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은 왔지만 방학은 안 왔다

feat. 고등학교 교사에서 중학교 교사, 학기말에 힘든 이유

by 시쓰는국어쌤

방학까지 디데이를 세면서

디데이 15일째부터 지금까지 150일처럼 지나가고 있다.

지금은 방학 디데이 4일인데 아마 40일처럼 지나갈 거다.


최근 5년 간은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작년에 중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학기초, 일단은 외모부터가 아기들이었고, 목소리도 아기들이었다.

마음도 아기들이어서 비교적 순수했고,

수업을 하면 활동을 정말 열심히 따라와주었다.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자존감이 떨어져 가지만

나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도 알아채주고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이 장원영보다 예뻐요~(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주는 순수한 존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런 감사한 것들이 있어서 1년이 괴롭지만은 않게 지나간것 같다.



#1. ㅇㅇ이랑 붙여주시고 ㅁㅁ이랑 떼어주세요.


반면, 고등학교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것을

학기말에 마주쳤으니.. 그건 바로바로

내년 반에 관한 요구.


하나 하나씩 오는 장문의 문자가 나를 당황케 했다.


"선생님, 저희 아이는 ㅇㅇ이랑 붙여 주시고 ㅁㅁ이랑 떨어뜨려 주세요."


'읭? 이게 이렇게 요구하는 거였다고?'


고등학교 교사 시절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메세지.

이런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꽤 많이 받았다.


왜일까? 왜?

초등학교에서는 이러한 요구를 고려해서 반편성을 한다고 한다.

우리학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학교가 그런다고 한다.

초등은 그럴 수도 있을까

발달 단계와 학교 급이 달라서 함부로는 이렇다 저렇다 단정할 수 없겠다.


그렇지만 중학교부터는 중간, 기말고사, 학기말 성적이 나오기 때문에

성적 중심으로 나이스 프로그램을 통해 편성한다.

그 뒤에 학폭 이슈가 있었던 아이들을 떼어놓는다.


이렇게 하지 않고

학부모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서 반 편성을 한다면..?!

만약 그 결과가 성적 분포차에도 영향이 생겨서

1반과 2반 평균 점수 차가 10점이 난다고 치면

수업에 매우 차질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끼리끼리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가 있다.

사회성 발달 또한 무너질 것은 당연한 것이고.


학부모들이 왜 그렇게 요구하는지 심정은 이해한다.

중학교 3학년때 한 학기 내내

싸웠던 아이와 짝을 시켰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선생님을 담임으로 겪었던 교사로서..


그렇지만 너무 입맛에 맞게만 요구하는 것이

과연 아이의 발달을 위한게 맞는 것일까?

뭐 한두개여야 들어주지

모두가, 정말 많은 이들이

ㅇㅇ이랑 붙여주고 ㅁㅁ이랑 떼어달라는 문자를 보내는데


학폭이나 극심한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그런 문자는 반 편성에 반영되지 않는다..




#2. 끝나도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일들

나의 업무인 성적처리가 마무리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지만

쌓여 있는 쿨메신저 메세지들.


생기부에 '책읽기'를 '책 읽기'로 수정해 주세요.

'초코스콘'을 '초코 스콘'으로 수정해 주세요.

이외에

나의 업무가 아닌데 나에게 물어보는 메세지

예산 증빙 처리를 하라는 메세지

기말고사 결과 분석 기안문 올리는 업무

그런 것들을 처리하려고 나이스에 접속했는데

내가 결재하고 처리해야 할 것들이 새롭게 쌓여 있고

그것들을 처리하다 보면 원래 하려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그 와중에 부장님이 무언가를 요구하는데

나의 업무가 아닌 것들이 있고

(성적처리 업무인데 자유학기 관련 업무 지시)

또 '그게 뭐지?'라고 생각하다 보면 수업 종이 치고

수업을 하고 내려오면 또 쿨메신저 메세지가 한가득.

위에 있는 상황들 무한 반복 무한 루프.


뒷목과 심장에서 기운이 쭉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

나중에는 메신저 글들을 읽다가

글자 전체가 뒤흔들리면서

짧은 두 줄의 글임에도

내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조용히 살짝 미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하나..

수없이 무너지고 일어남을 반복한다.


이런 4일은 40일처럼 느껴진다.



#3. 방학 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

동해 바다에 가고 싶다.

오로지 하늘, 바다로만 분리된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

차가운 모래사장을 걷고 걸으며

흔들렸던 동공을 바로잡고 싶다.

쉬고 싶다.

쉬고 싶다.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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