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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달빛 Jul 18. 2017

페미니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창세기 22장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과 이삭은 그 잔인한 ‘운명’을 받아들인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내리치는 순간, 하나님은 황급히 천사를 보내 이삭을 살린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셀 수 없이 접했을 이 익숙한 이야기에 낯선 질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아브라함은 사라와 그 문제를 두고 상의를 했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사실은 ‘죽이는’) 그 엄청난 계획을 사라도 알고 있었을까? 사라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성경은 왜 사라의 이야기를 쏙 빼놨으며 우리는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설교하던 목사님이 불쑥 던진 질문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는 정신을 반짝 차리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몇 년 전 어느 주일 풍경이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니 어쩐 일인지 가장 먼저 이 풍경이 떠올랐다. 또 이런 풍경도 소환되었다. 얼마 전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서 있던 곳에는 요즘 ‘잘 나가는’ 페미니즘 도서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 한 권을 살펴보던 내 귀에 명랑한 목소리의 질문이 하나 꽂혔다. “아빠! 페미니즘이 뭐야?” 아빠 손에 이끌려 서점 나들이를 나온 단발머리 소녀의 질문이었다. 시선은 책에 머물렀지만 이어질 대화를 기대하며 온 신경이 귀에 몰려들었다. 아빠는 침묵했다. 아이는 다시 물었다. “페미니즘이 뭐냐구우!” 기어이 대답을 듣겠다는 그 초롱초롱한 호기심과 당황한 아빠의 침묵이 팽팽하게 맞섰다. 아빠는 결국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코너로 이동했다.


사라의 이야기와 소녀의 질문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 여성 그리스도인인 나에게는 긴밀하게 연결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질문들’의 ‘처음’이기도 하다.

차츰 눈을 뜨다


나는 우리나라의 보통 가정에서 태어났다. ‘딸이 귀한 집’ 장녀여서 온 가족의 환대를 받으며 자랐다. 부모는 나와 남동생을 특별히 차별하지 않았다. 나는 ‘한 대 맞을 매 두 대 맞으면서도’ 기어이 해야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야무진 어린이였다. 교회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1907년에 설립된 오래되고 보수적인 교회였다. 20년 넘게 그 교회를 다니며 고등부 임원, 교회학교 교사, 청년부 리더, 임원, 간사를 두루 경험했다. 청년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남성들의 세계’ 당회 직속 기관에 참여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나를 ‘교회 엘리트코스 밟은 여성’이라 소개하곤 했다. 대학생 때는 학생 선교단체에서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전공은 선교단체, 부전공은 문예창작”이라 외치며 즐거워하던 시절이었다. 졸업 후부터 지금까지 복음주의 기독교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의 나를 미분하면 ‘기독교’만 남을 것이다. 그만큼 교회와 복음주의 기독교 영역에서 배우고 쌓은 경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관, 정체성, 관계, 언어를 형성하는 모먼트였다. 내가 그렇게 교회와 학생 선교단체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같은 하늘 아래 어느 한편에서는 새로운 운동이 ‘나와 무관하게’ 약동하고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이 저물 무렵 ‘남성 가부장 중심’ 일변도인 학생 운동의 하위 구조이길 거부한 페미니스트들은 PC통신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다양한 담론의 장을 열어젖혔다. 사회는 그들을 ‘영 페미니스트’라 명명하며 주목했다. 우리 과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종종 대립했다. 그들의 주장이 교회와 학생선교단체에서 성실하게 믿음을 쌓아온 그리스도인인 나를 공격하며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세계와 삶을 부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불편했다. 그들만 아니라면, 나는 불편하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친절하고, 쉽게 설명해주었더라면 ‘들어줄’ 의향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예민하고, 까칠하고, 드셌다. ‘돕는 배필’로서 ‘남녀’ 차이와 정해진 질서를 인정하고, ‘지혜롭고, 현숙한’ 여성을 이상향으로 배워 왔던 나에게는 가까이 하기 부담스러운 친구들이었다. 페미니즘을 만나기도 전에 그것을 둘러싼 편견을 먼저 만나버린 셈이다. 그렇게 페미니즘은 나의 20대를 잠시 어색하게 스쳐가고, 시간이 흘러 30대가 되었다.


