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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모레비 Mar 13. 2020

변화는 작고 빠른 것부터

Small & Quick Win 전략



변화 대신 죽음을 달라.



 어린 시절 하굣길에 우연히 마주한 수족관 속 열대어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아하게 헤엄치면서도 물결에 하늘하늘 흩날리는 지르러미는 넋을 놓고 감상하기 좋은 킬포인트였다. 그렇게 며칠을 수족관 앞에 서서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구경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구피들과 한가족이 되었다.



가장 화려하면서도 친숙한 열대어 구피 (출처 : https://www.kindpng.com/)



 구피가 또 죽었어요 ㅠ



 금이야 옥이야 구피를 키우던 내게는 한 가지 골칫거리가 있었다. 새로 물갈이를 할 때마다 구피들이 몇 마리씩 죽어나갔던 것이다. 심지어 구피는 물고기가게 아저씨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추천해줄 만큼 생명력도 좋고, 번식력도 왕성한 종이었는데 말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깨끗한 물로 자주 갈아준 것뿐인데 의도와 결과는 정 반대로 흘러갔다.

 

 그때부터 내 관심사는 온통 구피의 생존율을 높이는 일에 집중됐다. 처음 시도한 방법은 물갈이 며칠 전에 교체 할 물을 큰 대야에 받아두는 방식이었다. 수돗물에 안 좋은 성분이 있을 수 있고 너무 물이 차가울 수 있으니 며칠간 두면 좋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 예상은 적중했고, 물갈이 시점을 늦추자 구피들의 생존율은 높아졌다. 허나 며칠이 지나자 여전히 몇몇 구피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구피들이 급격한 변화에 놀라지 않도록 앞선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기존에 쓰던 물을 버리지 않고, 20~30%씩 섞어주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손은 좀 바빠졌지만 이 방식은 쇼크사하는 구피들을 현저히 줄여줬다. 변화가 조금씩 스며들자 안정을 찾은 구피들은 어느새 새끼까지 낳으며 대가족을 이뤄갔다.


 먼저 죽어간 구피들은 날이 갈수록 탁해지는 물 보다도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깨끗한 물을 더 견디기 힘들어했다. 구피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민감했던 것이다. 구피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아무 예고도 없이 물을 갈아준 내 잘못일 뿐이었다.




조직에서 변화가 실패하는 이유


"또 저러다 말겠지."


 회사에서도 어항 안에서 벌어진 일들과 유사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잘 나가는 회사에서 사용한다고 자사의 환경을 고려치 않은 채 무작정 도입된 제도들, 리더의 갑작스러운 업무 관리 방식의 변화,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 방법론 등 이론은 그럴싸하지만 결국 현실세계에서는 조직원들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혼선이 따르는 것이다.


 보기에 멋지고, 새로운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일부 조직원들은 잦은 실패로 인해 변화 혹은 도입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다. ‘또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쯤으로 이를 가뿐히 무시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느 날 약 200명 정도 규모의 개발 조직에 새로 부임한 조직장님이 교육 신청을 하시면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분은 자신 조직에 애자일 개발 방법론을 뿌리내리게 하고 싶다고 했지만 이를 어떻게 도입하는 게 좋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자세한 속사정을 들어보니 그럴만도 했다. 근 몇 년간 자신 외에도 몇 차례 조직장이 변경됐고, 부임 시마다 여러 제도를 도입하고 시도하는 탓에 조직의 대다수 인원이 지칠대로 지쳐버렸다는 것이었다. 즉 변화의 ‘변’ 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 개발 방식을 정착시킬 수 있을까가 이 날의 화두였다.


 교육을 준비하기 위해 시작된 미팅에서 나는 더 큰  범위의 변화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떤 교육이 효과적일까를 논하기보다 어떤 순서로 진행해야 효과적으로 새로운 방법론을 연착륙시킬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


 고심 끝에 세운 전략은 전면적인 도입이 아닌 2시간 정도의 성공/실패 사례 세미나부터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세미나의 목적은 유사한 조직문화와 직무를 가진 조직에서 이를 도입하며 겪었던 사례를 소개하고, 우리 조직에 도입 시 우려되는 점들과 이를 극복할 방법을 전문가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먼저 심리적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함이었다.


 또 세미나 후에 제도의 도입을 전면적으로 선언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진행하며 상황을 보기로 했다. 몇몇 팀에 시범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저항감을 줄이고,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조직 전반에 확대해보자는 심산이었다.


