년 8반’의 줄임말인 것처럼 ‘씨발’이란 천박한 한마디로 직장의 위대함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퇴근 후에 오픈한 개인 노트북에까지 직장 컴퓨터의 패스워드를 쳐 넣는 무의식이 평범한 직장인의 소중한 워라벨을 방해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을 따름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정퇴를 했다면 다음 날 출근까지 교문은 그의 뒤통수에만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몇 자 안 되는 패스워드란 놈이 기어이 그의 손끝에 붙어 홈 스위트홈까지 따라온 것이다. 직장 일은 오롯이 직장에만 남아야 한다는 영모의 철칙이 손가락 하나, 아니 열 개에 무너진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이자 완벽주의자인가 보다. 패스워드 입력 오류 따위에도 이토록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공사의 구분에 있어서는 어떠한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예민 보스이기 짝이 없는 모양새다.
영모는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약지로 0 네 개를 꾸꾹 꾸꾹 눌렀다. 화면이 화악 밝아지며 띠릿띠리~,하는 환영곡과 함께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넨다. 영모가 이렇게 정성껏 노트북을 켠 이유는 오늘부터 무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웹사이트, ‘글단지닷컴’에 한 달 동안 새로운 에세이를 연재하기로 해서다. 영모는 ‘영모의 글 단지’를 누르고 제일 먼저 구독자 수를 확인했다. 58명. 오! 십팔 명. 몇 주째 제자리걸음인 그의 팬들이라니, 프로필에 한껏 미모 오른 그의 셀카까지 올렸는데도 변함없는 숫자다. 영모는 심드렁한 얼굴로 거울을 한 번 쳐다보았다. 넙데데한 상판 위에서 이목구비가 마구잡이로 널뛰는 경향은 있지만, 독자성이라든지 특이한 개성이라든지 하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영모는 자기 글도 꼭 자기 얼굴 같다고 생각했다. 구독자 수를 급등시킬만한 고유함과 매력이 부족한 무미한 글. 영모는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글부터 짓기로 했다.
<너의 광기에 올리는 서신>
영모는 무시무시한 시리즈의 제목을 붙이고 소제목을 휘갈겼다.
‘머듐듀ㅛ. arnyakfjyakjajyjarjykckjhfkhm’
외계인쯤은 돼야 사랑할 법한 소제목이 완성됐지만, 조용히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제대로 된 한글을 적어 내려갔다.
첫 번째 레터: 영모! 오늘, 너의 용기? 광기? 똘끼?아무튼 칭찬해(feat. 주현영 기자)
To. 이십이 년 십이월 이십이 일 12시 10분의 영모
금일 12시 20분경, 즐거운 점심시간을 10분 남겨두고 너는 콜을 받았지. 내선번호를 확인해 보니 교장실이었어. 순간 입맛이 확 달아나는 기분을 경험한 너는 오른쪽 관자놀이를 지그시 짓누르며 터덜터덜 그곳으로 향했지. 마치 너의 가녀린 두 발목에 철퇴를 매단 듯 발을 질질 끌며말이야.
끼이이익
철문 같은 교장실 문이 요란하게 열렸어. 휑할 정도로 거대하고 혼자만의 어떤 짓도 가능한 부러운 그 공간엔 심 교장이 홀로, 자기 커피만 내린 채 자기 입만 입이라는 듯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지.
- 부르셨어요?
심 교장의 턱 끝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아 고개를 치켜들면 너의 시선이 닿는 곳에 대한민국 국기가 걸려 있었지. 너는 태극기에 멍하게 시선을 고정한 채 애국가를 읊조렸어. 사방팔방 침을 튀기는 심 교장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너의 두 귀가 절대 알아들을 수 없도록 너는 애국가를 부르고 또 불렀어.
-... 알겠습니까? 이 선생님?
- 아니요. 모르겠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너의 애국가 허밍이 4절의 끝까지 계속될 줄은 몰랐을 거야. 너는 정말이지,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것 같아. 애국가 4절을 넘어서는 심 교장의 긴 훈계를 참아냈으니 말이야.
...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의 마지막 구절을 뱉어 내자마자 너는 태극기에서 시선을 거둬 심 교장을 쳐다봤지. 마치, 오겜에서 영희의 머리와 눈알이 180도 돌아가듯 섬뜩하게.
너는 벌떡 일어나 '교장 심훈계'라고 적힌 명패가 놓인 책상으로 걸어갔어. 책장 한 구석에 뽀얗게 먼지 쌓인, 999 년간 인간의 간을 빼먹으면서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구미호처럼 그동안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은 것 같은 두툼한 3000 페이지짜리 ‘2020 개정판 신교육법전 I’을 빼들었지.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너의 모션을 따라 심 교장 눈이 놀란 토끼의 그것처럼 둥그렇게 변해갔어. 너는 그런 노골적인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법전 따위는 보지도 않고 딱! 초중등교육법 제20조가 적힌 페이지를 펼쳐내더군. 그 순간 허, 하고 심 교장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 교장선생님, 초중등교육법 제20조 4항 및 동조 5항, 읊어 주시겠습니까?
