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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모레비 Jun 08. 2020

아끼는 후배가 퇴사를 고민할 때

냉정과 열정의 균형을 유지하라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워라밸을 부르짖는 90년대생이 회사에 등장하면서 퇴사를 고민하거나 앞두고 있는 후배와 마주하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벌어진다.


 나는 워라밸의 개념도 없고, 한번 입사한 직장에는 평생 뼈를 묻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정답처럼 여겨지던 시대에 신입사원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의 이직 과정에서 가까운 선배들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었다. 또 내가 앉았던 자리의 건너편에 앉아 선배 입장이 되어 후배들의 퇴사 소식을 종종 듣곤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퇴사는 끈기 없는 자들,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루저들의 종착역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커리어를 올바르게 설계하기 위해, 잘못된 조직문화와 리더십과 같은 환경적인 제약을 벗어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퇴사를 반복하고, 잦은 이직을 하는 것은 비단 90년대생만의 독특한 문화가 아니다.


 둘째. 퇴사를 앞두고 선후배 간의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에 따라 관계의 지속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선후배 사이가 인생에서 둘도 없이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 사이로 발전하기도 하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손절 관계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리더 입장에서 끔찍이 아끼던 후배가 회사를 떠나겠다고 한다면  당장은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후배가 팀에서 일을 잘하는 핵심 멤버라면 그의 이탈로 인해 팀의 분위기는 술렁이고, 남은 동료들의 업무가 가중되며 상당한 불편과 업무 공백까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마음은 순간의 사탕발림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다.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마음이 앞서겠으나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있는 힘껏 진심을 보여주며 조직 내에서 커리어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의 뜻이 그러하다면? 훗날을 기약하며 멋지게 박수치며 떠나보내줘야 한다.




논리적으로 설득이 가능할까?


 

 평생직장이 사라진 요즘 2~3년 근무한 후배들의 이직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제는 직장에서 이직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선 안된다는 암묵적 법칙이 허물어진지 오래됐다.


 후배가 이직 희망 의사를 밝혔다면 이미 더 나은 커리어 혹은 연봉 상승 등 선배가 붙잡기 힘든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후배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선배라면 이직하려는 회사에 대해 사업 포트폴리오가 불균형하다거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부실해 보인다와 같이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는 접근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이직 의사 자체로 배신자 취급을 한다거나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한다면 그 순간부터 후배의 마음은 철옹성처럼 닫혀버리고, ‘선배와 나의 관계가 결국 직장 내로 한정되어 있었구나’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직장을 떠났을 때 배신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둘 사이의 관계가 조건적인 관계라는 반증이 아닐까?


 아끼는 후배를 위한 노파심에 날 선 표현을 던질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논리적 접근은 후배의 마음속 청개구리만을 키울 뿐이다. 후배는 이미 이직할 회사에 대해 선배보다 적게는 두배 많게는 수십 배 더 많은 정보의 양을 가지고 있다. 그가 수많은 정보를 통해 정립한 단단한 논리를 깨부수려는 시도 자체가 불쾌감만 남긴다.




감정에 호소하면 통할까?



 퇴사를 앞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시간은 퇴사 여부를 확정하기 전까지의 인고의 시간이다. 스스로도 수없이 퇴사 여부를 고민했고 후회 없는 결정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을 것이다. 허나 무턱대고 갑자기 없던 회식자리를 만들어 친목도모를 한다든지 멘토링 활동을 하는 등 갑자기 경로를 한참 벗어난 윈도우 경고창같은 돌발 이벤트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들은 문제해결의 중심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와 같이 차일피일 결정을 지연하며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리더는 후배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유형이다. 저돌적으로 접근하는 리더를 보면서 후배의 머릿속에는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도 이렇게나 어렵구나’라는 말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보통 위와 같이 퇴사를 막으려고 임시방편으로 급조된 회식, 멘토링과 같은 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뻔하다. 정말 퇴사가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갈 건지, 계획은 무엇인지와 같은 해결책 없는 무의미한 대화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심지어 퇴사를 하고 싶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우리는 아무 일 없이 다시 일할 사이’ 모드로 태연하게 으쌰 으쌰를 하는 얼굴 두꺼운 리더들이 꼭 있다.


 헤어진 연인에게 하지 말아야 할 필수 수칙이 하나 있다. 바로 술 먹고 늦은 시간에 구질구질하게 전화를 걸지 않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퇴사한다는 후배의 마음을 돌릴만한 단 몇 프로의 가능성이라도 남겨두고 싶다면 자꾸 후배를 난처하게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퇴사 이유를 비난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도 독이 되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결정된 퇴사 번복은 어차피 금세 또 퇴사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미래를 고민하자.