사람이 성장하면 이전에 입던 옷은 작아서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웹툰 <송곳>에 나오는 말처럼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20대에서 30대, 비혼(‘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미완성된 존재로서의 ‘미혼’이 아닌,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비혼’을 의미한다), 여성이 된 내가 그랬다. 입장이 바뀌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불편한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 나는 가정에서 차별받지 않고, 교회/공동체에서 즐겁고 성실하게 성장했다고 서술했다. 거짓은 아니지만 온전한 진실도 아니다. 부모님은 남동생과 나를 드러내어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여남의 역할은 명확하게 구분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남동생 밥과 간식을 챙기거나, 집안일을 하는 건 당연히 장녀인 내 몫이었다. 교회나 학생 선교단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매’는 뒤에서 섬기는 존재, ‘형제’는 큰 그림을 그리며 조직의 나아갈 바를 결정하는 리더로 역할이 구분되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고린도전서 14장 34절)"는 성경 구절은 자매들에게 순종의 미덕을 강조하거나 자매들의 주장을 ‘드세고 지혜롭지 못한’ 행위로 간주하여 억압해도 되는 근거가 되었다. 교회나 학생선교단체에서 여성은 아무리 뛰어나 봤자 “사모감이네” 정도가 최고의 칭찬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은 청년부에 머물기엔 부담스럽고, 여전도회에는 낄 수 없는 애매한 존재가 되어 교회 언저리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체제의 강력한 지지자이며 성실한 실행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혼란스럽고 불편했다. 그러나 내가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여 내가 경험하는 현실이 당연하고도, 옳은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생각 없음’ 상태로 불편과 부당을 감지할 감각을 발달시키지 못한 채 침묵하며 살아온 인간이었을 뿐이다. 나의 30대는 그런 침묵이 불편하고 부당한 남성 중심 가부장 체계를 견고하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 그런 현실은 더 이상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사실에 차츰 눈을 뜨게 된 시기였다.

침묵하는 존재에서, 질문하는 존재로


30대 중반을 넘어가던 어느 날, 이전 직장에서 승진할 기회가 찾아왔다. 대표는 내게 총무‘대행’을 제안했다. 어째서 ‘대행’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수경 간사는 결혼과 출산을 해야 하는 ‘변수’가 있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이유였다. 나는 말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변수가 있습니다. 대표님께도 변수가 있고요. 제가 경력이나 실력이 부족하여 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렇다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나의 항의는 기각되었다.


문득 나를 둘러싼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실력 있고 활동적이었던 내 친구들과 (여)동생들은 어느새 결혼과 육아라는, 돌아오기 힘든 ‘변수’의 나라로 영영 떠나버렸다. 사랑하며 헌신했던 곳은 내가 단지 ‘변수가 많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나를 뱉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각을 지연시키며 묵혀두었던 질문들이 뾰족하게 치밀어 올랐다. 똑같이 결혼하지 않아도 남성에게는 상수로, 여성에게는 변수로 적용하여 불이익을 가하는 건 옳은가? 죄는 ‘하와’만 저질렀나? 왜 하와에게 모든 죄를 전가시켜 여성을 부정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기게 하는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성경 구절은 도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것인가? 여성에게 헌신을 강조하지만 권위는 나누지 않고, 여성은 (사역) 대상으로 존재하지만 그 주체는 될 수 없는 ‘가부장 남성 중심’ 체제는 과연 옳은가? 남성 목회자들이 모여 ‘한국 교회의 미래’를 결정할 때 그 바깥에서 여성들은 한복을 입고 안내하거나 꽃꽂이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낡은 구조는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가? 왜 자매들에게는 순결과 순종을 강조하며 단속하지만 목회자나 형제들의 성추행·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오히려 남자들을 시험에 들게 한 짧은 치마나 달라붙는 바지를 입은 자매들을 탓하는 것인가? 왜 차별과 억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전도에 방해가 된다’ 거나 ‘지혜롭지 못하다’ 거나 ‘공동체에 덕이 안 된다’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하는가? 왜 형제들은 ‘교회 오빠’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자매들은 ‘꽃’으로 대상화되거나 30대가 넘어서면 ‘교회 누님’으로 불리며 여성성을 상실한 ‘드센 여전사’ 이미지로 희화화 되는가? 답을 얻지 못하고 허공을 맴돌던 질문은 마른날 먼지 쌓이듯 성실하게, 켜켜이 쌓여만 갔다.


