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거 다해보기-꾸까에서 일해보기
지난 2년간. 플로리스트 도전에 번번이 실패하고. 다시 카피라이터로 회사를 다니며 꽃 배우기와 일을 병행했다. 그러다 2024년 겨울. 몸담았던 광고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미뤄뒀던 버킷리스트에 다시 손을 뻗었다. 서른아홉.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만 품어왔던 꽃일에 도전해 보자 다짐하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다음카페 꽃사랑에서 초보 조건에 맞는 플로리스트 구인공고를 찾아 호텔 꽃집, 플라워카페, 로드샵, 온라인 꽃집 등 다양한 업종을 가리지 않고 8곳에 지원했다. 일일 알바, 파트타임 위주로 기본기를 쌓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중 한 곳 꽃구독 서비스 업계 1위 꾸까에서 일일알바 합격 연락이 왔다.
꾸까 일일알바 플로리스트
지원 방법은 간단했다
꽃사랑에 올라온 구인 공고를 보고 문자로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이름/나이/간단한 경력을 적어 문자를 보내면 통과한 사람에 한해 담당자가 안내 문자를 보내준다.
담당자가 보낸 문자에는 근무 시간, 찾아오는 방법, 출석 방식, 작업장 환경 등에 대해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또한 작업장이 실내보다 추울 수 있으니 얇은 겉옷을 챙겨 오라는 배려까지 담겨 있었다. 실감이 나지 않아 어안이 벙벙한 채로 문자를 여러 번 읽었다.
아침 8시 시작, 하루 8시간 꽃일
꾸까 일일 플로리스트로
꽃과 함께 보낸 88한 하루 일과
새벽 6시 50분 출발.
초행길이라 10분 일찍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집에서 새벽 6시 50분에 나섰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컴컴한 새벽. 꺼지지 않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정류장으로 모여들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서니 나도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에 숙연해졌다. 마음을 다잡고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내려 서초 22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예술의 전당을 지나 7-8분 6개 정거장을 달려 목적지인 방배빌딩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횡단보도 건너편에 빌딩건물이 바로 보였다. 주위가 주거단지여서 사무실처럼 보이는 빌딩이 하나뿐이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오전 7시 40분 도착. 휴게실 대기.
빌딩 정문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정면에 간판이 보였다. 문자 안내대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휴게실과 사무실이 있었다. 휴게실에는 테이블 5-6개와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이미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멀뚱멀뚱.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우선 빈 테이블 자리에 가방과 짐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앞치마를 메고 일할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안쪽 구석을 보니 옷걸이에 겨울 패딩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내 겉옷도 옷걸이에 걸고 있을 때, 마침 어떤 분이 처음 온 다른 사람에게 빈 사물함에 짐을 보관하고 여기 있는 앞치마를 하면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나는 개인 앞치마를 챙겨 와서 내 것을 메고 준비를 마쳤다. 처음은 늘 낯설고 긴장되지만, 알고 나면 별것 아닌 일이 된다.
7시 50분 담당자가 출석을 불렀다.
호명된 사람은 나를 포함해 5명. 5명 외에 나머지 분들은 직원이었다.
아침 8시 땡. 작업시작.
8시가 되자마자 모두가 익숙하게 휴게실 반대편에 있는 작업장으로 향했다. 나는 개인 물병을 챙겨 들고 뒤따라가려는데 출석을 부른 남자 직원분이 황급히 5명의 아르바이트생을 불러 세웠다. 나를 포함한 3명의 이름을 확인한 후 나머지 2명과 다른 공간으로 안내받았다.
오전시간. 꽃 컨디셔닝.
작업장은 꽃 컨디셔닝 파트, 꽃 제작 파트, 꽃 포장 파트. 3개 파트로 나뉘어 있었다. 작업장 한편에는 오늘 작업할 꽃 상품의 개수가 모니터에 표시되어 있었다. 작업 순서는 꽃 컨디셔닝 파트에서 개수에 맞게 꽃을 다듬고, 그다음 꽃 제작 파트에서 꽃다발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꽃 포장 파트에서 포장해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꽃 제작 파트에 배정되어 오전에는 꽃 컨디셔닝을 맡고, 점심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꽃다발 제작을 시작했다.
점심시간. 12시-1시.