 미팅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조직장님이 던진 농담이 변화를 바라보던 기존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하마터면 애자일 도입을 애자일하지 않게 할 뻔했네요. 하하"




 변화를 만들기 위해 조직장과 나눈 이야기들은 어린 시절 어항을 물갈이하던 방식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바로 변화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면 물갈이가 아닌 부분 물갈이 방식을 택한 지점이다. 두 상황이 오버랩되며 나름대료 변화를 만드는 첫 시작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변화 초기 단계, 리더의 To Do List


 1. 맹목적인 추종을 멈춰라 : 선진사례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마라. 우리 조직의 환경을 먼저 고려하라. 티없이 깨끗한 물을 갈아주려는 욕심이 구피의 생명보다 우선 시 될 수 없다.
 2. 왜 필요한지 공감하게 하라 : 도입은 소수가 할 수 있어도, 실행은 다수가 함께 하는 것이다. 현재 시스템과 제도가 가진 명확한 한계와 어려움을 끄집어내 공감대를 형성하라.  
 3. 부담부터 주지 마라 : 변화가 꼭 필요하다면 무작정 선언부터 하지 마라. 조직원들은 혹시나 이게 평가와 연계될지, 또 다른 업무만 가중되는 것은 아닐지 부담을 느낀다.
 4. 작고 빠르게 시도하라 :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초기 스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부담이 적고, 리더에게도 도입을 다시 검토할 수 있는 고민의 기회가 찾아온다. 시작이 반이다.




빠르게 성공할 수 있는 영역 찾기

우선순위 평가를 위한 pay-off Matrix


 그렇다면 우리는 변화를 안착시키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때 참고해볼 수 있는 매트릭스가 문제해결 분야에서 우선순위 도출을 위해 자주 활용되는 Pay-off Matrix다.


우선순위 도출을 위해 사용하는 Pay-off Matrix

 


 이 매트릭스의 두 가지 축은 구현의 용이성과 업무 영향도다. 각 기준을 조합해보면 4가지 영역이 도출되는데, 변화를 만들기 위한 실행의 우선순위를 우측 상단부터 역 Z자로 그리며 고려할 수 있다.



우선순위 매트릭스 실행 순서

1. Quick Wins : 상대적으로 실행이 용이하고, 그에 따른 효과도 상당함
2. Strategic Initiatives : 실행하기에 시간과 리소스가 크게 요구되나, 그에 따른 효과가 큼
3. Nice to Have : 상대적으로 실행이 용이하나, 그에 따른 효과 또한 상대적으로 미약함
4. Leave for Now : 실행하기에 시간과 리소스가 크게 요구되나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음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영역은 구현이 쉬우면서도 효과성이 높은 영역이다. 이를 Quick Wins 영역이라 부른다. 앞선 이야기에서도 애자일 도입을 위해 선택한 첫 활동은 단 2시간의 짧은 세미나였다. 이를 통해 애자일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시범 조직을 통해 빠르게 시도해보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고작 이정도로 변화가 되겠어?

 

 변화 의욕이 클수록 성급한 마음이 앞서고 작고 빠르게 승리하는 업무들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야구에서 막판 1점 승부를 위해 희생번트 전략을 택하듯 당장은 하찮아 보여도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Quick wins에 해당하는 아이디어 들이다.


 게임 개발사는 게임을 정식 서비스하기 전에 CBT(Closed Beta Test) > OBT(Open Beta Test)를 거친다. 이는 게임을 전면 오픈해서 버그가 발생하거나, 서버가 다운되는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막기 위한 과정이다. 혹시나 조직에서 직원들에게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싶은 경우에도 거창하게 실패 발표회를 해보자고 일을 벌이지 말자. 이보다는 직책자가 회의 시간에 먼저 실패담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보자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편이 낫다.





 변화가 필요한 어느 곳이든 본래 하던 방식을 고수하려는 조직원들의 타성이 존재한다. 비록 더없이 좋은 툴과 제도라 하더라도 실제로 행하는 자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조직에 깊숙이 스며들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부디 조직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분들이 타성과 저항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 작고 빠른 승리의 전략이 조직에서 변화의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커나가는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 만약 스스로 변화를 이끌 결심이 섰다면 High Risk, High Return 전략보다 Low Risk, Quick Return 이라는 문구를 마음 속에 새겨보자.


High Risk, High Return 

> Low Risk, Quick Return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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