시인 김승희는 '가부장 남성'들의 질서로 짜인 세계를 ‘당연의 세계’(김승희,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2")라 명명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세계는 사실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당연의 세계’가 고집스럽게 수호하는 당위와 차츰 개화되어 가는 내 문제의식 사이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어긋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으므로 솔직하게 반응하며 문제제기 하기보다는 나를 단속하고 검열하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먼저 들이닥쳤고, ‘드센 자매’로 낙인찍힐까 봐 백 번쯤 망설이다가 차라리 침묵하기를 선택했다. 모두를 불편하게 하느니 나 혼자 불편을 삭히는 게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라 스스로 위안했다.


그런 ‘당연의 세계’는 내가 일하고 있는 복음주의 기독교 영역에서도 견고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 기독교 관련 행사 소식을 접할 때면 인적 구성을 먼저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행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몇 가지 특징이 반복되었다. 여성과 청년이 없고, 주로 남성 목회자 중심의 참가자들로 구성된다. 행사의 주체는 남성일지라도 “물 떠 온 하인들”처럼 행사를 굴러가게 하는 건 여성과 청년의 몫이다. 모든 행사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경향이 그렇다. 여성과 청년의 ‘역할’은 크지만 ‘권위’는 배분되지 않는다. 복음주의 기독교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회의에 참석하면 대략 이런 흐름으로 전개되곤 한다.

1. 젊은/여성 사역자(간사)들이 회의 세팅을 한다.

2. 4-50대 남성(주로 목회자)들이 회의를 한다. 가끔 중견 그룹 여성이 참석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남성 중심 구조의 ‘알리바이’일 뿐 중요한 결정은 4-50대(조금 범위를 넓히면 30대 후반) 남성들이 한다.

3. 회의 후 뒷정리는 그 사역자(간사)들이 다시 한다. 물론 일부 회의자들이 뒷정리를 ‘도와’ 주기는 한다.

4. 회의 결과에 따라 일이 떨어진다. 젊은/여성 사역자(간사)들이 실무를 ‘하청 받아’ 담당한다.

이 구조는 무한 반복된다. 물론 어느 조직이든 위계가 있고, 저마다의 역할이 있는 것도 알겠지만 이 구조가 최선일까? 왜 우리는 수평적인 구조에서 협력하고 공존하는 일에는 무관심할까?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그 많던 자매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위와 같은 구조와 무관할까? 이런 구조 속에서 과연 새로운 운동은 가능할까?


이런 고민과 질문을 나누기에 기독교, 즉 내가 속한 영역은 적당한 공간이 아니었다. ‘외국인, 남성, 목회자’의 언어가 주류인 기독교 서적은 나의 고민에 공명하지 못했고, 거대담론이 중심이 된 교회/공동체는 개인을 존중하기보다는 조직의 질서와 유지를 우선하게 했다. 태초부터 정해진 여남의 위계와 역할 구분은 남성의 담론은 공적인 영역으로, 여성의 담론은 사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인식하고 다뤄지도록 했다. 오랫동안 견고하게 유지된 이런 구조 속에서 나의 질문은 감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인 ‘오래 참음’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작아서 불편해진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 했다. 바뀐 풍경에 익숙해지도록 새로운 안경을 써야 했다. 어색하게 나를 스쳐간 페미니즘을 ‘만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질문과 고민이 깊어갈 무렵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다시 만난 건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05) 덕분이었다. 책은 제목대로 내게 ‘도전’ 그 자체였고, 다시 만난 세계였다. 그 책에서 정희진은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의 경험과 기존 언어는 일치하지만, 여성의 삶과 기존 언어는 불일치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된다. 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페미니즘을 구성하는 기본 골격은 ‘질문’이다. 페미니즘은 그 질문이 가능하도록 ‘언어’를 제공한다. 그리스도인이며 여성학 연구자이자 번역가 양혜원은 그 ‘언어’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여성학이 도대체 뭐기에?’라고 내게 묻는다면 그동안 보편적 인간의 자리를 차지했던 남성의 경험으로 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자 인간으로 그리고 인간이자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학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다는 사실은 정말로 대단한 힘이다. 만약 여성학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경험을 많은 부분을 비정상으로, 기준 미달로 간주했을 것이다. (중략) 자신의 언어를 가진다는 것, 그것은 곧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양혜원,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pp. 54-55.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체한 듯 마음에서 엉켰던 질문이, 차마 언어화되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던 문제의식이 구체적인 언어를 가지도록 ‘페미언니들’은 차근차근 근거를 제시해 주었다. 이렇게 다시 만난 세계, 페미니즘은 “너의 고민과 질문은 틀리지 않았어. 충분히 가치 있어.” 응원하며 나를 침묵하는 존재에서 질문하는 존재로 서도록 용기를 주었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은 만날 수 있는가?


