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보씨 Jan 02. 2021

우리가 믿는 것은 이런 작은 미신들

A poem for small things

체코의 많은 크리스마스 풍습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가족이 크리스마스에 모여 각자가 가진 사과의 반을 가로로 잘랐을 때, 반듯한 별 모양의 씨가 나오면 한 해에 행운이 깃든다는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는 작은 미신 같은 것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보헤미아 지방의 마을마다 집집마다 전해져 왔을 이런 작은 미신에 기인한 풍습들이 좋다.



행운의 징표

이 외에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인 크리스마스에 앞으로 다가올 한 해의 행운을 빌며 통용되는 풍습이 많은데, 그중의 또 하나는 크리스마스에 행운을 빌며 온 가족이 먹는 잉어 수프와 잉어 까스가 있다.


체코 대형마트의 노점에서 팔딱팔딱 뛰는 내 상체만 한 잉어들을 판매하는 모습은 일 년에 단 한 시즌, 크리스마스 전 주에만 볼 수 있다.

체코는 바다가 없어서 생선이 귀한데 크리스마스에는 그 귀한 잉어를 온 가족이 수프와 생선까스로 만들어 즐기는 것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천주교인이 많은 체코에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들의 제자들이 어부였다는 것과 떡과 물고기로 이루었다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내용을 더듬어 보면 잉어가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하나의 이벤트에 지나지 않지만 체코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의미를 가지는 성스러운 명절과 같은 셈이겠지.


더 재미있는 것은 깨끗이 손질한 잉어 비늘을 접시 아래에 하나씩 놓아둔 크리스마스 본식을 즐기고 난 후, 그 잉어 비늘을 지갑에 넣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 년 내내 금전운이 좋다는 미신을 믿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이 비슷한 미신을 나는 믿고 있다.

가끔 바닥에 빠져 있는 고양이 수염을 주워 지갑에 넣어 다니면 금전운이 좋다는 내용인데, 예의 잉어 비늘과 같은 맥락이다.

뭐 소중한 나의 고양이의 하얗고 기다란 수염이 빠지는 일은 빈번하지 않은 일인데 그것을 우연히 주워서 소중히 간직하면 뭔가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고 하찮은 믿음 같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말하기엔 조금 부끄러운 나만의 작은 미신.




사과와 시나몬 스틱을 넣고 끓인 글뤼바인

그런데 이런 사과 별점 같은 미신 같은 이야기가 터키에도 있었던 것 같다.

한창 커피 문화에 빠져 있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터키에서는 곱게 분쇄한 커피가루와 설탕을 팬에 넣고 끓인 다음 커피잔에 부어 커피가루를 충분히 가라앉힌 다음에 위에 남은 맑은 커피를 마신다.

그 커피를 다 마시고 난 후, 가루만 남은 커피잔을 잔받침에 뒤집어 커피 가루가 나타내는 모양으로 점을 치는 것이다.


커피 가루가 새의 형태로 나오면 좋은 소식, 산 모양은 장애물, 해마 모양은 승진이나 취업 소식... 이런 식으로 점을 치는 것인데, 좋은 이야기는 믿고 안 좋은 이야기는 웃어넘겨 버리는 일종의 재미로 보는 미신 점이다.





남은 사과로 만드는 따뜻한 와인 '글뤼바인' '뱅쇼'

오늘 내가 이 작은 미신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하게 된 것은 밤사이에 하 수상한 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가지고 있지도 않은 큰돈을 도둑맞는 꿈인데, 꿈에서 어찌나 생생하고 분했던지 대성통곡을 하면서 깬 것이다.

깨면서 생각한 것이 '꿈은 반대야' 큰돈을 도둑맞는 꿈이니 대단한 돈이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야.


좋은 꿈을 믿는 것과 안 좋은 꿈을 꿨을 때 꿈이 반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작은 미신'이다.




12월에 먹는 슈톨렌과 글뤼바인

1월 2일, 오늘은 새해의 첫날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손님에게 5 코루나를 잘못 계산하여 내어 주고, 두 번째 손님이 나가는 타이밍엔 하나 남은 유리 샷잔을 떨어뜨려 깨어 먹었다.


이거 이거 괜찮은 거야 나의 2021년?! 

하고 생각했다가 내가 믿는 작은 미신을 소환해 냈다.


액땜이다. 벌써 올해의 액땜을 한 것이다.라고 불길한 생각들을 밀어냈다.

우리가 믿는 것들은 신이 아니라 어쩌면 이런 작은 미신들.

작가의 이전글 슈톨렌, 그 설레는 단어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