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거 다해보기- 플로리스트로 일하기
마흔. 2024년 12월 30일. 종로 창경궁 근처에 있는 플라워카페에 첫 출근을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정오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최저시급이지만 플로리스트와 바리스타를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는 쌍쌍바 같은 기회다. 묵혀둔 자격증을 꺼내 쓰는 순간이기도 했다. 파란 나무 계단이 있는 프로방스풍의 아기자기한 꽃카페. 이곳에서 나의 첫 경험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플라워카페 일은
새하얀 백자처럼 정직한 노동
오전 11시 40분. 이십 분 일찍 출근한다. 이층 창고로 올라가 옷과 짐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둘러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내가 하는 일은 꽃과 커피를 내어주는 일.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꽃과 화분 관리, 음료 제조, 서빙, 설거지, 꽃상품 제작, 꽃배달, 매장청소, 재고관리, 사진촬영,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포스팅 등. 머털도사 분신술을 연마해야 할 만큼 일당백을 방불케 한다. 처음 며칠 일하고는 체력이 방전돼 걱정이 앞섰다. 이 일을 잘해 나갈 수 있을까. 또 생각 한편에는 이만큼 정직한 노동이 있을까 싶어 사뭇 경건해진다.
플라워카페 일은 새하얀 백자처럼 맑고 정직했다. 육체적 피로는 크지만 회사 같이 강압적이고 부조리한 지시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덜한 곳이다. 라인을 잘 타야 한다던지. 거짓된 방법으로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억지스러운 협력을 얻어야 한다던지. 동의한 적 없는 권력에 굴복해야 하는 억울함도 없다. 출근해서 떨어진 카페 물품을 채우고, 점심시간에 몰려드는 직장인들에게 음료를 만들어 서빙하고, 폭풍 설거지를 하고, 근처에 꽃 주문이 있을 때는 걸어서 배달을 다녀온 뒤 틈날 때 점심을 먹고, 꽃 컨디셔닝을 하는 날에는 꽃 냉장고 청소를 하고, 중간에 손님이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응대를 하다 마감 청소를 한다. 그저 내게 주어진 일만 충실히 해내면 그만. 순수한 노동, 이것 하나면 된다.
진정으로 힘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몸이 편해도 마음이 고되면 지옥이고.
몸이 고돼도 마음이 좋으면 꽃나라가 아닐까.
비록 몸이 힘들고 일한 만큼 보상이 적지만
탁한 물이 아닌 맑은 샘물에 있으면
맑은 내가 된다.
나는 행복을 배달하는 중이다.
이곳은 주로 인근 직장인들과 대학병원 관계자들이 찾는다. 근처에 서울대학교병원, 창경궁, 세계문화유산 종묘가 있어 외국인 여행객들도 종종 들른다. 단골손님도 있다.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외워두고, 가까운 곳은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꽃과 화분을 배달하기도 한다.
꽃과 함께 길을 걸을 때면 좋은 마음이 품어진다. 예쁜 꽃을 보면 좋은 기운이 나서 일까.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행복을 배달하는 중이구나.’ 생각하며 꽃이 다칠세라 조심조심 걸음걸음 내딛는다. 서울대학교병원으로 꽃배달을 갈 때면 탐스러운 모과나무들을 마주한다. 꽃을 배달하는 자의 마음은 무엇이어야 할까. 모과나무에게 묻기도 한다. 늘 그 자리에 묵묵히 서있는 모과나무를 지나쳐, 묵묵히 걸어간 종착지에는 받는 이의 웃음꽃이 기다리고 있다.
마음속에 꽃이 피면 온 세상 꽃으로 보이고,
시든 마음일 때는 괜찮은 퇴화라 생각한다.
항상 피어있을 순 없으니.
자연의 순리가 그러하듯.
하루하루 배움이다.
공부할 식물세계가 한가득이다. 20년 경력의 사장 어깨너머로 꽃다발 만드는 스타일부터, 꽃과 화분 관리법, 고객 응대와 매장 운영 방식까지 익혀간다. 그날그날 체득한 노하우와 손님들이 자주 묻는 꽃말, 식물마다 다른 생태적 습성과 돌봄의 정석을 일지로 기록하며 나를 알아가듯 생명들을 알아간다.
식물과 교감할수록 알게 된다.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야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을. 말도 걸어주고 예쁘다고 해주며 가꿔야 비로소 제 빛을 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서로를 꽃처럼 대하지 못할까. 자신과 타인에 대한 회한이 밀려온다. 참 애틋한 성찰이다.
화장실 한 번 가지 못하는
1인 근무의 참된 의미,
자유가 아닌 두려움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가량의 밀착 교육을 받은 뒤, 혼자 근무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갔다. 여러 역할을 맡고 있던 사장은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았다. 어느덧 3개월째, 마침내 온전한 1인 근무를 맡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 1인 근무’란 오픈부터 마감까지 오롯이 혼자 감당하는 일이다. 그동안 모든 꽃상품은 사장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이제는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혼자서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장의 마음에 들기 위해 눈치를 보거나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1인 근무의 참된 의미는 자유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모든 과정이 내 손끝에 달려 있었다.