내가 페미니즘과 어긋났다가 다시 만난 이야기는 나의 맥락이기도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 물결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사회는 ‘페미니즘 부흥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페미니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2015년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메르스 사태를 기점으로 생겨난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인 ‘메갈리아’가 촉발한 미러링과 여성혐오 논란, ‘girls do not need prince’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남성들의 항의를 받아 게임 회사 여성 성우가 해고된 사건이 촉발한 각종 담론, 강남역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 혐오 살인 사건에 공명하는 ‘생존자’들의 증언들, #문단_내_성폭력 온라인 해시 태그 운동과 #이것이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 태그 운동이 폭로한 여성의 현실 등 젠더 이슈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가장 동시대적이며 주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꾸준하게 출간되고 있으며 판매량도 높아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한 ‘언니들’에서부터 최근에 페미니즘에 ‘입덕’한 ‘동생들’에 이르기까지 배운 여성들, 즉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회는 이렇게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교회/공동체는 ‘갓을 쓴 채 성경 들고 에헴~ 하는’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전문직 성범죄 1위 = 목사’라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피해자를 조직적으로 보호하며,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할 변변한 기구조차 없다. 전병욱이나 이동현 등 목회자 성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이를 단호하게 끊어낼 의지도, 체계도 없다. 오히려 ‘성스런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 피해자 여성들의 증언을 재빠르게 소거한다. 총신과 고신 등 일부 교단은 생물학적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여성 목사를 허용하는 교단에서도 그 역할은 주로 심방과 교육부서 등 ‘양육’ 역할로 제한하고 있다(이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이다). 게다가 총회 등 상급 기관은 ‘여성 총대 할당제’를 단호하게 거부하며 그들만의 리그를 수호한다. “기저귀 찬 여성은 강단에 올라갈 수 없다”는 등의 여성혐오적 설교는 뻔뻔하게 반복 재생되지만 그 혐오발언에는 ‘죄’를 묻지 않는다.


이런 구조적 불평등뿐 아니라, 교회/공동체에서 여성을 향한 차별과 억압, 혐오는 공기와 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2017년 3월에 IVF(한국기독학생회) 서서울지방회에서 진행한 페미니즘 토크 ‘갓페미’와 기독교 매체 뉴스앤조이에서 실시한 ‘교회 내 여성 혐오’ 사례 조사에서 쏟아진 경험들은 한국교회가 얼마나 성평등 인식이 부족한지, 여성에게 불편하고 폭력적인 공간인지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처음부터 여성에게 불평등한 공간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유교 질서에 입각한 신분제와 가부장제 아래 눌린 여성들에게 교회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그 앞에 누구나 동등하다’는 만인평등사상을 전하는 해방 공간이었다. 복음을 받아들인 여성들은 “예수를 안 후로 자주한 인간이 되었다”고 고백했다(이덕주, <한국교회 처음 여성들>). 그렇다면 기독교는 왜 차별과 불평등의 공간이 되었을까?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여전히 ‘이스라엘 족장 시대’에 머물러 있거나 “여자여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설교가 승인되었던 맥락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때문이다. 교회/공동체는 그런 시대착오적 제도 교회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해석과 다른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닫힌 공간이 되었다. 본디 당대의 사회적 질서에 질문을 던지며 사회·문화 속에 성육신 했던 기독교는 어느새 동시대성과 통전성을 잃어버리고, ‘가부장 남성’들이 권위를 독점한 공간, 여성과 소수자, 사회적 약자 등 다른 존재를 향한 차별과 억압, 혐오를 미세먼지처럼 내뿜는 낙후한 종교가 되어버렸다.


하나님은 과연 ‘남성’의 하나님일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 성별(Sex)인가, 젠더(Gender)인가? 그렇다면 여남의 역할은 누구에 의해 규정되어 지켜져 왔으며 그 기준은 공정한가? 기독교 역사는 ‘남성’만의 역사인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아닌 ‘미리암의 하나님, 룻의 하나님, 마리아의 하나님’으로 존재할 수는 없는가? 왜 우리는 성경과 기독교 역사 속에 등장하는 주체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배우지 않게 되었는가? 왜 ‘여성학’은 한국교회에 뿌리내리지 못했는가? 페미니즘과 신앙은 공존할 수 없는가? 하나님은 페미니스트일 수는 없는가?


