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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Dec 31. 2023

2023 하고픈 꽃, 다해보기

꽃다발을 배우며 깨달은 10가지 교훈

하고픈거 다해보기도 어느덧 3년째. 3년 전 이맘때. 11년 직장생활을 관두고. 생각만 하다 생강이 될 순 없어 도전했던 프로젝트다. 지난 3년간 플로리스트, 바리스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카카오톡 이모티콘 도전 등. 나름 도전적 삶을 살아왔다만. 망함치, 인생치, 경험치, 교훈치, 지혜치 올린 샘 치고 현재 차선의 삶을 살고 있다. 올해 6월 다시 카피라이터로 직장인이 되었고 틈틈이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올해 꽃과의 인연은 열 번의 꽃다발 배우기가 다였다. 횟수 보다 밀도가 중요함을 느낀 꽉 찬 충만. 열 번의 수업을 들으며 깨달은 10가지 배움을 기록해 본다.


꽃다발 첫번째 수업-한송이 꽃다발

#1. 나의 빛을 향해 마음을 굴광하자


첫 번째 수업. 꽃 한 송이 포장. 가장 기초가 어렵다. 뭐든 기본이 중요한 법. 그래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관건은 한 송이 꽃을 돋보이게 하는 것. 이는 나머지를 죽이는 게 아니었다. 주인공과 보조,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빛을 향해 고개를 돌려 굴광하는 해바라기와 거베라처럼 나의 빛을 향해 마음을 굴광해야지. 꽃이 주는 가르침은 늘 겸손케 한다. 배움은 상큼한 기쁨. 상큼 과즙이 입안에서 톡 터지듯 머리도 상큼해진다. 배움은 낯섦이자 두려움이며 도전이다. 깊어지고 넓어지는 경험이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나를 만난다. 원래의 나를 마주한다.


꽃다발 두번째 수업-원형 꽃다발

#2. 다름은 곱디곱다

어떤 만남은 깊어지게 하고, 어떤 만남은 얕다. 꽃다발을 잡을 때 유독 어려운 이유는 꽃마다 생김새가 다 달라서다. 사람도 모두 달라 어려운 것처럼, 꽃의 다름도 어려움이다. 꽃 하나하나에도 이해와 배려, 다름을 알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각자의 생김에 맞춰 높낮이를 조절하고 얼굴 방향을 바꿔준다. 서로 부딪히거나 뭉치지 않게- 꽃 사이 적당한 거리를 둔다. 여백을 두면 함께 있어도 하나하나 곱디곱다. 다름은 아름다움. 꽃길에는 다름을 알아가는 기쁨, 깊어지는 만남이 있다. 꽃, 길에서 만나요. 곱디고운 꽃 길을 걸어가자.


꽃다발 세번째 수업-그리너리 꽃다발
망한 꾸깃꾸깃 포장지. 자세히 보면 더 이상하지만. 보잘 것 없어도 아름다운 것이다.

#3. 보잘것없어서 아름다운 것


일상의 행복은 무시하고 넘긴 것들 속에 숨어 있다. 눈길조차 주지 않던 들판의 풀꽃이 사랑스럽게 느껴진 순간이 있는가. 길을 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려 풀을 꺾어 본 적 있는가. 소소하고 보잘것없지만 아름다운 것에 눈과 귀가 쏠렸던 7월의 어느 날. 올해 첫 매미 소리를 듣고, 그리너리 다발을 만들며 신록의 싱그러움에 마음이 푸릇푸릇 자라난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들. 풀꽃만 그런 것에 아니었다. 너도 그랬다. 보잘것없이 시시한 것들, 평범하고 지루한 것들 속에 반짝임을 볼 줄 아는 눈과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겠다.


꽃다발 네번째 수업-평행 다발
평행 다발(망한거). 순수한 망함! 순수한 기쁨!

