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 잘한거 맞디요?

북한 아이들과 함께 깜깜한 밤을 지샜던, 그 시절 나의 광야 이야기

by 시쓰는국어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두시는지..." 정진운의 목소리로 흐르는 이 가사 한 줄이 결국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기독교인에게 '광야'는 피하고 싶지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숙명과도 같은 곳이기에. 평소 눈여겨보던 배우 정진운이 전하는 이 노래의 힘에 이끌려 보게 된 <신의 악단>은, 그렇게 나의 개인적인 기억과 신앙을 건드리는 통로가 되었다.



[줄거리]

북한 보위부 장교가 외화 벌이를 위해 가짜 가스펠 악단을 조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기독교를 부정하는 체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직 '돈'과 '생존'을 목적으로 찬양단을 꾸리지만, 음악을 연주하며 점차 변화해가는 인물들의 갈등과 인간적인 교감을 담아낸 영화이다.



영화 초반, 북한 사회의 단면을 블랙코미디처럼 그려낸 장면들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지루하지 않게 잡아준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북한 군인인 박시후와 정진운이 겪는 내면의 변화는 관객의 마음을 묵직하게 파고든다.

처음에는 기독교인을 잡아 고문하고 박해하던 그들이었지만, 하나님을 진짜로 알게 된 순간 삶의 방향은 완전히 뒤바뀐다. 잡는 자에서 잡히는 자로, 고문하던 자에서 탄압받는 자로 변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박시후가 대동강교회에서 중앙 감찰단에게 무참히 매를 맞으며 피 흘리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세상의 힘을 가졌던 군인이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절하게 부서지는 그 장면에서, 나는 '광야를 지나며'의 가사가 그들의 삶과 비로소 하나로 맞닿는 것을 느꼈다.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광야를 지나며/히즈윌>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나의 힘과 지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그 순간을 잘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믿기를 선택하는 것'도.


예전에 파견 갔던 탈북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북한에서 온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평생을 '기독교는 악'이라 가르치는 체제 안에서 살았을 텐데, 어떻게 대한민국에 오자마자 저토록 신실하게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는지 도무지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는 알게 되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들이 처음 자유 의지로 선택한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담당 반 아이의 아버지가 북한에서 하나님을 믿다가 보위부에 잡혀갔고, 그 이후에 소식을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생의 나이였음에도 속이 깊고 어른스러웠다. 티비에서 나오는 통일 관련 소식에 눈을 반짝이다가도, 언젠가는 꼭 엄마 아빠와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기 위해 믿음을 잘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아이의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머물렀다. 그 아이와 함께하면 누군가 그 아이를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강렬히 들었다. 그 느낌은 말로는 설명못하겠지만, 누군가의 기도가 계속해서 아이의 주변을 맴돌고 있고 지켜주고 있음은 틀림없었다.


그 시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있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탈북 여성과 중국인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제3국 출생 학생들의 삶 또한 평탄치 않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깊은 우울증으로 등교를 거부하던 한 아이의 집을 찾아갔던 날이 떠오른다.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 겨우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번호키를 눌러 들어갔을 때, 아이는 폭풍 같은 현실과는 상관없다는 듯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의지했던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아이는 삶의 모든 의지를 놓아버렸다고 했다.


교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한없이 작고 여린 아이에게 아무런 손길도 내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이가 학교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그 곁을 지키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내가 원래의 학교로 복귀한 이후에도 아이는 여전히 제자리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무 소망 없어 보이는 깜깜한 밤, 그 옆에 같이 앉아 있는 일을 했던것 같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옆에 내가 같이 앉아 있다는 것을 아이는 기억할까.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으면 부모님께 연락을 한다. 연락을 하고 학생의 상황을 공유하는것만으로도 상황의 95퍼센트는 해결된다. 아주 간혹, 학부모가 아이의 지각을 정당화해주는 그런 독특한 일도 있지만, 어쨌든 그 아이의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가까운 대상이 있다는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혈혈단신으로 한국으로 넘어온다. 아이가 먼저 탈북하고 부모가 나중에 오거나 그 반대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라도 한국으로 가서 잘 살라고 아이들만 보내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엄마나 아빠와 같이 오는 경우는 그래도 좀 나은 경우였다. 그래서인지 보호자가 전혀 없는 경우의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안 오면 그만, 자기 손해'가 아니라 이들에게는 생과 사가 걸려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부모님이 케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 시간에 학교에 오지 않았다. 물론 잘 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제 시간에 맞춰 출석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비율을 따져 본다면 반반이었다.


보호자 없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을 때면, 그 빈자리의 책임은 오롯이 교사의 몫으로 남았다. 아이의 생사가 걱정되어 마음이 타들어 가는 날조차, 나의 기도와 관심이 부족한 탓은 아니냐는 무거운 시선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걱정 위에 얹어진 죄책감의 무게는 결국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이는 오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들 속에서, 한 분기에 한 번꼴로 위경련을 일으키며 응급실로 실려 갔다.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서 있는 이 치열한 현장 또한 누군가의 기도가 간절히 필요한, 나만의 '광야'였음을.


그럼에도, 한달 월급으로 감자 여덟 알을 받으며 지낸다는 군인 이야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과 함께 지내면서 먹을 것이 없어 열매를 따기 위해 10미터 높이의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갈비뼈 등이 골절되었다가 겨우 겨우 살아났다는 아이의 이야기, 먹을 것이 너무 없어 끼니를 두 끼 먹으며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으면 나의 지금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지금도 북쪽 저편 수많은 이들이 광야를 지난다.



영화 마지막에 박시후의 "하나님, 나 잘한거 맞디요?"라는 대사가 마음을 울렸다.


상업 영화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찬양이 흘러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동시에 나 또한 앞으로 어떤 메세지의 통로가 되어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하얀 눈으로 모두 뒤덮인 처음. 이 처음의 자리 앞에서 다시 기도하며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훗날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묻고 싶다.

"하나님, 나 잘한거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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