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플로리스트, 나를 돌보기 국선도 단전호흡
살면서 가장 불행하고
힘든 순간이 있다면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할 때
타인의 기준을 맞춰야 할 때
내가 나로 인정받지 못할 때다
마흔이 됐다. 나는 좋게 말해 프로 이직러였다.
일했던 회사만 13군데.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회사 인턴을 시작으로 방송 구성작가, 대기업 인사팀 임시직, 섬유브랜드 마케터, 명품 브랜드 홍보마케팅 인턴, 카피라이터 등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다양한 직종을 전전했다.
마흔이 되어 돌아보니 나는 무던히도 발악하며 살았구나. 남들 마음에 들기 위해 뱁새처럼 가랑이 찢어가며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죽을 순 없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프라 윈프리의 말처럼 남들 마음에 드는 내가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나로 살아보고 싶었다.
2025년
하고픈거 다해보기
꽃집 플로리스트
마흔, 다시 초보가 되다
본격적으로 플로리스트에 도전했다. 1년간 40군데 지원, 6번 면접을 봤다. 기업형 꽃집, 플라워 카페, 지하철 꽃집.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두렵고 막막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다시 밑바닥부터 잘할 수 있을까. 나이에 움츠러들었다. 헌데 한 번뿐인 인생 아닌가.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몸 쓰는 일이 많았다. 최저시급은 기본, 8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못 가고 서서 일하는 날도 있었다. 밥 먹다 말고 쟁반째 뚝배기를 들고 달려가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꽃배달을 가기도 했다. 혼자 꽃집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해보기도 하고, 지하철 꽃집 셔터를 열고 닫기도 했다. 지하철 수도함에서 물을 길어 나르다 온몸이 물범벅이 되기도 하고, 온종일 꽃다발을 만들던 날도 있었다.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면서 꽃을 보는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오랜 시간 경력자로 살다가 다시 초보가 된다는 건 빛과 그림자처럼 설렘과 서러움 그 어디쯤이었다. 서툴고, 상처받고, 부끄러운 순간들을 보내며 나 자신을 더 단단히 빗어갔던 365일. 그 안에서 길어 올린 한 줌의 행복이 명징히 남는다.
나를 돌보자, 국선도 단전호흡
내가 암일지 모른다고?
살다 보면 어떻게 그런 일이 싶은 게 나한테 일어나기도 한다. 11월이었다. 11월 낮이었다. 위험하니 제거합시다. 의사의 수술 권유에 수술대에 올랐다. 건강검진을 하다 발견된 비정형 유관증식증(ADH). 유방암 전 단계에 가까운 고위험 병변이다. 암과 종이 한 장 차이라나. 어찌 내게 이런 일이... 일찍 발견해서 다행지만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허망해졌다. 삶을 비관하는 방법을 마흔 개 이상 배워 마흔 살이 된 것 같았다.
수술 전에도, 수술 중에도, 입원 중에도, 퇴원 후에도. 신의 뜻을 곱씹었다. 이런 생이라 허락해주지 않으신 걸까. 가슴이 무장무장 숨 가빠왔다. 예전처럼 살 수 없다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살아갈 이유를 잃고 만다.
송장처럼 지내다 엄마의 권유로 국선도 단전호흡을 시작했다. 암환자들과 불치병 환자들이 마지막 보루로 택하는 곳이다. 매일 단전호흡을 다녔다. 수련 중에 해를 끼치는 생각들이 밀려오자 내 안에 좋은 기운을 흐르게 하고 싶어졌다.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 말자. 나를 돌보려는 의지가 생겨났다.
"내 장기를 믿는다. 멎으면 멎는 대로 받아들일 뿐." 국선도 원장님이 80세 노스님의 우문현답을 들려주셨다. 아 받아들이면 되는 거였구나.
단전호흡을 하면 고요함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를 내 존재로 이끈다.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생각의 생각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욕망의 민낯을 마주한다. 내가 이런 걸 원하는 사람이었구나. 생각의 끝은 무념. 그곳에서 까만 우주 공간이 보인다. 생각을 비우고 나면 나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생각도 마음도 외형도 모두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
무릇 존재한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일지 모른다. 욕망과 고집에서 벗어나면 남는 건 숨뿐이다.
나란 존재를 만난다는 건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상태에 익숙해져 갔고 더는 병이 나기 이전의 생활들이 그립지 않게 됐다. 억지로 버티면서 매달린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게 되면서 하던 일도, 가던 곳도, 만나던 사람도, 먹던 음식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달라졌다.
예전에는 견뎌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더는 스트레스받는 환경에 나를 밀어 넣지 않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졌다. 그렇게 나는 본격적으로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예정된 자리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고픈거 다해보기는
내가 나를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다.
꽃과 커피를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꽃집에서 일하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가 되어 보고
그리고 나는 조금씩 내가 되어가는 중이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프로우물쭈물러의 버킷리스트 도전기』
생각만 하다 생강이 될 순 없어 하고픈거 다해보는 인생 도전기. 내 쓸모를 남이 알아주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만들기 위해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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