2017년은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시작된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500년 전 종교개혁은 타락한 교권에 반기를 들며 들불처럼 번졌다. 오늘날 종교개혁이 다시 일어난다면 무엇을 개혁해야 할까? 이화여대 백소영 교수는 루터가 다시 온다면, “자기가 마치 신의 아들, 대리자라고 생각하며 권위를 독점하는 사람들을 향해 당연히 ‘너희는 그럴 권한이 없다’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500년 전 종교개혁은 고체화된 체계를 부숴 평신도들에게 평등하게 권위를 나누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난다면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까? 과도하게 집중되어 폐해를 양산하고 있는 가부장 남성의 권위를 해체하여 하나님께서 동등하게 창조하신 여성과 평등하게 나누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는 침묵하고 순종하는 ‘집단’이 아니라 예민하게 질문하는 ‘개인들’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공간은 교회/공동체가 아닐까? 페미니즘이란 단지 여성의 피해자성을 드러내고, 권리를 주장하는 데 머무르는 게 아니라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성경적’인 운동 아닌가? 이런 필요에 관해 페미니스트 신학자 강남순은 이렇게 요청한다.


“기독교가 차별과 배제의 종교가 아닌 포괄과 평등 그리고 연대성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요청성은 이미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명시된 기독교의 핵심적 메시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는 성, 인종, 사회적 계층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 개개인을 귀한 존재로 받아들였던 예수정신을 상실하는 종교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이러한 예수정신을 실천하는 데에 한몫을 담당하는 운동과 이론이 되어서, 페미니즘을 수용하는 우리의 교회와 사회가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곳이 되어가기를 나는 바란다.” 강남순, <페미니즘과 기독교>, pp. 44-45.

이야기를 발견하고, 질문이 흐르게 하라


비록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길 주저하는 입장이다. 다만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강렬한 체험을 통해 단박에 그리스도인(페미니스트)이 되지만 어떤 이는 복음(페미니즘)을 받아들이고 변화하기까지 일련의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중일까?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면, 나에게 페미니즘이란 ‘사라의 이야기’처럼 소외되고 기각되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언어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성인 당신의 이야기를 만나고, 남성인 당신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세계는 사실 불평등한 구조로 구성되었고, 불편하고도 위험한 일상을 머릿돌 삼아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을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로 알리고 싶다. 내게 페미니즘이란 ‘소녀의 질문’처럼 침묵의 공동체에 질문이 흐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말라비틀어진 상상력에 생기가 돋게 하고, 우리가 상상하지 않았던 세계의 문을 여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또렷하게 알게 하는 것은 질문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질문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alternative) 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는 정희진의 말은 옳다. 나의 20대가 그러했듯, 그 이물감에 적응하지 못해 질문이라는 중력을 저항하고 싶은 게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중력은 저항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혼과 공동체는 납작해질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이 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N개의 페미니즘이 존재한다지만 그 N개가 모두 유효하게 승인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흘러온 기독교 역사가 그러했듯, 페미니즘 또한 이야기와 질문들을 통해 갱신되어 온 학문이자, 언어이며 운동이자, 삶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기존의 세계와 페미니즘이라는 물결이 만들어 낸 새로운 영토는 끊임없이 불화하며 공존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불화와는 무관하게 페미니즘은 이미 도착한 미래다. 불평등한 현실을 자각하고,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를 배우고, 실천하기로 결심한 여성 그리스도인들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이제는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하나다. 페미니즘을 영접하고, 구도자의 길을 걷는 것!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국의 페미니스트 벨 훅스가 그린 세상을 소개하겠다.


“아무도 지배받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여자와 남자가 무조건 똑같거나 평등한 곳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틀을 만드는 기준인 세상 말이다. 누구나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세상에서, 평화와 가능성의 세상에서 산다고 상상해보라. 페미니즘 혁명만으로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없다. 인종차별과 계급 엘리트주의, 제국주의도 함께 종식해야 한다. 하지만 페미니즘 혁명을 통해, 우리는 여자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완전한 자기실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자유와 정의를 향한 우리의 꿈을 실현하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다가오라. 페미니즘이 당신과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지켜보라. 더 가까이 다가와 페미니즘 운동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라. 더 가까이 다가오라. 그러면 더 잘 보일 것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p.22.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하나님나라’와 비슷하지 않은가? 페미니즘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이제 당신이 더 가까이 다가올 차례다.



*이 글은 IVP에서 발간하는 교회탐구포럼 시리즈 중 <종교개혁과 평신도의 재발견>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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