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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Aug 29. 2021

필라테스 3개월째, 내돈내산 고통의 50분

하고픈거 다해보기_필라테스로 나를 다잡기

_2년 만에 다시 시작한 필라테스

어느덧 3개월째다. 월화수목금 일주일에 다섯 번. 동네에 있는 소도구 필라테스를 다니고 있다. 필라테스를 하러 가기 전에 습관적으로 몸에서 떠나보낼 노폐물들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 내게 불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누구인지. 그것들이 주는 고통이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헤아려 본다.


_50분. 내돈내산 고통의 시간

걸레를 쥐어짜듯 몸속 노폐물이 하나도 남김없이 빠져나가도록 힘껏 나를 짜낸다. 일상에서 내가 물리적으로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나를 단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운동이 됐든, 일이 됐든, 집안일이 됐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면 된다.


_코로 천천히 흐읍. 입으로 천천히 후우.

깊은 호흡을 하면서 썰물에 흘려보내 듯 내 몸도 푸르게 정화시킨다. 어느 것 하나 쉬운 동작은 없다. 동물들이나 할 수 있을 법한 동작일수록 힘들고 고통스럽다. 아플수록 명확해지는 것이 있다. 아파야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 새빨간 토마토 얼굴이 돼서 요상한 자세로 끙끙거리고 있을 때 유난히 힘이 되는 선생님의 말이 있다. 불편해야 정상이다. 아파야 정상이다. 힘들어야 정상이다. 안 되는 게 맞는 거다. 어느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 고통을 나는 왜 사서 하는가 싶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내는 것도 아파해야 하는 것도 온전히 내가 해야 하는 내 몫임을 깨닫게 된다.


_선택은 두 가지뿐

내 힘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의 지점에 다다랐을 때.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다시 도전하든지 잠시 쉬어가든지. 무너져있는 내 옆에 무너지지 않는 이들의 강인함을 목도하면서 부러움과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을 자극 삼아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숨을 고르며 임계점을 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아한 학 자세를 해야 하지만 개구리 같은 말도 안 되는 자세가 되더라도 일단 도전해보는 것이다. 도저히 내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면서 다음 동작을 위해 힘을 비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고, 힘들 때는 잠시 쉬어도 괜찮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기도 하는 것이다.


_한계는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필라테스를 할수록 한계는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를 무너뜨리는 것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결국 자신이라는 것. 또한 근육을 단련할수록 마음 근육도 단단해 짐을 느낀다. 몸이 흔들렸을 때 코어 근육에 집중하면 동작이 한결 안정적으로 변하듯이, 내 마음이 흔들리면 단단한 마음 근육이 나를 다잡아 준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아프고 힘들 걸 알면서도 나는 나를 힘들게 한다.

무너질 걸 알면서도 내발로 무너지러 간다.

아프고 힘들다는 건 노력했다는 반증이고,

무너졌다는 건 도전했다는 반증이니까.


힘들겠지만 분명 강해질 것이고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설 것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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