#4. 재미없어도 재밌는 것


꽃다발 만들기 네 번째 수업. 줄기 배열이 평행인 평행다발이다. 어렵지만 신난다. 불과 5분 전에 선생님이 알려준 건데 혼자 해보려 하면 머릿속이 새까맣게 정전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못해도 하고 싶는 걸 해보는 것 자체가 재미다. 재미없어도 재밌는 것이다. 평행 다발을 만들 땐 운동성과 방향성 있는 소재가 예쁘다는 걸 배운다. 다알리아는 목이 잘 꺾이고 꽃잎 하나가 떨어지면 나머지도 우수수 떨어지니까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새로움이 좋다. 선생님이 꽃 생김대로 만들면 된대서 때마침 생긴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합리화해 보는 것도 신난다. 최선을 다했는데 해괴한 결과물을 만들어 보는 것도, 나름 만족하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다. 순수한 망함! 순수한 기쁨!하고픈걸 다해보는 건 어렵고 해괴하지만 신나는 경험이다.


꽃다발 다섯 번째 수업-미니 다발

#5. 꽃으로 지키고자 했던 간절한 축복


꽃다발 만들기 다섯 번째 수업 미니다발. 이날은 세 가지 꽃다발을 만들었다. 꽃다발 유래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민족은 신의 축복을 얻는 수단으로 화관이나 꽃다발을 몸에 걸쳤다. 고대인은 신이 사는 곳을 화원이라고 생각했다. 부케는 꽃다발이라는 프랑스말에서 유래했다. 풍요・다산・번영을 나타내는 벼 이삭 등의 곡물로 나쁜 귀신이나 질병으로부터 신부를 보호했다. 16세기 이후 꽃의 치료적 의미와 종교적 의미가 확산되면서 벼 이삭 대신 들판에 피는 꽃으로 신부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1950년대 이후 서양 결혼식이 도입되면서 부케를 만들어 신부를 장식했다. 수천 년 역사를 거슬러 21세기 꽃다발이 되기까지. 억겁의 기원이 담겨있다. 꽃으로 지키고자 했던, 고대인의 간절한 축복을 되새겨 볼 일이다. 받자. 축, 복을 다발로!


꽃다발 여섯 번째 수업-하트 프레임 다발

#6. 실망과 낙담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연습


꽃다발 만들기 여섯 번째 수업. 하트 모양으로 만드는 하트 프레임 꽃다발이다. 곱슬 버들로 하트모양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 미니장미를 하트 모양으로 채워 넣는다. 하트 구조물 왼쪽 위부터 중앙을 거쳐 우측 상단까지 미니 장미를 차례로 채워나간다. 확실히 나는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아는 사람은 아닌 거 같다는 좌절과 체념. 그래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면 연습은 접어둘 수 없는 단어다. 선생님이 수업 내내 연습을 강조하셨다. 배우는 시간은 좌절의 연속인데, 스스로에 대한 꾸준한 실망과 낙담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연습이다. 실망하고 연습하고 약간 회복하고, 또다시 실망하고 습관처럼 연습하고 조금 더 회복하는 시간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미세하게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나를 지켜내는 연습. 스스로에게 사랑을 주는 연습.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는 연습. 매일 연습 중이다.


꽃다발 일곱 번째 수업-이벤트 다발
32년된 반려인형을 비누꽃으로.. 꽃쌤이 이게 뭐에요?