아침에는 카페 손님이 줄을 설 때가 있다. 꽃 배송과 꽃다발 주문이 동시에 몰리기도 한다. 이때 포스기마저 말썽을 부리면 그야말로 전쟁이다. 화장실 한 번 가지 못하고 끼니도 좌불안석으로 욱여넣는다. 뒤돌아서면 할 일이 태산이다. 진정 머털도사처럼 머리카락을 뽑아 분신술이라도 쓰고 싶은 지경이 된다.
인간은 극한에 몰리면
질문을 남긴다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다. 나는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가, 어떻게 살아야 나다울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헤르만 헤세는 내면을 성찰하는 고독을 통해 자기 자신이 되어간다고 했다. 『데미안』의 서문에서 ’인간의 길은 자기 자신으로 가는 길이다‘라 남기지 않았던가.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들은 그렇게 조금씩 나를 이루는 자양분이 된다.
혼자 근무하는 동안 나는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 묻고 또 물었다. 곱씹고 보니 내가 만든 음료 한 잔에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고,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보고 환하게 웃는 고객의 얼굴을 마주할 때였다. 타인을 행복하게 하면 나도 행복해진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오래된 현자들의 지혜가 피부로 와닿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경험이 나를 이루는 자양분이 되어간다.
오버타임 근무하다 깨닫는
무릇 꽃일이란 마음이
시들지 않게 매만지는 일
마감 즈음 밀려드는 카페 손님과 꽃 손님, 퇴근 후 픽업하러 오는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퇴근시간 이삼십 분이 훌쩍 지나간다. 추운 1월의 어느 날, 졸업식 꽃다발을 예약한 고객에게 줄 꽃을 포장하고 있었다. 버스 이동 중 꽃이 얼지 않게 쇼핑백에 담고 비닐로 감싸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 불현듯 내가 하는 일이 무척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이 꽃다발에 담긴 수많은 마음들이 별똥별처럼 불쑥 손끝에 내려앉은 것이다. 중요한 보물을 다루듯 포장을 마치고, 꽃이 시들지 않게 보관하는 법을 문자로 안내했다. 졸업식에 꽃을 들고 가는 마음까지 시들지 않도록.
무릇 꽃일이란 마음이 시들지 않게 매만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맡은 일이 중요한 일이니,
작은 일이라도 중요하게 생각하자.
힘들더라도 좋아할 수 있게 노력해 보고,
좋은 것이 무엇이 있을지 발견해 본다.
조수용, 『일의 감각』
플라워카페에 출퇴근하는 동안 읽은 책에서 한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그 문장에서 ‘일’을 ‘사람’으로 바꾸어 다시 읽어본다. 내가 맡은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니, 작은 사람이라도 중요하게 생각하자. 힘들더라도 좋아할 수 있게 노력해 보고, 좋은 것이 무엇이 있을지 발견해 본다.
꽃과 식물을
내 몸처럼 돌봐줘
꽃일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은 힘을 많이 쓰는 일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꽃과 화분을 반복적으로 들고 나르고, 다듬고, 물 주고, 닦아주고,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몸을 많이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다. 어떤 일을 하건. 꽃을 돌보듯, 나도 내 삶도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잘 돌봐야 다른 것도 잘 돌볼 수 있으니까. 식물에게 물을 주고 난 후에 내 몸과 마음도 살펴본다. 물을 마신 아이들이 싱그럽게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물 한 모금 꿀꺽 마신다.
고독과 두려움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얻다
어떤 경험은 숙성이 필요하다. 잠시 묵혀두었다가 계절이 몇 번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가 드러나는 경험이 있다. 플라워카페에서의 1인 근무가 그러했다. 외롭고 고됐지만 그 시간 속에서 몰랐던 나를 감각하고 새로운 내가 깨어나고 있었다.
카페와 꽃집 생태를 체득하는 것을 넘어, 고독을 버텨낸 의지와 두려움을 견뎌낸 감각은 한평생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 된다.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보다 고독과 두려움이 오히려 나를 지탱했음을 알게 된다.
마흔에 도전했던 첫 경험의 기록을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검은 고독 흰 고독』 속 문장으로 갈음해 본다.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물론 지금은 혼자 있는 것도 두렵지 않다. 이 높은 곳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지탱해 준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 『검은 고독 흰 고독』
마흔, 고민만 해오던 일을 도전하며..
배터리가 과열된 듯 체력도 정신도 뜨겁게 방전된 시간이었다. 어쩌면 이 일이 내게는 진흙 속 맑은 샘물처럼 그 무엇으로도 더럽혀지지 않는 경험일지 모른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플라워카페에서 일하며 단순히 꽃과 커피를 다루는 것 이상의 가치를 깨달았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잘할 수 있고, 나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과 삶의 방식을 찾는 데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 경험 속에서 몰랐던 나를 알게 되고, 잃어버린 나를 찾기도 하고, 숨겨진 나약함과 옹졸함을 깨닫고 자숙의 시간도 가졌다. 매일반복되는 일상 같았지만, 그 속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보람과 기쁨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이 마흔. 저질 체력에 실수투성이 초보지만 그럼에도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도전하며 한 발 한 발 나 자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마음이 원하는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가라.
그 어떤 두려움 때문에라도
끌리는 마음을 감추지 마라.
무엇이든 반드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프로우물쭈물러의 버킷리스트 도전기』
생각만 하다 생강이 될 순 없어 하고픈거 다해보는 인생 도전기. 내 쓸모를 남이 알아주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만들기 위해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