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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동 Mar 12. 2023

설렘이 길 필요는 없는 거야

포항 여행 중입니다.


Winters are just around the corner.



물론 지금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지만, 내가 겨울을 좋아하니까. 겨울이 코앞이야. 주어를 바꾸면 좋은 날이 금방 올 거야. 코너 저 편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근처에 있다는 표현이란다. 이번 포항 여행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코너를 돌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또 아무도 모른다.'이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자그마한 것들이 확실해졌다. 예를 들어, 혼자 여행하는 걸 즐기지만, 이전에 비해서 더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던가. 나는 아무래도 낮은 책상이 마음에 든다던가. 이런 것들 말이다. 아, 생각보다 케이크나 빵을 좋아하는 것도. 토핑보다는 츄러스에서 느껴지는 밀가루 본연의 쫄깃함, 혹은 단호박과 치즈의 부드러운 질감에 아주 흡족해했으니까.



어제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휴가를 떠나게 될 줄 몰랐다. 근래에 심적으로 힘든 이야기를 하다가, 평일에 휴가를 떠나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생각해 보니 대학원 입학 후, 박사과정까지 한두 번 빼고는 평일을 비워본 적이 없었다. 연차 없는 삶을 사는 데 익숙하다 보니, 제안을 받았어도 망설여졌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연구는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하다가,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안될 거 같다는 생각과 함께 휴가를 요청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이 무색해질 뻔한 일들을 넘기고, 지도 교수님의 흔쾌한 휴가 승인을 받았다. 휴가 이야기는 내 상태를 말하는 시간으로 이어졌고, 중간에 눈물을 쏟을 뻔한 위기도 넘겼다. 휴가를 다녀온 이후에 조금은 루즈하게 하라는 것과, 어떤 것에 집중하는 게 좋을지도 조언해 주셨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행지는 포항 뿐이어서 더 고민하지 않고, 숙소를 예약하고 버스 편을 예매했다. 이전부터 뵙고 싶었던 블로그 이웃님께도 이번 기회에 뵙고 싶다고 연락드렸다. 이런 즉흥의 연속들이 나에게 너무 새롭다 보니, 새벽에는 설레서 잠이 오질 않았다. 참나. 너무 어이없고 사랑스러웠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포항에 도착해서는 예상에 없던 간이 정류장에 하차해서, 예상에 없는 불의 정원에 들렸다. 항상 궁금했는데 의도치 않은 기회로 보게 되다니 기뻤다. 그러고도 차 렌트를 신청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근처 카페를 갔다. 단호박 치즈케이크의 후기가 좋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주문했다. 정말 맛있다. 잠깐의 여유가 나에게 맛있는 치즈케이크를 선물한 셈이다. 다양한 기회와 시간, 그리고 이들을 만족스럽게 누리면서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드라이브를 더 좋아했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호미곶으로 향했다. 사실은, 호미곶보단 호미 해안반도 둘레길이 더 기대되었다. 해안도로를 걷고 싶었으니까. 호미곶은 10년 전에 왔을 때보다 더 깔끔해져서, 보기 좋았다. 그리고 바다는 당연히 여전했다. 쓱 둘러보고 바로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로 향했다. 참 잘 꾸며져 있었는데, 나는 역시 둘레길이 목적이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분명 테마파크에서 호미곶 방향으로 올라가면 좋다는 후기를 봤는데, 내가 잘못 갔는지 별로였다. 꾸역꾸역 걷고, 또 걷다가 이웃님과 잡은 약속 시간이 다가와서 돌아왔다. 그 와중에 바위에 핸드폰을 기대어 사진 찍는 것도 잊지 않고, 또 애플워치를 활용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차에 타니 갑자기 천둥이 치고, 약간의 비가 내렸다. 두근거렸다. 비가 더 많이 쏟아지면, 비가 오는 날 차 안에서 바다를 보고 싶다는 내 소원도 이루어지는 거 아닐까, 하고! 하지만 비가 세차게 내리지는 않았다. 그저 투둑투둑 내리다 끝이 났다. 실망을 뒤로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걷는 것보다 드라이브를 더 좋아하게 되다니... 아침의 나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해안둘레길을 가장 기대했는데,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은 바닷가가 언뜻 비치는 도로를, 나만의 작은 공간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질주하는 거라니! 잠깐이지만 다른 사람과 나는 다른 취향을 가졌다고, 내심 자부심을 가졌던 것을 반성한다. 나는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친구들과 함께 랜선 친구를 영접하는 시간이 왔다고 한 번 더 설레하고, 차에서 내렸다.



