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거 다해보기-역사 내 꽃집 면접 도전하기
생각만 하다 생강이 될 순 없다. 15년 직장생활을 매듭짓고 버킷리스트 도전 중이다. 화훼장식기능사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일일알바를 시작으로 지하철 꽃집 알바에 도전했다.
마흔 살 초보 플로리스트
5시간 30분
근무하면서 보는 면접에 도전
일요일 아침 9시에 면접이 잡혔다. 일일알바처럼 일하면서 보는 면접 방식이다.
좀 늦을 거 같은데 혼자 오픈해 볼 수 있어요?
면접날 사장에게 들은 첫마디다. 20분 일찍 도착해 닫힌 셔터문 앞에서 우두커니 기다렸는데 십 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아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근무하며 보는 면접이라지만 이렇게나 본격적일 줄이야. 전화로 지시사항을 전달받고 난생처음 셔터를 올려보는 경험을 했다. 불 켜고, 진열대 꺼내고, 먼지 털고, 꽃 냉장고에 가득 있던 다양한 사이즈의 꽃다발들을 진열대에 디피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따로 정해진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그냥 내 눈에 좋아 보이게 놓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매장을 둘러봤다. 지하철 환승통로에 길쭉하게 자리한 10평 남짓 꽃집이었다. 진열대에는 생화꽃다발, 프리저브드(생화를 오래 볼 수 있도록 약품처리한 꽃), 비누꽃이 화려하게 옹기종기 모여있다. 매장 안에는 꽃냉장고 두 대와 작업대 그리고 110리터 파란 물통이 눈에 띄었다. 냉장고가 두 대면 꽃 양이 많다는 뜻이고 그만큼 꽃이 많이 팔린다는 의미였다. 예전에 학원 선생님이 지하철 꽃집은 유동인구가 많아 꽃다발을 미친 듯이 만들어 볼 수 있다고 해준 얘기가 생각났다. 내가 지하철 꽃집에 지원한 이유기도 했다.
뒤늦게 사장이 왔다. 자기 관리가 잘된 세련된 여자였다. 오자마자 내가 진열한 꽃들을 보더니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지하철 꽃집은 많은 꽃다발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 게 생명이라며 마치 어제 만난 사람 대하듯 본론으로 훅 들어왔다. 나는 내시처럼 네네거리며 혹시 다음에 출근할 경우를 대비해 (사전에 허락을 받고-매장 곳곳에 사진 촬영 금지 문구가 있다) 사장이 진열한 꽃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사장 스타일을 빛의 속도로 맞춰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대뜸 테스트가 시작됐다.
사장은 나를 쌤이라 부르며 진열된 꽃다발 중에 수정해야 할 것이 있는지 꼽아보라 했다. 나는 눈에 띄게 메마르거나 변색된 꽃들을 가리켰다. 사장은 수정할 꽃다발들을 작업대로 가져와 시든 꽃들을 싱싱한 꽃으로 바꾸는 ‘수정작업’ 시범을 보여줬다. 포장지를 풀어 시든 꽃들을 빼내고 싱싱한 꽃으로 바꾼 뒤 물주머니의 물을 갈아주는 작업이었다. 지하철 꽃집에 있는 모든 꽃다발에는 물을 넉넉하게 넣어 물처리를 했는데, 매장에 둘 때는 물통 역할을 하고 손님들에게는 시들지 않고 오래 들고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뒤이어 본격적인 꽃다발 테스트가 이어졌다.
