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곳에서 눈물을 보이다.
아이가 일반 어린이 집에 가있는 동안 나는 집 주변에 있는 장애 관련 어린이집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방문했던 곳은 장애통합어린이집(비장애아동들과 장애아동이 함께 다니는)이었는데 원장님을 직접 뵙고 상담도하고 원도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만.... 엉뚱한 곳에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원래는 아이가 2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원장님과 담임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보였으면 보였어야 했는데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 생활을 힘들어하니까 엄마인 나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침착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어서 정작 거기서는 눈물 한 방울 보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애써 밝은 척 괜찮은 척하며 많이도 웃어 보였다.
그런데 다른 어린이집에 가서 그만 눈물샘이 터져버리고만 것이다.
장애통합 어린이집 원장님과 상담할 때 현재 우리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겪고 있는 상황을 말씀드리니 원장님께서는 여기서는 장애아동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교육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비장애 아동들에게 장애가 있는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 것이 옳은지, 어떤 식으로 도움을 주면 좋을지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장애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는 말씀에 장애아동들에 대한 배려심과 이해심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왜냐하면 일반 어린이 집에서 우리 아이는 지시 수행이 잘 안 돼서 말을 잘 안 듣고,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아이로 선생님의 업무 부담만 가중시키는 대상이 된듯하여 일반 어린이 집의 입장을 머리로는 알고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좋지가 않았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둘도 없는 귀한 아들인데 그런 우리 아들이 일반 어린이 집에서는 칭찬받고 사랑받고 환영받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내 마음을 참으로 아프게 했다.
원장님 말씀을 계속 이어나가셨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먼저 리드를 하고 가르쳐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가 서로 알아서 어른들보다 더 지혜롭게 문제나 상황을 해결할 때가 있어서 깜짝 놀라는 일이 많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이 정말 많다며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애아동들만 배려받고 이해받고 그럼 비장애 아동들은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었는데 비장애 아동들도 장애아동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다고 하셨다.
그리고 비장애아동들을 이곳 어린이집에 보내는 학부모님들 또한 장애에 대해 기본적으로 오픈 마인드를 가지신 분들이 많다는 말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아이의 같은 반 친구뿐 아니라 우리 아이를 바라보고 대하는 비장애아동들의 부모님들 또한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나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몰랐다. 장애인의 삶과 장애인 부모의 삶을...
결혼 전에 시각 장애인과, 발달지체 장애인, 그리고 장애전담 어린이 집(장애아동들만 다니는)에서 봉사 활동을 한 적은 있었지만 봉사 활동만으로는 그들의 삶을 어림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원장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자란 장애/비장애 아동들이 바른 청소년과 성인으로 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면서 청소년이 되어서 다시 찾아오는 학생들도 많고 어른이 되어 직업적으로나 마인드적으로 훌륭한 사람 돼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아가며 어릴 적 다녔던 어린이집이 생각나서 찾아오는 이들 또한 꽤 많다는 말씀에 나는 우리 아이의 마음에 어떤 씨앗을 심어주는 게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장님과 마주 앉았던 테이블은 나무 테이블 위에 유리판을 얹어놓은 형태의 테이블이었는데 원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내어주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유리판과 나무 테이블 틈새에 고이 들어가 있는 편지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이 어린이집을 졸업한 아이들의 어머니들께서 원장님께 직접 쓴 손편지였다. 날짜는 오래된 것도 있었고 비교적 최근의 편지도 있었는데 편지 내용은 원장님과 이곳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하고 이곳을 다니는 동안 아이가 너무나 행복해해서 엄마인 본인도 행복했으며 어느덧 졸업을 하게 되어 너무나 아쉽고 잊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들을 읽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절로 따뜻해지고 훈훈해지는 거 같았다.
원장님은 장애 인식 개선을 이론적인 교육을 넘어 비장애아동과 장애아동이 함께 생활함으로써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어린이집에서부터 실천한다는 목표로 20년 넘게 원을 운영해오고 계셨다. 나는 그런 원장님이 대단해 보였고, 같은 여성으로서 배울 점이 많으며 참으로 멋지게 느껴졌다.
다른 장애아동 엄마들이 원장님께 쓴 편지를 읽으면서는 나 자신이 그 엄마들에게 투영되고, 비장애아동들이 장애아동을 따뜻하게 대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우리 아이가 장애아동들에 투영돼서 이해받고 수용받는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다.
"죄송해요. 지금 하시는 얘기가 슬픈 이야기가 아닌데 눈물이 자꾸 나네요..."
나의 눈물에는 아이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에 감동한 눈물과 이 사회에 이런 분들이 계심에 참으로 감사하고 안도하는 눈물이 섞여 멈출 줄 모르고 자꾸만 흘러내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때를 다시금 떠올려봐도 눈물이 난다.
아이가 태어나고 지난 몇 년간을 걱정과 불안 속에 보냈던 나에게 원장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따뜻한 위로와 깊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상담 후에 이곳에 우리 아이를 바로 보낼 수만 있다면 보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빈자리가 없었다.
입소를 원할 경우 내년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런 나의 사정에 원장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어머님께서 가정보육이 가능하시니 아이가 현재 어린이집을 너무 힘들어하면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하원을 시켜서 어린이 집에 있는 시간적 부담을 줄여주시면 아이가 느끼고 있는 불편감과 압박감이 조금 줄어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잘 설명해 주세요. 지금은 다른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어서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요. 아이 입장에서는 내년이라는 시간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달력을 함께 넘겨보면서 얼마큼 시간이 흘렀고, 남았는지를 알려주세요. 잘 이해시켜 주시면 아이도 좀 더 잘 받아들일 겁니다.
대신 내년이 되기까지 엄마가 조금 일찍 데리러 갈 거고, 너무 아프거나 너무 가기 싫은 날엔 하루정도쯤은 엄마랑 재밌고 신나게 놀고, 다음날 다시 가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얘기해 주면 아이가 어린이집 등원에 대해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아이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길 겁니다.
어머님은 이 어린이 집이 마음에 드실 수 있으나 아이 입장에서는 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랑 같이 한번 들러주세요. 일찍 하원하는 날 여기에 오셔서 아이랑 원도 둘러보시고, 교실에서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한 번씩 놀다가 가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애 어린이 집들도 상담받아보시고 둘러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아이와 함께요.
아이들은 압니다. 자기한테 맞는 곳은 엄마보다 아이 자신이 더 잘 압니다. 어린이 집을 걸어 들어오는 첫걸음부터 알아요. 제가 원을 운영해 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다녀보시고 결정하시는 게 좋으실 거 같아요."
그날 원장 선생님은 노련한 카운슬러셨다.
그동안 많이 위축되고 무거웠던 마음들이 내가 흘렸던 눈물 속에 꽤 씻겨져 내려가서인지 원을 나오는 나의 발걸음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오늘 갔었던 새로운 어린이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다음 어린이집부터는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있잖아. 우리 지금 다니는 어린이 집 일찍 마치는 날에 다른 어린이 집에 한번 놀러 가볼까? 거기는 재밌는 어린이 집일 수도 있잖아."라는 나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린이 집은 재미가 없는 곳이에요. 키즈카페 갈래요."
아이의 반응에 다음 어린이집을 함께 갈 때 혹시나 따라나서지 않으면 어떡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그날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지만 평소에는 자주 사주지 않는 초콜릿을 먹이면서 손을 붙잡고 가다가 만약 도중에 안 가겠다고 하면 택시를 잡아타고서라도 가야겠다는 각오 아닌 각오를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이야기(장애전담 어린이집 방문 및 아이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