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양에서 만난 것들

'남해'도 아닌 '남애'에서의 길찾기 여행

by 시쓰는국어쌤


2015년에서 2017년 중반

비인가 대안학교에서의 2년 반을 떠올려 보면

지금보다 딱 5배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다섯배가 뭐지, 열배는 더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그때는 젊었으니까, 배움을 채워 나가는 시기니까 버틸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

이것은 꼭 공교육에도 도입하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직업인 인터뷰 여행'다.

그 뒤에는 반드시 '생생한'이 붙어야 한다.





Day1

5월, 아이들과 양양 남애항 어촌마을로 길찾기 여행을 떠났다.

선발대는 이미 출발하고, 나의 역할은 후발대 두명을

남애항 어촌계 마을로 잘 데리고 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양양을 버스로 가는 것도 처음인데

양양에서 내려서 남애항으로 데려가야 한다.

양양은 서울처럼 대중교통이 많이 다니지 않고

택시를 부르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출발할 때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가면서부터 계속 검색을 했지만

명확한 버스 시간과 번호, 타는 곳이 나와 있질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양양까지는 데려갔지만

그때부터 혼란의 도가니였다.

휴대폰이 갑자기 스마트함을 포기해 버렸다.

아예 먹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매표소에 물어보니

요 앞에서 버스타고 가라고 한다.


혹시 몇번 버스고 언제 오냐고 물어보았더니

그건 자신들도 모른다고 한다..^^;

(누구든 좀 알려주오ㅜㅜ)


속으로는 무척 울면서

터미널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18세 여자 아이들 두명을 데리고..


잠시후 인자해보이는 할아버지 한분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신다.

'남애항'을 간다고,

혹시나 '남해'로 들릴까봐 '애'를 강조하며,

근데 어디서 뭘 타야될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는 인자한 표정으로

그곳은 본인이 가는 곳 근처에 있다고 대답하셨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가면서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그 버스 번호를 검색하니 정말 '남애항'이 나왔다.

구세주의 모습이 있다면 그런 모습일까.


버스가 오자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이 버스를 타면 된다며 안내하셨고

얼마 가다가 할아버지는 먼저 내리면서,

남애항은 다음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고

목소리마저 따뜻한 말투로 설명해 주셨다.

마치, 나의 대학시절 현대시 교수님 같았다.

먼저 내려서도 버스가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지켜보시고는 뒤돌아 가셨다.

따뜻하고 자상한 할아버지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터미널에서 만난 양양 할아버지의 호의에

불안하고 속상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고

어느새 '남애항'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선생님~~~"

도착하자마자

선발대로 와 있던 아이들이 우다다다 달려왔다.



Day2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만들어 먹었다.

나는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아이들이 엄청 좋아해줬다.

여행 가서 아이들과 같이 요리를 하는 것도 아이들을 깊이 알아가기에 좋은 활동이었다.


오늘은 직업인 인터뷰를 하는 날,

'문어 잡이 어부'


직업 이름을 듣기만 해도 호기심이 샘솟았다.


서울에서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경제 금융 관련 일을 하다가

도시 생활에 지쳐서 귀어를 결심했다고 한다.

(극 공감..)

이곳 남애항이 원래부터 고향이었어서 그런 결심을 하는게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문어잡이를 하며 가장 좋은 점은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

(이걸 듣고 혹했다..^^;)

주로 새벽에 조업을 하기 때문에

문어를 잡고, 수협에 팔면 바로 돈이 들어오고

아침부터의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라고 했다.

귀촌을 많이 하는데 귀어도 매력적인 면이 많다며

아이들에게도 추천해 주셨다.


이렇게 생생하게

그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살아있는 진로 교육'이 아닐까?

책으로, 활자로, 영상으로 말고

진짜 그 지역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듣는 것.


지금 공교육 안에서의 진로교육은

많이 정제되어

그 직업의 숨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가 없다.

글로 상상할 뿐,

간접적으로 들을 뿐,

제대로 느끼고 체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문어를 잡는 장면

새벽에 막 통발로 잡은 문어를

수협에 팔고나서, 양양의 푸른 자연 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모습들.

언제고 상상하면 자유롭고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다.


그외에도 등대지기, 서핑 강사, 제주도에서 독특한 카페를 하고 있는 조각가 등

자신만의 색을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잘' 살아가고 있는 직업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나누었다.


길을 찾아 나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삶을 나누는 경험.


무엇보다도 팔뜨닥거리며 살아있는

이 아이들의 삶과

팔뜨닥거림을 주체하지 못해 짙게 푸르게 자신의 색깔을 풀어가며 사는 사람들의 삶

이어준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금의 우리에겐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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