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 탈북청소년과 함께한 시간들의 출발점
바다를 좋아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는 바다를 떠올리면
'김장'이 생각난다.
너를 만나고부터,
내 삶에 어떤 삶이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바라지 않았던 것을 간절히 기다려보기도 했다.
"저희 동네에서는요, 김장을 바다에서 했어요."
재잘재잘 너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너의 한마디 한마디는 늘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곤 했다.
함께 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걸어가던 그 짧은 시간
네가 들려준 말들이 계속해서 일상 속 파장으로 남아있다.
싹을 틔우고 어린 줄기가 자랐지만 아직 멈춰있다.
열다섯에 멈춰있는 이야기의 남은 개월 수만큼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나무.
그러나 언젠가는 이어질 말들.
언젠가는
가르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 이뤄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말을 지금 아이들에게 하면
아이들이 나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생김새도 비슷하고 쓰는 말도 같지만 어딘가 모르게 다른,
다르지만 그렇게 다르지는 않은 존재들.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이 묻고 건너온 존재들.
하지만 뿌리는 아직 그곳에 남아있어
수시로 통증을 느끼는 이들.
통증은 수시로 나에게도 전달되어
비슷하지만 모두 알 수는 없는 아픔을 느끼곤 했다.
"핸드폰 바쳐요?"
초롱초롱한 앳된 눈빛의 철민이의 첫마디가 꽤 강렬했다.
"바친다고? 바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전 학년때는 아침마다 핸드폰 바치고 슨생님이 걷어가셨어서"
아... 바친다는 말이 '걷는다'는 이야기였구나.
말은 같지만 쓰이는 상황과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
바친다는 말 말고도 독특하게 와닿았던 말이 '배워주다'였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다'가 아닌 '배워주다'라고 했다.
마치, 제비 어미가 먹이를 꼭꼭 씹어 새끼 제비의 입속에 넣어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학교에만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곤 했다.
'선생님, 지난 일년 동안 저희에게 공부를 배워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궁서체로 꼭꼭 눌러쓴 편지.
아이들은 편지를 자주 써줬다.
연필로 꼭꼭 눌러 글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글로 나를 놀라게 한 적도 많았다.
열 다섯살 아이의 교과서 표지에 붉은색 네임펜으로 적혀있던 문구.
어떻게 이 어린 아이가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을까?
뒤에 더 많은 내용이 있었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가 썼다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어딘가 모르게 강하고 날카로웠다.
그 날카로움은 남을 해치는 날카로움이 아닌
날카로운 쇠 위에 서있는 절박함 같았다.
"학교 끝나고는 농사를 도왔어요."
급식실에서 해맑게 밥을 먹으며 자신의 지난 날을 회고한다.
"거기서 밥은 주로 어떻게 먹었니?"
"도시락 싸갖고 다녔죠. 엄마가 만들어준 도시락."
"아, 그래? 그러면 반찬은 주로 어떤걸 싸갔니?"
아이는 잠시 몇초동안 머뭇거리더니 밥을 입에 한가득 넣은 목소리로
"고추장! 고추장이요"
고추장과 밥을 싸갖고 다녔다고 한다.
아이의 검게 그을린 얼굴, 짧은 스포츠머리, 갈색 눈동자...
아이는 조심스레
여기서는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지만
엄마가 싸준 고추장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다고 했다.
이런 작은 말들이
툭툭 마음을 건드렸다.
'통일'이라는 단어는 너무 차갑고 멀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차갑고도 먼 두 글자를 늘 힘껏 당겨와 곁에 두었다.
가망 없어 보이는 아주 작은 희망에도 정성껏 물을 주고 가꿨다.
아이들도 나도 간절히 어떤 두글자를 기대한 적이 있었다.
두손 모아 기대했다.
이후에 벌어질 사회, 경제적인 혼란은 뒤로하고.
그냥 빨리 아이들이 엄마와, 가족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었다.
6.25 전쟁의 종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확인하는 선언.
선언 이후 달라진 것은 없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전쟁중이라는 것을 확인 했을 뿐.
그냥 내가 잊고 살고 있었을뿐.
분단의 아픔도 아직 누군가에게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아직도 남아 맴도는 아이들의 입자를 기억해보려 한다.
네가 살아온 시간, 짧지만 길게 남아 너를 살게 할 기억들.
너의 바람이 이어지기를 기도해본다.
그때까지
너와 나누었던 시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보려 한다.
한번에 많은 것을 담기엔 마음이 무거워져
오늘은 여기까지만 기억한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 기반한 회고이며, 일부 인물 및 상황은 재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