꽃냉장고에 있던 자투리 꽃들과 소재잎들을 가져와 만 원짜리 꽃다발을 만드는 거였다. 만 원짜리가 잘 나가니 많이 만들어 놔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기존 스타일에 맞춰 만원 꽃다발과 미니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장이 중간중간 피드백을 하며 어느 꽃집에서 어떤 일을 했고, 어디서 꽃을 배웠는지 물었다. 국비로 4년간 꽃을 배우면서 자격증을 따고, 꾸까 일일알바와 플라워카페에서 3개월간 일했다고 답했다. 1인 근무는 해봤냐는 질문에 근무 경험을 어필했다. 사장은 그동안 경력자만 채용해 왔는데 처음으로 초보를 불렀다고 말했다. 경력자들은 자기 스타일이 강해 맞춰가기 쉽지 않았다고 회상하며 초보쌤들을 가르치면서 일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나는 직원들이 몇 명이냐고 물었고 사장과 직원 1명이서 돌아가며 일한다고 말했다. 둘이서는 벅차 직원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며 주 3일 외에 추가 근무가능햐냐고 물어 가능하다 말했다. 나는 초보지만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만 원짜리 꽃다발을 계속 만들면서 손님을 적극적으로 응대했다. 점심은 사장이 제공해 줬다.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매장에서 앉아 먹으며 손님들을 받았다. 법적으로 정해진 휴게시간은 4시간 근무 시 30분, 8시간 근무 시 1시간이지만 소규모 꽃집은 암묵적으로 휴게 없이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면접 시간이 연장됐다.
원래 약속된 시간은 4시간이었는데 아직 클라이맥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라? 손 씻을 데가 없어
지하철 꽃집의 치명적인 단점
개수대가 없다
매장에 개수대가 없었다. 역사 내 꽃집은 매장 안에 수도시설이 불가한 곳이 많아 물 받으러 화장실이나 수도함까지 가야 했다. 사장이 큰 물통 한 개와 작은 물통 한 개를 들고 50미터 정도를 걸어갔다. 화장실로 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지하도 벽아래 쭈그려 앉았다. 백과사전 한 권 크기의 직사각형 철문을 여니 어둠 속에 수도관 밸브가 국보처럼 숨어있었다. 사장은 작은 물통에 물을 받아 큰 10리터 물통에 여러 번 옮겨 담기 시작했다. 수도밸브가 낮은 위치에 있고 공간이 좁아 큰 물통에 한 번에 받기엔 역부족이었다. 10kg 물통을 들고 매장으로 돌아와 110리터 파란 물통에 채워 넣었다. 나 홀로 세네 번 더 물을 기르고, 사장은 물통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했다.
후-
이래서 근무 면접을 봤던 거구나.
보통 꽃집 면접은 삼사십 분 질의응답과 꽃다발 테스트 정도로 끝나는데. 지하철 꽃집은 물통 나르기 역량이 필수였던 것이다. 많은 인파가 오가는 환승통로 바닥에 쭈그려 앉아 물을 받고 10kg가 넘는 물통을 파트라슈처럼 수차례 날라야 하는 일은 꽤 고단한 중노동이었다. 게다가 지나가는 행인 발걸음에 치이지 않을까, 들고 오다 쏟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야 하는 심적부담도 업무 추가다. 심지어 매장에 개수대가 없어 물을 버리러 또 수도함으로 가야 했다. 평소 지하철 꽃집 구인공고가 자주 올라오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마지막으로 3~4만 원 꽃다발 포장 테스트를 끝으로
5시간 30분 면접은 마무리 됐다.
지하철 꽃집에서
근무 면접하며 좋았던 점
내가 지하철 꽃집에 지원했던 이유는 꽃다발을 많이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게 제일 컸다. 전에 일했던 플라워카페에서는 주로 카페음료를 만들고 매장청소를 하거나 SNS/블로그 운영에 치우쳐있어 꽃 상품을 만들 기회가 많지 않았다. 실전 경험이 많지 않던 나에겐 지하철 꽃집 면접이 주옥같은 경험이었다. 덩달아 돈도 벌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무엇보다 사장이 나를 평가하듯 나 역시 나에게 잘 맞는지 적합성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근무 조건과 환경은 물론 사장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지, 배울 게 있는지,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급여 조건은 잘 맞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었다.
일당은 당일에 바로 입금됐고
삼일 후 합격 문자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