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10 한

by soripza

목요일은 건너 뛴다. 왜냐면, 비가 오기도 했고 아무것도 한게 없어서 였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기보다는 일기에 남길만큼 큰 일은 하지도 않았고, 색다른 생각을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금요일로 바로 넘어간다.


수업이 있었고, 몸이 조금 지쳤는지 힘이 없었다. 그래서 아침에 헬스장도 가지 않았다. 열두시부터 수업을 들어야 하기에 그때에 맞추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었다. 한국에서 저녁 일곱 시에 듣던 수업이라 독일에서는 정오에 들으면 된다. 베를린에서 나의 어학수업이 어찌될진 모르겠지만, 시간적 여유가 생긴하면 주말반이라도 좋으니 한국 수업도 병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1 교재가 끝나가고, 쓰기 숙제 및 과제가 많았다. 다른 (잘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 나의 어휘수준이 아직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독일에 와서는 한국에서 (게으른 탓에) 다 못한 수업교재의 어휘/표현 정리를 하루에 한 두 과 씩 진행하고 있다. 결국 공부는 별다를 게 없다. 언어는 특히. 그냥 많이 접하고, 시간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다섯시 반에는 내가 다녔던 회사의 판매법인으로 파견오신 분을 만나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을 미리 사러 동역(Ostbahnhof)로 나갔다. 토요일날 밀린 빨래도 하기 위해 잠시 코인빨래방에 들려 어떻게 사용하는지 둘러봤다. 동네를 크게 돌아 중앙역 쪽으로 가는데, 갑자기 어떤 마트 앞에서 아줌마가 날 불러세웠다. 그러고선 다짜고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며, 손에 자신의 가방 (생필품이 가득한) 두 개를 얹히고, 요 앞이 자기 집이라고,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독일어였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건지, 인상이 선해보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후 세시 반에 금요일날 마트 앞을 지나가는 동양인이 만만했던 건지. 약간의 불안 (혹시 저 아줌마가 나를 꾀서 집으로 간다음에 다른 공범들과 함께 나에게 나쁜짓을 하려나?)을 안고 아파트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을 4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엄청 고맙다고 하면서 다행히(?) 별일 없이 나는 다시 거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장을 보고 다섯시가 조금 안 되어 호텔로 들어갔다.


그때, 동기 한 명이 카톡을 보냈다. 사진을 보냈는데, 다른 동기 한 명과 본인 집에서 놀면서 메롱을 하는 사진이었다.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내 이야기가 나왔나 싶었다. 반가워서 카톡을 하다가, 영상통화를 하자고 했고, 그렇게 호텔로 들어가서 독일에서의 첫 영상통화를 했다. (가족과는 엄빠가 할머니댁에 내려가셔서 + 요금제가 무한이 아니라서 하지 못했었다, 라는 불효자의 변명) 한국은 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을 텐데, 이렇게 생각나서 전화해준게 너무 고마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도 하고, 꼭 독일이나 유럽으로 놀러오라고, 그러면 반갑게 맞아준다고. 독일와서 저녁 동행을 구해서 저녁을 먹은 적은 있지만, 역시나 잘 알고 친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웃음은 다르다. 그렇게 40분 정도를 통화하고, 화이팅이 독일어로 뭐냐고 물어보길래, Viel Glück! (행운이 가득하길!)이라고 알려주고, 그 말로 통화를 마쳤다. 그래도 내가 호텔에 딱 들어와서 데이터 걱정없이 통화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끔은 나의 타이밍도 잘 맞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호다닥 호텔 근처의 식당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오랜만에 보는 회사분은 내가 취업할 때 같은 팀이라 알고 있었다. 올 1월 쯤에 장기파견을 나와서 뮌헨 법인에 있었다. 사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는 여러사람과 친하게 지내진 못해서 얼굴만 알고 말을 못해분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 분께 연락을 할때도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는 다르게 그분과 회사에서 근로장학생으로 뽑은 뮌헨공대(내가 가고싶은 대학..) 학생도 같이 즐겁게 식사를 했다. 타지에서 한국사람들을 만나서 있는 건 역시나 마음이 편해지고, 나도 인맥을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다. 비록 근로장학생분은 영어코스로 학사가 끝나가고 이제 석사를 진행하지만, 독일인 친구도 있을 것이고 나중에 또 학교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아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했다.


저녁을 먹고 세 명은 모두 헤어졌다. 알고보니 회사분은 중간 입국날이 내일이었다. 어쩌면... 회사에서 나도 계속 일을 했다면, 나에게 일어났던 그 나쁜일이 없었더라면 유학생신분이 아니라 회사소속으로 독일에 올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왕 선택했으니 성공할 각오로 달려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게 더 중요하다. 집에 들어가니 아홉 시가 되었고, 간단히 샤워를 하고 잠에 들었다. 여러모로 따뜻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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