SNS는 누가 허황을 전시하는 곳이라고 했던가. 의지가 있다면 그런 것쯤은 가볍게 걷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모든 것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은 매력적이다. 나도 매력적이고 싶어서 별 이야기를 주절대기도 한다. 분명히 처음 봤는데, 보자마자 알아봤고 대화도 다르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다른 게 이상한 점인데, SNS는 이상한 게 이상한 곳이 아니니까. 만족스러운 만남을 가진 후에 차에 돌아왔는데, 그 안에서 행복하고 짜릿했던 순간이 있어서 그런지, 그새 편하게 느껴진다. 이후에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이동해서 여전한 누각을 보고, 다르지 않은 잔잔한 파도를 보며 쭉 걸었다. 반대편은 상가들이 들어서 있고, 아이돌 노래가 크게 흘러나왔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온 사람들은 흥에 겨워서 길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면서 본인들의 흥을 더 돋운다. 귀여운 강아지들이 산책을 하고 있으면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껏 귀여워할 수 있다.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용기가 된다. 나도 저들처럼 내가 느끼는 고요와 이로 인한 행복을 나누고 싶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 조금은 슬펐다. 놀랍다. 이런 감정을 예전만 해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이런 감정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성장해 있다. 환호공원을 향해 한참을 걷다가, 길을 잘못 들어 돌아왔다. 주차비를 냈기 때문에 최대한 오래 주차하고 싶었는데, 역시 안 되겠더라. 차를 끌고 환호공원 제3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했는데, 스페이스 워크는 8시까지 운행한다. 약간은 아쉬웠지만 어차피 야경을 보는 게 목적이라,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이만해도 좋았다. 쭉 걷다 슬슬 피곤해져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에 포항에서 묵은 숙소는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후기를 꼭 써야겠다 싶어서, 사진들을 찍어놨는데 언젠가 쓰겠지..? 포항 남구에 위치해 있고, 여성 전용 숙소다. 1인실이 있다는 것과, 또 조식을 제공해 주는 데 가격이 53,000~ 58,000원으로 매우 합리적이다. 북구를 주로 여행한다면 멀겠지만, 그래도 나는 재방문 의사가 있다. 모든 소금기와 기름기를 씻어내고, 침대에 누우니 바로 노곤노곤해진다. 숙소에서 넷플릭스를 보려고 했는데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 다음날도 렌트를 할까 고민하다가, 돌아가는 시간을 생각해 보니 혼잡한 시간을 피하려면 한 시 버스 편을 예매해야 해서 택시를 타기로 결정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오전 8시 30분 이후로 제공되는 조식을 먹으러 가니, 주인 분이 계셨다. 어디를 여행했는지, 어디가 좋은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어제 체험하지 못한 환호공원 스카이워크를 걷기로 결정한다. 분명 후기에는 고소 공포가 있다면 다시 고민해 보라고 했지만, 주인분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 말고는 무섭지 않다고 했으니까, 용기를 가져본다. 택시를 타고 어제 갔던 주차장에서 내렸다. 어제 올라갔던 길 반대편으로 걸어가자, 포항 시립 미술관이 있었다. 그리고 넓은 공원이 펼쳐졌다. 어제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아, 코너를 돌기전까진 아무도, 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번 포항은 이걸 위해 왔구나. 포장로를 따라 올라가서 오전 10시까지 기다렸다 스페이스 워크에 올라갔다. 처음엔 풍경을 보며 씩씩하게 올라갔는데, 점점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에 땀이 배이기 시작했다. 절대 아래를 내려봐서는 안돼.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공장들을 보며 발을 내딛는다. 조금 심장 박동이 무거워지니까, 못 가겠다 싶어서 내려가기 위해 돌았다. 사진을 찍어주려는 분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내려왔다. 사실 찍어달라 하고 싶었지만, 찍어주라면서 핸드폰을 건네주다 축축한 손바닥 때문에 미끄러져서 핸드폰이 아작 나는 상상까지 순식간에 되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렇게 겁쟁이라니. 내려오면서 여유가 찾아오니까, 셀카도 찍고 주변도 더 둘러본다. 내려올 땐 등산로를 선택했고, 미술관을 갔다. 이번 주제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이다. 요즘 예술 작품들의 주제가 대부분 기후 변화와 바이러스다. 당연하다, 예술의 사고도 생활과 동떨어져있을 수 없으니까. 2023년 5월 7일까지 전시하니까, 재미있게 봤으니 후기를 꼭 남겨야겠다.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쭉 걸어와서는, 포토이즘이 있길래 들어가서 여러 소품을 활용해 사진을 남겼다. 사진을 고르는 건 80초 넘게 주고, 사진을 찍는 건 10초밖에 안 주다니. 너무 불균형이지 않나? 그래도 재미있게 찍고, 영일대에 유명한 디저트 카페인 오브레멘에 왔다. 지금은 버스 예매 시간이 다가와서 슬슬 자리를 정리해야 한다. 마땅히 사갈 기념품이 없어서 드립백을 구매하고, 빵을 포장했다. 이렇게 포항 여행을 마무리한다.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가득 담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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