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사내 커피숍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사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잠시만요!"를 외치며 달려온 두분은 꽤나 목소리가 들떠있는 하이텐션 상태였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 얼굴을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는데 개발팀에서 근무하는 대리님들이었다. 짧은 인사 후 두분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대화를 이어갔다.
blah-blah-blah
아 맞다! 대박! 오늘 무두절이잖아!
두 분의 대화 중 유독 하이텐션을 내뿜으며 내 귓가에 선명하게 꽂혔던 단어 ‘무.두.절’. 단어를 듣자마자 궁금한 나머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두 분은 나에게 그 의미를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아! 오늘 저희 팀장님 휴가 중이시거든요! :D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뜻을 듣고나니 기발함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어린이날이라 부르던 그 기분 좋은 날이 이제는 무두절이라 불리고 있다니!
어린이날, 무두절(두목이 없는 날)은 세월이 흘러도 왜 이렇게 직장인을 설레게 한단 말인가? 하긴 여름휴가 시즌의 진정한 승자는 팀장님과 휴가날짜가 겹치지 않고, 돌아오시는 날 바통 터치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독 팀장님과의 엇갈린 인연은 회사원들에게 휴가만큼 즐거운 단비와도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문득 직책자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자잔! 하고 나타나 줄 때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로 매니징은 자율성과 존중을 부르짖는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꽉 끼고 불편한 옷이지 않나.
그런데 직책자가 사무실에 없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우리를 기쁘게 했을까? 사실 직장에서 직책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고, 업무 속도를 높여준다. 결재도 그만큼 빨리 처리된다. 급한일은 구두로 이야기하며 두세 단계씩 후루룩 빠르게 가속도를 붙이기에도 더없이 좋다.
아차. 근데 이건 정말 직책자와 합이 잘 맞았을 때의 경우다. 몇몇 사람들은 상사와 잘 맞지 않은 성향 탓에 자신을 반려 봇으로 부르며 산다. 리더와 죽이 척척 맞아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경험은 그리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보고서의 토씨 하나가 못마땅하다고 자꾸만 결재를 반려하고, 기획안을 보고 받다가 어느새 그래프 모양 하나에 꽂혀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바빴다.
팀 빌딩을 위해 MBTI, DISC 등을 활용한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참석하는 팀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이 분위기는 리더가 조직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힌트가 된다.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팀은 교육이 시작하기 직전부터 리더/팀원을 가리지 않고 대화를 활발히 나눈다. 서로 거침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교육을 시작하고, 리더의 성향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순간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른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결점마저 드러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가 조직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팀은 시작 전부터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다. 구성원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말과 행동이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럽다. 교육을 시작하고 리더에 대한 피드백을 할 때 이 분위기는 다른 방향으로 절정에 달한다. 평소 답답하게 느끼던 리더의 성향에 대해 강사가 열심히 유머를 섞어 이야기해도 분위기는 얼음 상태다. 리더의 얼굴도 순간 경직된 채 어두워진다. 서로의 결점을 드러내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이들에게는 어색한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이 낮은 조직의 평소 풍경은 짐작이 간다. 리더는 조직원을 자리로 불러대며 잘못한 부분에 대해 강하게 질책을 한다. 나머지 팀원들은 오늘 팀장님 기분이 저기압이라며 눈치를 보기 바쁘다. 리더의 감정 기복에 따라 결재 확률이 다르다. 팀원들은 심리적인 안전감이 없기에 자주 불안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일을 하며 소모되는 에너지에 더해 리더의 행동, 기분에 좌우되는 환경을 감지하는데 추가로 에너지를 쏟아 붓기에 몇 배로 더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 좀 해보는 게 어때?
직원들은 수시로 깜빡이도 안 키고 들어오는 리더에게 칼치기를 당한다. 업무시간에 리더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게 힘든 이유는 수시로 들어오는 개선 아이디어와 일이 일을 만드는 구조 탓이다. 맥을 잘못 짚은 피드백은 현업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실무자가 세워둔 일정과 계획을 어그러뜨린다. 업무의 속도는 점점 느려진다. 실무자가 무슨 일을 어떤 비중으로 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엉뚱한 방향으로 피드백을 던지는 것이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피터 센게 교수의 저서 <학습하는 조직>에서는 이런 현상을 상쇄 피드백(Compensating Feedback)이라고 정의한다. 선의의 개입이 그로 인한 이익을 상쇄해버리는 반응을 시스템에 야기하는 것을 말하는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보지 않고, 세부 사항에 신경 쓰며 미봉책으로 무언가를 막아보려는 행동이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된 카펫 가게 주인의 사례는 상쇄 피드백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어느 날 카펫 가게 주인이 자신의 가게에서 가장 좋은 카펫의 한가운데가 불룩 솟아오른 것을 발견한다. 그는 솟아 오른 부분을 힘차게 밟았고, 카펫은 다행히 곧 평평해졌다. 그러나 그곳에서 멀지 않은 다른 부분이 툭 튀어나왔고, 주인은 튀어나온 부분 위로 올라가 카펫이 평평해질 때까지 세차게 밟았다. 여러 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음에도 카펫은 계속해서 튀어나와 주인은 지칠대로 지쳐버렸고, 정작 아끼는 카펫은 여기저기 흠집이 나 상태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사실 진짜 문제의 원인은 자꾸 튀어나오는 카펫이 아니라 카펫 속에 들어가 있는 성난 뱀 한 마리였다.
무두절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없을 무, 마디 절자가 아닌 머리 두자다. 보통 직원들은 우두머리, 보스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리더십 교육에서도 부하직원, 상사와 부하라는 표현은 멀리한다. 그만큼 수평적인 인간관계 속에 존중과 배려로 일하는 것이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습일 것이다.
우두머리와 리더의 차이는 명확하다.
우두머리는 자꾸 군림하고, 평가하려 든다. 반면 리더는 도울 것이 없는지 질문을 한다.
우두머리는 뒤에서 앞장서라며 발로 행동대장의 엉덩이를 걷어 차지만, 리더는 먼저 앞장서서 손을 내민다.
우두머리는 경호를 해야 해서 손이 많이 가지만, 리더는 함께 달리기에 손이 가지 않는다.
우두머리는 “내가 말이야”라는 표현을 자주 하고, 리더는 “우리는”이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직장에서 무두절이 사라지려면? 후배들 앞에서 우두머리처럼 군림하려 하지 말고 먼저 앞장서고, 함께하면 된다. 리더의 자리는 고된 전투 끝에 비로소 권력을 얻게 된 정복자의 자리가 아니다.
1. 실무자가 토로하는 고민을 자주 경청하고, 홀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2. 결재 속도를 높여 업무 교통체증을 유발하지 않는다.
3. 리더로서 권위와 힘을 앞세워 군림하며 공포감과 불편함을 조성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