너의 요청에 심 교장이 저도 모르게 교육법전을 향해 눈을 내리깔았지. 그때 너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손바닥을 교육 법전 위에 팍! 하고 올려놓았어. 놀란 토끼눈에 충혈기까지 보이는 심 교장이 너를 쳐다봤을 때 배시시 지은 너의 웃음은 정말이지 섬뜩하기 그지없었달까.
- 아이, 교장선생님, 이 정도는 당연히 외우고 계실 것으로 사료됩니다만...
너는 광기 그 자체였어. 진정 미친 자의 면모에 심 교장은 알고 있던 법도 다 까먹을 지경이었지.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했을까, 심 교장이 역정을 내기 시작하더군.
- 이 선생님, 지금 나랑 말장난합니까? 교장을 놀려요? 선생님 업무가 기숙사 담당 아닙니까!
- 놀리는 건 교장선생님 이시죠. 초중등교육법 제20조 4항,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동조 5항, 행정직원 등 직원은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의 행정실무와 그 밖의 사무를 담당한다. 따라서 저의 담당 업무는 기숙사 내 학생 교육 및 생활지도에 해당하겠네요. 지금, 점심시간 10분 전에 호출해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숙사 사감의 근태 관리 및 보고를 교원에게 요구하는 교장선생님이야 말로 범법 행위로 저를 놀리고 계시는 것 아니십니까? 담임 업무만으로도 벅찬이 시국에!
- 뭐, 뭐요? 범법 행위? 이 선생님, 지금 말 다했어요?
- 아니요. 덜했습니다. 학교장에게는 교원 행정업무 경감의 책무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활관, 기숙사 등, 학교 보조시설의 직원 관리를 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에게 전가하는 우리 교장선생님은 이 책무성을 아예 망각하신 것 같네요? 그럼, 이건 배임 행위겠네요.
- 뭐? 배임? 이 선생, 지금 여기가 무슨 사기업인 줄 알아? 범법, 배임, 횡령, 이런 말이 도대체 왜 나오는 거야?
- 횡령이란 말은 안 했는데요. 교장 선생님...?
- 이 선생! 지금 직원이 상관 말꼬리나 잡고, 이게 진짜 뭐하는 짓이야!
- 관리자의 부당업무 지시에 불복하는 중이죠. 이해가 잘 안 되시면 제가 국민신문고 통해서 교육부에 대신 질의해드릴까요? 적법한 업무 지시인지 아닌지?
심 교장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어서 꺼지라는 손짓을 했어. 손목만 까딱 거리는 것으로 보아 말할 힘은 이미 오래전에 쭉 빠진 듯 보였지. 너는 공손하게 두 손을 배꼽 위에 공수하고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한 뒤 교장실을 빠져나왔어. 잠시 문 앞에서 숨을 고르는 너의 귓가에 심 교장의 혼잣말이 들려왔지. 교장에게 이렇게 대드는 선생은 생전 처음 본다고. 너도 혼잣말로 답신을 보냈어.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쉽답니다,라고. 심 교장은 애석하게도 끓어오르는 속천 불 탓에 너의 대답을 못 들은 것 같아 보였어. 그러고 나서 너는 급식실로 곧장 달려가 고봉밥을 퍼먹었지. 오늘은 이 정도로 먹을 자격이 된다면서...
부른 배를 퉁기며 급식실을 빠져나오는 너에게서 흥얼흥얼 콧노래가 흘러나왔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가 어느새 너의 18번이 되었나 봐.
심 교장은 너를 광인으로 여길 지언정 나는 불의에 항거하고 부정당한 권력에 맞선 이성과 지성의 산물인 용기 있는 자라고 생각한단다. 이런 바틈 업의 용기가 모이고 모여 잘못된 관행과 불합리가 교정될 것이니 말이야. 너는 오늘 그 작은 변화의 씨앗을 뿌린 거야. 싹은 진 땅을 뚫고 피어나고, 줄기는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리며 자라나며, 잎은 온몸의 체관을 찢어 나온단다. 그러니 괘씸죄의 명목 하에 앞으로 그 어떤 역경을 맞이하더라도 오늘, 이 처음을 후회하지 말거라. 그냥, 네 쪼대로 자알 했다고 여기자꾸나. 어차피 시간을 되돌려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잖니.
From. 이십이 년 십이월 이십이 일 이십 시 십팔분의 영모
영모는 여기까지 글을 쓰고, ‘완료’ 버튼을 눌렀다. 새 글이 발행되자마자 구독자 수에 변동이 생겼다. 59명. 오! 십구 명. 영모는 부르기엔 기깔났던 숫자 58을 추억하며 이 가슴 두근두근한 변화를 마음에 두고두고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