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alk in the fall
구보씨는 일평생 가슴속에 작은 짐가방을 꾸려 두고 사는 삶을 살았다.
아.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으면!
타고난 이방인
사실 집에 대한 애정이나 소속에 대한 집착은 어릴 때부터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이 바빠 동네 친구 집에서 놀다가 부모님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어버리는 날들이 많았고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을 졸라 도쿄로 어학연수 겸 긴 도피형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첫 직장을 구하면서 나는 드디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예의 가슴속 짐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는 늘 다른 곳을 꿈꾸며, 내 몸만 사무실에서 스르르 빠져나오면 정리할 것이 없을 정도로 회사 비품 외에는 아무것도 나의 물건을 회사에 두지 않았다.
언제든 나는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관계도 마찬가지.
그렇게 나는 동료들에게 친하지만 때로는 '어쩐지 알 수 없는 사람'으로 통했다.
곁을 잘 내어 주지 않는 나는 언제든 그 사람들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멀리 더 멀리
지금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이제껏 떠나본 곳보다 조금 더 먼 곳으로 떠나왔다.
무거운 고양이를 안고 장장 11시간의 하늘을 날아서
동유럽 안의 체코, 수도인 프라하에서 차로 3시간 반 떨어진 중소도시, 그 중심에서 다시 차로 30분.
멀리멀리 더 깊숙한 곳에 작은 광장이 딸린 조용한 마을에 도착했다.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거친 억양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산책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은근하게 다정하게 인사를 해준다.
요즘은 산책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다가가서 알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하고 있다.
아저씨는 어디에서부터 산책을 시작했고, 함께 걸으면서도 주인만 바라보는 커다란 개의 이름은 무엇인지.
동네 산책길에 보는 이 근사한 건물은 일반 주택인지, 사무실 용도인지.
건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방은 어떤 분위기일지.
들어가자 마자 커피를 내릴지 위스키 언더락을 한 잔 만들지.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담배를 하나씩 꺼내어 물고, 어떤 안부를 나누는지.
구보씨는 어디에서든 고향을 떠나 임시 생활을 하는 이방인이었다.
이 낯선 도시에서 산책자 구보씨가 만나는 체코의 모습에 대해 이 공간에 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