 그저 후배의 입장에 공감해줄 때 후배의 마음이 열리고, 속 깊은 고민이 터져 나올 확률이 높다. 마음이 열렸을 때 필히 확인해야 할 것은 현재 조직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는지에 관한 문제다. 고민을 듣다 보면 의외로 리더와의 갈등, 업무 자신감 하락, 매너리즘, 커리어 불균형 등 중간관리자가 충분히 후배의 더 나은 성장을 위해 함께 고민해줄 만한 영역의 문제들도 많이 발견된다.



 이 스텝에서 중요한 것은 강요보다는 의사결정의 기준을 좀 더 폭넓게 해주는 것이다. “원래 그때가 제일 힘든 법이야.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되는데 그걸 못참아서..”와 같이 답이 정해진 이야기보다는 “나도 같은 고민이 있었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었다.”와 같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관점을 던져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직무 영역 확장을 위해 이직을 꾀하는 후배에게 “나도 그 맘때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지금 타이밍에 1~2년 더 전문성을 기른 후 이직하는 옵션도 고려해보는 건 어떨까? 알다시피 직장 특성에 따라 할 수 있는 동일한 직무일지라도 담당 업무가 다른 법인데, 지금 진행하는 업무는 타기업에서는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네가 원하는 업무 분야는 2~3년 후에 경력을 쌓고 더 시장 가치가 올랐을 때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와 같이 생각의 폭을 넓혀줄 수도 있다.


 또한 고민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켜주는 동시에 회사 내에서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다면 재빠르게 이를 모색해 제시하는 것이 좋다. 떠나지 말라는 백번의 말보다 하나의 명확한 솔루션을 통해 진심이 전달된다. 직무 변경을 희망하는 후배라면 회사 내에서 부서 이동을 권해보고, 주 담당업무에 불만이 쌓여있다면 후배의 커리어를 생각해 적절한 업무 분장을 다시 진행할 수도 있다. 역할 확장을 원하는 후배라면 당장은 어렵더라도 내년 혹은 내후년을 목표로 작은 프로젝트의 PM자리부터 새로운 경험을 약속할 수도 있다. 이처럼 중간관리자가 직접 나서서 후배의 커리어를 함께 설계해줄 때 후배는 극적으로 리더를 믿고 마음을 다시 되돌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가 떠나겠다고 한다면



 후배를 아끼는 선배로서 후배의 입장에 공감하고, 이런저런 대안을 제시하며 고민의 범위를 넓혀줬더라도 후배의 마음이 너무 확고하여 변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쉽겠지만 이때는 후배의 성공을 응원하며 과감히 놓아줘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편이 낫다.



 직장을 떠나는 후배와의 아름다운 이별은 무엇일까? 바로 그동안의 감사를 표하고, 그의 의견이 조직 발전의 자양분이 되도록 충분히 수용하는 것이다. 무려 4%의 낮은 이직률로도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퇴사 인터뷰(Exit Interview)를 참고해보면 어떨까? 그들은 퇴사자에게 “왜 퇴사하려고 하는지?”를 묻기보다 “파타고니아에 왜 입사했었는지?”를 묻는다고 한다. 그 뒤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  


    회사가 당신에게 약속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어느 지점에서 기대가 일치했고, 또 충족되지 못했나요?  

    당신이 바랐던 것과 경험했던 것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요?  

    여기서 누가 당신의 멘토가 되어주었나요?   

    당신의 후임자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이런 퇴사 인터뷰의 장점은 인터뷰 과정에서 누구의 잘못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직속 상사가 아닌 사람이 그들을 인터뷰할 때 더욱 솔직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욱 현명한 방법은 평소에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한 경력직 입사자 앞으로 꽃 선물이 온 적이 있다. 팀원들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팀원의 책상 위에 올려진 꽃바구니를 보고 남자 친구가 생겼냐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경력사원은 머쓱해하며 전 직장 동료들이 보낸 선물이라고 했다. 팀에서는 그 입사자의 평소 행실과 품행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두고두고 이 일이 회자됐다. 몇 번의 면접으로도 검증하기 어려운 그만의 탁월한 레퍼런스였던 것이다. 사실 후배만큼이나 후배에게 꽃을 보낸 선배들과 회사까지 달리 보였다.



 아름다운 이별의 과정엔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감사, 조직을 떠나는 상대방의 의견 조차 소중히 듣는 경청, 앞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응원이 항상 함께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사, 경청, 응원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표현하기를 부끄러워하고, 어색해하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회사에서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기 바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방의 의견엔 귀를 막고, 응원보다는 잘해오기만을 바라는 채찍질을 하곤 한다. 진정으로 아끼는 후배라면 퇴사와 이직을 희망하는 시점이 아니라 평소에 감사, 경청, 응원을 자주 보내주는 것이 좋다. 팀 업무를 떠나 진정한 파트너로서 인생 전체의 성공을 위한 길을 함께 고민하고, 항상 서로를 응원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팀에서 선후배의 인연으로 만났지만 인생 전체를 함께 걸어가는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다. 진정한 친구란 나이와 직급과는 무관하다. 마음이 진심으로 통하고 서로 존중하는 사이라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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