#7.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기


꽃다발 만들기 일곱 번째 수업 이벤트 다발. 새하얀 시네신스, 앙증맞은 꽃잎들이 어여쁜 마타리, 유니폴라, 설유화, 그리고 비누꽃. 두고두고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드는 이벤트 꽃다발에는 오래도록 축하의 마음이 담겨있다. 특히 비누꽃으로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선물하면 좋아한단다. 나는 비누꽃으로 32년째 반려인형 복실이를 만들었다. 두고두고 오래 간직할 수 있다 하니, 오래 함께하고 싶은 내 사랑을 담은 것이다. 다만 비누꽃은 물에 닿으면 녹아버린다. 물로부터 지켜내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조금씩 산화되어 언젠간 사라질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라. 그것들의 빠른 사라짐을 이해하라. 만드는 내내 동심. 귀여움 뿜뿜 했던 시간이었다만. 사라져 가는 삶을 되새긴다. “모든 것은 곧 사라지는데 왜 집착하는가? 당신은 이미 완전하다. 단지 아직 그걸 모를 뿐! 자신에게 다가오는 가르침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현각 스님의 말씀을 남겨 본다.


꽃다발 여덟 번째 수업-그룹핑 꽃다발


#8. 남들에 좌지우지 말고, 나만의 꽃다발을 만들자


꽃다발 만들기 여덟 번째 수업 그룹핑 꽃다발. 같은 종류 꽃들을 모아 그룹 배치하는 제인패커의 시그니처 디자인이다. 모양이나 색감이 비슷한 것들을 넓은 잎과 함께 섹션별로 구성하는 기법이다. 모던하고 세련된 꽃다발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자연스러움 보다 정리되고 명확한 느낌을 주는 일명 고오급 다발이다. 짙은 색감을 중심에 두고자 붉은 장미를 중앙에 배치하고 주위에는 옅은 파스털 컬러의 꽃들로 구상했다. 그런데 스파이럴로 잡아갈수록 중심에 있어야 할 장미가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럴수록. 장미가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게 잘 배열해야 한다고 하셨다. 두고 싶은 꽃들이 주변에 잘 오도록 말이다. 그룹핑 꽃다발을 배우며 주변으로 인해 밀려나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중심을 잡는 법을 깨닫는다. 주변 환경에 쉽게 좌지우지된다 싶으면 중심에 나를 두고, 나만의 섹션을 나누어, 주위에 날 위해 좋은 것들을 배치한 나만의 인생 꽃다발을 만들어나가자. 한 번뿐인 인생, 월화수목금토일 언제나 꽃요일!


꽃다발 아홉 번째 수업-꽃다발 포장 평가

#9. 작아진다는 건, 참 감사한 감정


꽃다발 만들기 아홉 번째. 필기•실기 시험 날이다. 45분 동안 한 송이 꽃다발 포장과 꽃다발을 제작하며 그동안의 배움이 얼마큼 스며들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잊은 것들,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알아가며 작아진 자신을 확인하고 받아들여 본다. 작아졌다 느끼는 것도 실은 더 활짝 피려고 웅크린 꽃봉오리 상태란 걸. 긴장해서 작아진 듯한 심장. 그로 인한 두근거림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자 도전했다는 반증. 작아졌다는 건 더 커갈 수 있다는 증표. 비록 지금은 움츠러들더라도 점점 더 나아질 거란 믿음이 생겨난다. 친구를 생각하며 만든 한 송이 꽃다발을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만든 꽃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주는 기쁨도 작아진 내게 더 크게 느껴진다. 작아진다는 건 참 감사한 감정이다.


꽃다발 열번째 수업-프론트 페이싱

#10. 순간순간 성실한 최선이 풍성함을 만든다.


꽃다발 만들기 열 번째. 가장 풍성해 보이는 꽃다발을 배운 날이다. 이름은 프론트 페이싱, 일명 프리젠테이션 꽃다발이다. 꽃들 얼굴이 정면에서 잘 보이게 높낮이를 줘 배치하는 다발이다. 각자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꽃들 하나하나가 잘 살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게 관건이다. 풍성함의 비결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낼 때라는 생각. 순간순간의 성실한 최선이 풍성함을 만든다. 열 번의 꽃다발 포장 수업이 끝났다. 지난 2달. 40시간 동안 밀도 있게 풍성해졌던 시간이었다.


이대로 쭈욱 어렵고 해괴하고 신나게

2024년에도 하고픈거 다해보기. 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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