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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달빛 Dec 19. 2016

<별에서 온 그대>, 별에서 온 판타지

드라마

'재벌 2세 한기주와 평범한 아가씨 강태영의 사랑 이야기는 결국 강태영이 쓰던 시나리오 일부였다.' 2004년 신드롬을 형성했던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고 '로맨스 판타지'라는 달달한 세상에서 강제로 튕겨 나온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 후 '파리의 연인 트라우마'가 생겼다.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가 달달하면 달달할수록 '설마 파리의 연인처럼 허무하게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불안도 함께 스며들었다. 제벌 2세와 평범한 여성의 운명적 만남, 온갖 역경을 딛고 기어이 성취되는 사랑, 현실에서는 죽어도 못할 '이 안에 너 있다' 같은 고백들…… 판타지인 줄 알지만, 판타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를 굳이 배반한 <파리의 연인>은 그렇게 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문제작이 되었다.     


<파리의 연인>이 '판타지를 배반한 판타지'로 기억되었다면 2014년 SBS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는 사랑에 관한 '로맨스 판타지'의 궁극(窮極)을 보여주었다.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 주인공의 신분이 ‘실장님'에서 본부장으로, 본부장에서 재벌 2세 혹은 3세로 상승했지만, 본부장이나 재벌 따위는 <별그대>에서 감히 명함도 못 내밀었다. 다른 드라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었을 재벌 2세가 <별그대>에서는 그저 주변인에 머물렀다. <별그대>가 제시한 남자 주인공의 조건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첫째,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여야 한다. 둘째, 외모와 재력 스펙은 기본으로 우월해야 하며 나를 위해서라면 시간을 멈추는 능력, 공간을 이동하는 능력 정도는 더 갖춰야 한다. 셋째, 삼각관계는 깔끔하게 무시하며 나만 사랑하고, 온전하게 이해해주는 남자여야 한다. 남자 주인공에 대한 (여성) 판타지의 '판'이 커진 셈이다. <별그대>가 '로맨스 판타지'의 궁극인 이유는 또 있다. <별그대>의 판타지는 현실을 완벽하게 배제하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도민준과 천송이의 세상에서는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하게 살…… 것 같지? 겪어봐라. 웬수가 따로 없지. 시월드는 또 어떻고…… 내가 미쳤었지" 라는 ‘깨는’ 현실로 굳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현실에서의 사랑이 너덜거릴 때는 ‘서로를 책임져야 하는 일상의 무한 루프’를 경험할 때다. <별그대>는 이런 현실적 가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차단해버리는 방식으로 사랑을 지속할 수 있게 했다. '웜홀'을 통해 비정기적으로 우주를 다녀와야 하는 도민준의 운명 덕분에 그들의 허니문은 연장될 수 있었고 천송이 역시 “완벽하게 행복하다”며 도민준과의 시간, 그 찰나를 누렸다. 그렇게 역대급 '블록버스터 판타지'가 탄생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천송이는 차츰 늙어가고 이미 400년 이상 지구에서 살아도 늙지 않았던 '시간 여행자' 도민준은 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른 척하기로 하자. 그걸 인식하는 순간 '로맨스 판타지'라는 세상은 사라져 버릴 테니까.     


현실에 뿌리박은 '판타지’     


<별그대>가 대놓고 '이건 판타지야! 부럽지?'라고 시청자를 홀렸다면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3>(이하 <로필>)는 현실에 뿌리박은 판타지를 구현했다. <로필>은 사랑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글과 같은 직장에서 경쟁을 견디느라 '갑각류'가 된 여성 직장인 신주연의 ‘일상’에서부터 출발하여 신주연과 그 주변 인물을 통해 서른셋 직장 여성의 일상, 일과 사랑에 관한 현실적 고민, 1인 가구나 싱글맘 등 시대의 흐름을 비교적 촘촘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실에 뿌리를 두었지만, 가지와 열매는 역시 판타지다. 서른셋 비혼인 신주연에게는 결혼이나 미래에 대한 압박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주연 곁에는 주연을 ‘싱싱(애칭)’ 혹은 ‘당신!’이라 부르며 주연의 ‘순수’를 되찾기 위해 헌신하며 갑각류라 할지라도 그런 주연을 ‘있는 그대로 무조건 사랑’하기로 한 6살 연하남, ‘고구마(애칭)’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로필>이 보여주는 현실은 아파트 '모델하우스'와 닮았다. 그렇더라도 <로필>의 사랑은 <별그대>의 사랑보다는 현실적이다. <별그대>의 도민준을 향해 '세상에 저런 인물이 어디 있어?' 코웃음 쳤다면 <로필>의 고구마는 어떤가? 고구마는 '현실적으로' 집안 경제력 넉넉하고(그러나 식상하게 재벌은 아니어야 한다) 능력을 갖추었으면서도(그러나 고리타분하게 본부장은 아니어야 한다) 나만 사랑하는 연하남(최소 6살 이상은 어려야 한다)이다. 어떤가. 도민준보다는 현실적이지 않나?     


사랑과 현실을 드라마로 배워서     


도민준과 고구마는 현실에서 가능할까? 불가능할 리 없겠지만(어딘가에 있겠지. 있을 거야) 그럴 가능성은 도민준이 웜홀을 통과해 지구로 와 나에게 사랑을 고백할 확률과 같다. 드라마가 그리는 사랑과 현실이란 결국 ‘크로마키(일명 '파란 화면'에 실제 화면을 합성하는 기법)’로 만들어 낸 ‘현실처럼 보이는 판타지’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사랑할 능력을 갖춘 도민준은 가능할 리 없으며 <로필>의 고구마처럼 직업 좋고, 외모 훌륭하고, 나만 사랑하는 6살 연하남이 적극적으로 구애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게다가 현실은 <로필>이 그린 세상처럼 30-40대 비혼 직장 여성이나 싱글맘이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친절하거나 너그럽지 않다. '영화 속 원빈을 보고 남자 친구를 보니 웬 오징어가 옆에 있더라'는 농담처럼 판타지의 판이 커질수록, 로맨스 판타지가 현실의 외피를 두르고 화려하게 등장할수록 우리가 살아내는 현실은 딱 그만큼 비루해질 수밖에 없다. 막장 아니면 로맨스 판타지가 대부분인 드라마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현실’을 허무하게 비틀어버린다.     


최근 들어 '타임슬립(Time Slip : 개인 혹은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여행을 하는 초자연현상)'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들이 늘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 현재를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운명에 저항하는 드라마를 통해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잠시나마 보상받고 싶어 한다. 마찬가지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에 감정 이입을 하는 이유는 바싹 말라버린 사랑의 생명력을 복원하고 싶고, 마른 식빵처럼 팍팍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타임슬립 할 웜홀이 필요하기 때문 아닐까. 그리하여 '로맨스 판타지'는 인간(특히 여성)이 탐하는 이상과 욕망을 아름답게 '뽀샵'하여 보여주는 포토 애플리케이션과 같다. <백설공주> 속 여왕이 실체가 아닌 거울 속 자신을 사랑하여 불행해졌듯 '사랑과 현실을 드라마로 배우면' 곤란하다. 결국, 매일 60분씩 펼쳐지는 '로맨스 판타지'라는 기분 좋은 꿈은 '리얼'한 사랑과 현실을 질기게 감당할 마음의 근력의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사랑도 어차피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인간계의 일이니까.


<복음과상황> 2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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