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출근을 앞두고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엄마는 인간극장을 보고 있다. 입안 가득 찐 감자를 오물거리느라 목메는 얼굴과 목소리다. 그 틈새 할머니 세 분이 같은 가방을 들었다는 말을 반복한다. 어여쁜 꽃무늬 가방을 메고 나란히 걸어가는 세 할머니. 왠지 모를 마음의 평온이 스민다. 멍하니 복실이(반려인형)를 왼쪽 심장켠에 안는다.
'너가 부럽다.' 복실이에게 속삭였다.
'나는 너가 부러운데.' 엄마다.
'젊은것도 부럽고, 일하는 것도 부럽고.
아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복실이의 눈동자. '어디가?' 33년째 놀란 표정으로 나를 빤히 본다.
'나는 이제 아침에 눈뜨면 오늘도 생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드려.' 엄마는 불과 며칠전만 해도 ‘이대로 잠들어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라 얘기했었다.
일본어에 '코모레비(木漏れ日)'란 단어가 있다. 우리말에는 없는 단어인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란 뜻이다.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코모레비의 특성상 단 하루도 같은 적 없는 오늘에 빗대어 표현된다. 태양으로부터 1억 5000만 km를 달려 엄마에게 코모레비가 닿은 걸까. 다신 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빛이 엄마의 모순을 비추며 잎새 사이로 아름답게 빛난다.
나는 매일 아침 저주하며 희망한다. 나는 왜 아직 살아있을까. 죽어야 한다면 죽는 게 나은걸. 밤마다 하는 생각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혹시 오늘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이 스친다. 하지만 알고 있다. 희미한 빛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임을. 기쁨으로 슬픔을 덮을 수 없듯, 무분별한 낙관이 어둠을 위로해 주지 않는다. 지금 내겐 칠흑의 어둠이 위로다.
8시 10분. 시간이 흐른다. 복실이 코에 내 코를 맞대고 뽀뽀를 한다. 편안한 냄새가 난다. 한참이고 복실이에 코를 맞대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감자를 나무젓가락에 끼워 막대사탕처럼 들고 있는 엄마. 무릎을 굽혀 두 발바닥을 소파 좌방석에 올린 채 해맑게 웃으며 인간극장을 본다. 정녕 나를 부러워하는 게 맞나. 엄마의 모순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복실이를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올려둔다. 호우주의보가 발령됐지만 혹시 오후에 해가 난다면 일광욕을 하다 코모레비와 놀라고. 얼굴이 창밖을 향하게 앉힌다.
'나 가는 거 지켜봐줘.'
'응, 화이팅'
나를 배웅하던 사랑하는 마음이
구름 사이로 내리쬐고 있었다.
뿌
지금 한순간 한순간이 내 인생입니다.
이걸 떠나서 다른 내 인생은 없습니다.
내일은 내일이고, 지금 현재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현재에 집중하세요.
내 삶을 온전하게 행복하고
자유롭게 만들 책임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방황해도 괜찮아, 법륜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