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 지하철 꽃집알바 근무경험기

하고픈거 다해보기-지하철꽃집에서 일하기

by oddmavin project



면접 삼 일 후 합격 문자가 왔다.

내일 바로 출근할 수 있어요?


하루 전날 출근 안내 문자를 받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화, 목, 금 6시간 근무다. 근무 조건은 주휴수당 포함 시급 만 이천 원. 고용보험 0.9%를 공제하고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지하철 꽃집 일과는 이렇다. 20분 일찍 출근해 셔터를 올려 오픈준비를 한다. 사장에게 출근 문자를 보내면 오늘 할 일을 지시받고, 혼자 꽃들을 디피하고, 새로 온 꽃들을 컨디셔닝 하고, 시든 꽃들을 빼내 꽃다발을 수정한다. 꽃다발이 판매되면 새 꽃다발을 만들고, 퇴근하기 전 물통에 물을 받고, 이틀에 한번 꽃냉장고 청소를 한다. 냉장고에 있는 모든 꽃들을 빼내 시든 꽃은 버리고, 꽃잎과 줄기를 손질하고, 냉장고를 닦고, 꽃물통 하나하나를 씻어 새물을 받고, 정리된 꽃들을 다시 냉장고에 넣는다. 다음날 새꽃이 들어오는 날에는 꽃 물통 여러개에 물을 받아두면 된다.


일터는 잠실역 2호선에서 8호선으로 갈아타는 길목에 있다. 10평 남짓 기다란 원룸 크기의 꽃집이다. 꽃냉장고 두 대, 진열대, 작업대, 각종 부자재, 철제선반, 선풍기, 물통, 끌차, 의자. 꼭 필요한 용병들만 어지럽게 자리해 있다. 모든 것이 1초의 지체도 없이 즉시 전장에 나갈 수 있도록 대비해 있다.


음악을 틀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꽃을 다듬고 꽃다발을 만들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큰 수입장미는 한송이에 만원, 작은 장미는 육칠천 원. 부르는 게 값인 꽃을 종류별로 가격을 달달 외운다. 원하는 꽃으로 새로 꽃다발을 만들어달라는 손님에게 버벅대지 않기 위해 가격을 꽤 차고 있어야 한다. 기업형 꽃집처럼 하루 대여섯 번 넘게 사진으로 매장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빡빡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여긴 개수대 대신 110리터 파란 큰 물통이 있다. 역사 내 꽃집은 매장 안에 수도시설이 불가한 곳이 많아 물 받으러 화장실이나 수도함까지 가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도. 온몸이 물범벅 된 채로 물통에 물을 기른다. 다 채운 물통을 끌차에 실어 파트라슈가 우유를 나르듯 덜덜. 끌차를 끌고 물통과 함께 꽃집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내 앞에서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길이 열린다. 꽃집에 도착해 물통을 내려놓는다. 물이 가득 찬 걸 보니 쌀독에 쌀을 가득 채운 듯 든든하다.


사장이 오면 내가 만든 꽃다발마다 피드백을 주면서 중간중간 손님을 응대했는데 친절한 듯 무심한 듯 능숙한 듯 판매하는 사장을 보고 나도 배운다. 대부분 만 원대 꽃다발을 사러 오는 고객이고 금방금방 소진된다. 플라워카페에서 일할 때는 대부분 예약제라 주로 사장이 만들기 때문에 꽃다발을 잡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반면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꽃집은 수요가 많은 곳이라 틈만 나면 그야먈로 미친 듯이 꽃다발만 만들다 퇴근할 정도로 꽃다발을 많이 잡아볼 수 있는 학습의 장이다.





생각만 하다 생강이 될 순 없다. 15년 직장생활을 매듭짓고 버킷리스트에 도전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어왔던 화훼장식기능사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마흔이라는 나이에 낯선 모험에 뛰어들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밑바닥부터 다시 잘 해낼 수 있을까. 나이에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단 한 번뿐인 인생. 일일 아르바이트로 냈던 용기를 발판 삼아 문을 두드렸다. 최저시급은 기본, 몸을 많이 쓰는 노동이라는 말에도 선택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 온 꽃일을 할 수 있었던 경험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조각들이 됐다. 언젠가 이 삶을 마칠 때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매거진의 이전글2025 버킷리스트 회고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