점심은 편의점에 가서 스팸마요볶음밥 간편식을 사 왔다. 나와 함께 편의점에 간 알바분은 삼각김밥에 컵라면. 나머지 한 분은 꾸까가 세 번째라 밖에서 점심 먹을 곳이 없다는 걸 미리 알고 김밥을 싸왔다. 휴게실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어쩌다 여기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이곳이 첫 꽃일이라 소개했다. 두 사람은 나이가 어렸지만 꽃경험이 풍부한 경력자들이었다. 내가 호텔 웨딩 분야에 이력서를 내도 답이 없었다고 하자, 그쪽 일을 구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귀중한 조언을 해주었다. 월요일에 구하는 웨딩일은 주말 결혼식의 철거를 위한 일이니 피하고, 수요일에는 꽃 컨디셔닝을,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꽃을 꽂아볼 기회가 있으니 참고해서 넣으라는 조언이었다. 그간 호텔의 니즈가 나와 맞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에 움츠러든 마음이 조금 풀렸다. 고생하며 체득한 경험을 이렇게 맨입으로 들어도 될지. 정말 고마웠다. 꽃을 하는 사람은 마음도 꽃처럼 곱다.
오후 1시. 본격적인 꽃다발 제작.
먼저 본사 플로리스트가 꽃다발 제작 시범을 보였고, 나는 그대로 따라 제작했다. 제품별 작업 개수를 마치면 다른 디자인의 제품을 제작했다. 최상급의 다채로운 꽃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미니/미디엄 사이즈별로 형태를 잡아가며 꽃다발을 만들어 볼 수 있어 큰 배움이 되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아닌 전문 플로리스트들은 더 큰 사이즈의 난이도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그들의 손놀림은 넋을 놓고 볼 정도로 빨랐고 솜씨가 어나더레벨이었다. 나는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황홀한 배움을 얻었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싶었다.
오후 2시. 속도전. 파이팅.
작업 내내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주어진 시간 동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학원과 달리 구매 고객에게 전달할 상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잘 못 만들면 어쩌지, 손이 빨라야 하는데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어쩌나. 빠르게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업무 환경을 익히 들었던 터라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서서 일하다 보니 신체적 피로가 있었다. 하지만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꽃 작업에 집중하니 힘듦은 자연스럽게 잊혔다.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과 눈이 마주칠 때면 서로 웃으며 ‘파이팅’을 건넸다. 그리고 좋아하는 꽃을 보며 두려움을 이겨냈다. 무엇보다 꾸까 본사 직원들의 꽃 같은 태도가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북돋아 주었다. 꽃 앞에선 모두가 꽃이 되는 것 같았다.
오후 4시 46분. 작업장 뒷정리. 계약서 작성.
꽃 작업을 모두 마친 후 작업장 뒷정리를 했다. 그 후 직원이 아르바이트생 5명을 모아 휴게실로 안내했다. 꽃병이 놓인 테이블에 두런두런 앉으니 직원이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말하며 근로계약서 작성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듣고 각자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뒤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제출했다.
오후 5시. 플로리스트 일과 끝.
플로리스트 일일 알바의 일과가 끝났다. 함께 일했던 아르바이트생들과 서로 고생했다는 인사를 나눴다. 줄 것이 초콜릿뿐이라 달콤함을 건네고 각자의 길을 떠났다.
8시간 동안 서서 일해야 했지만
플로리스트로서의 첫 여정을
한때 꿈의 직장이었던 꾸까에서
일일 알바로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지난 4년간 배운 꽃 기술을 난생처음으로 실무에서 사용해 보니. 그동안의 배움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현장이 많이 다르다는 걸 체험할 수 있었다.
하루치 첫 경험이라 미화시킨 감상일지 모르지만. 꽃 앞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꽃의 언어를 말하게 된다. 고운 마음과 따뜻한 태도를 가진 화원으로 변해간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 동안 서서 일해야 하지만, 꽃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진정으로 힘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몸이 편해도 마음이 고되면 지옥이고,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좋으면 꽃나라가 아닐까.
시간이 순간 삭제된 듯, 해를 보지 못한 채 지하에서 꽃만 바라보던 하루였다. 어느덧 오후 5시. 밖에 나와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꽃의 시간이란 이런 것이구나. 오직 꽃에 집중하며 마치 새로운 세상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전에 살던 세상이 아니었다.
아침 8시 시작, 하루 8시간 꽃일.
꽃과 함께 88한 여생을 그려본다.
『프로우물쭈물러의 하고픈거 다해보기 프로젝트』
생각만 하다 생강이 될 순 없어 시작한 버킷리스트 도전기. 내 쓸모를 남이 알아주길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알아가고 만들어 가며.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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