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픈거 다해보기-미움받을 용기 갖기
"네가 그러니까 다 너를 싫어하지."
내 기이한 기질에 대항한 엄마의 말은 날카로웠다. 팔이 아파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는 엄마는 마트에서 잔뜩 장을 보고 짐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중에 팔 아프니 뭐니 하면서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빨리 그냥 들어가"라는 내 거친 입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2020년 7월. 11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같은 해 9월 16일. 처음으로 꽃을 배우기 시작한 날이다. 그로부터 7개월 후 2021년 4월 30일 오전 9시. 화훼장식기능사 합격자 발표가 났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 백점 만점에 60점 이상이 커트라인인데 나는 68점으로 통과했다. 점수가 낮아도 합격하면 그만인 것을. 하지만 점수가 생각보다 많이 낮아 선생님께 기쁨과 아쉬움을 동시에 전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시험 보러 갔던 휘경동(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지역본부)은 점수를 낮게 주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웬만하면 피하는 시험장소라나.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해준 얘기라지만 마치 처음 들은 것 같은 새로운 사실에 아쉬운 안도를 했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면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원인을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게 된다.
탓할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화훼장식기능사 시험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고된 경험이었다. 카피라이터 시절에 철야를 밥먹듯 했던 터라 고됨에 익숙하다며 자만했다. 하루종일 수업을 듣고, 새벽 꽃시장에 갈 때마다 차가 필요해 아빠에게 죄스러운 도움을 청하고, 갈 때마다 6~10만원씩 돈을 써야하고, 손에는 상처투성에 꽃짐 한보따리를 카트에 담아 덜덜 끌고 학원과 집을 오가며 꽃꽂이 연습을 하는 건 단연코 별거 아닌게 아니었다. 실기시험이 끝나고 컨디션을 회복하는데까지 2주. 실기시험을 본 당일은 혼비백산 시리즈를 4편까지 찍고 추가로 기진맥진 시리즈 4편을 더 찍었을 정도로 영혼까지 지쳐버린 상태였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상했다. 반복되는 야근, 쳇바퀴 도는 일상, 답없는 인간관계, 시한폭탄 업무량, 부당한 대우, 불확실한 미래 등등 등등등 더 힘들다면 힘든 회사생활이었는데 왜 화훼장식기능사 시험이 더 힘들었던 걸까.
자격증 시험 준비로 혼이 반쯤 나가 있던 정신을 다시 차려 보니, 회사생활은 고된 만큼 기대한 보상(월급)이 주어졌지만 자격증은 그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간절했기 때문에 그만큼 힘이 들어갔던 것이리라. 이 자격증을 따야만 내가 걷던 불안한 자갈길이 꽃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간절한 희망 때문에.
간절할수록 몸과 마음은 불안한 거니까.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이제 내가 새롭게 밥벌이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37살에 내걸은 신입 플로리스트 도전장은 바위에 깨져버린 계란처럼 사방으로 찢겨졌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둘러봐도 개인 플라워숍, 호텔, 웨딩과 같은 플라워 관련 직종에서는 대부분 플로리스트 경력직을 뽑고 있었다. 자격증은 자격을 증명해줄 뿐 경력이 될 수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신입 공고에 낚싯줄에 대어가 낚인 듯 옳타구나 하고 건져 올렸으나 쉽게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옆에는 나보다 힘 좋은 20대들이 더 좋은 낚싯대로 더 힘차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깨닫지 못했다.
배움에 나이가 없다지만
신입에는 나이가 있다는 것을.
'하긴. 누가 37살을 신입으로 뽑겠어. 나라도 나 같은 신입은 싫지. 이왕이면 덜 부담스럽고 나이도 어린 사람을 원하지.' 이력서를 내고 연락이 오는 곳이 없자 뒤늦게 무릎을 탁. 참으로 안타까운 유레카다. 어느 누구도 시킨 적 없이 오롯이 내가 스스로 한 선택이라 이제는 어느 누구를 원망할 수도 탓할 수도 없다. 평생 청춘인 줄만 알고 저질러버린 무모한 도전에 감전사를 당한 듯 아찔한 시간이 흐를 뿐이다.
37살에 무턱대로 도전한 신입 플로리스트는
시들어버린 꽃에 물을 주는 슬픈 억지일까.
5월 16일 지난주 일요일. 부모님과 오랜만에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동네에서 저녁을 먹었다. 누군가에게 거부를 당한 순간부터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게 된다.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 앞으로의 나의 쓸모와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살면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의문이다. 다시말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십 대, 이십대라면 용인될 방황이겠지만 조금 있으면 40이 넘는 자의 방황이라면 과연 용인이 될까. 100세를 넘긴 김형석 교수님을 보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격언이 지금처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건 유감이다.
어버이날 선물로 만든 카네이션 꽃바구니에 물을 안 준지 일주일째다.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게 되면 과거를 강요하는 것들에 둘러싸이게 되고 끊임없이 기이한 기질을 드러내게 된다. 명색이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도 땄는데 그냥 사서 드릴 수는 없다며 효도해보겠다고 만든 꽃바구니가 그렇다. 나이 생각은 안 하고 무모하게 저지른 치기 어린 도전과 미성숙함을 방증하는 산물이 된 것이다. 나이로 인해 거부당한 순간부터 나를 나이로부터 억압하고 핍박하듯 꽃들에게 주어진 자연의 생리를 억압하고 핍박을 한다. 악당을 찾는다면 멀리서 찾을 것 없다. 여기 바로 내가 있으니까. 꽃과의 동침은 전쟁이 되고 꽃에게 나는 괴물이자 악당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린 나란 사람과 동침을 하게 된 꽃들은 만만에 준비를 해야 한다. 자신의 생과 사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와 같이 살아간다는 건 그로 인해 내가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화양연화를 꿈꾸던 싱그러운 꽃들은 희망이 넘쳤던 일주일이 지나자 급격히 나이가 들어 어둡게 메말라 갔다. 탈고하는 냉이꽃은 소명을 다한 생의 마지막 인사로 수많은 검은 씨들을 바닥으로 흘려보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종국에는 한 줌의 새까만 재가 되어 자신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또다시 생명이 잉태되고 피어나지 않던가. 모두가 나를 싫어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든 꽃바구니마저 싫어하지 않았을 텐데.
누군가의 호감을 사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날 싫어하는 사람은 나도 싫다. 더구나 코털만큼도 가치 없는 상대한테 관심을 구걸하는 것보다 자발적인 추방자가 되는 편이 낫다.
"사랑받으려고 하지 말라. 자발적인 추방자가 돼라. 너의 인생의 모순들을 숄처럼 몸에 두르라. 날아오는 돌들을 막고 너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작가 앨리스 워커의 시다.
"그러니까 다 너를 싫어하지"
엄마의 한마디 말에는 천 마디의 아픔이 있다. 얼음꽃 같은 엄마의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 깊숙이 박힌다. 마음의 계절이 바뀌면 차가운 얼음은 가슴 안에서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서 피어난 꽃잎이 커다랗게 구멍 난 심장을 한 겹 한 겹 감싸 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