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수업(B2.1)의 선생님이 내가 다음 단계(B2.2)로 가는 대신 B2.1에 한 번 더 머무르라고 했기에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월요일 수업 전에 리셉션에 가서 이 말을 했더니, 아마도 새로운 반에 가면 그 반 선생님이 B2.1로 안내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수업이 있는 3층으로 갔다. 기분 탓일지는 몰라도, 단계가 올라가면 층수도 같이 올라가나 싶었다. 그러나, 그 반의 선생님은 나를 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속으로 그냥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면 되나? 싶었고 월요일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저녁에 이전 반 선생님에게 왜 B2.1반에 안들어왔냐고 (심지어 그는 B2.3반을 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메일이 왔다. 검거가 됐다고 생각한 나는 이내 포기하고 역시 독일이란 쉽지 않은 나라구나, 라고 인정하고 선생님의 순리를 따라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B2.1로 들어가라는 메일은 오지 않았고, 수업시작 전에 나에게 메일을 보낸 그를 만났다. 그러자 아직도 아무말이 없냐고 물어봤고, 그렇다고 했고, 그렇다면 그것은 아마도 행정실에서 처리를 잘못한 것 같다, 라는 선생의 말이었다. 흠, 일처리는 그다지 빠르지 않구나, 라고 며칠 만에 상황이 두 번 뒤집혔고 나는 그대로 B2.2반을 일주일 째 듣고 있다.
수요일엔 이전반을 같이 들었던 프랑스 아주머니를 대기실에서 만났는데, 2주 수업 들은게 뭐라고 되게 반가웠다. B2시험을 친다고 해서 행운을 빈다고 말해주었다. 유독 저번 수업은 프랑스인들과 잘 지냈는데, 위의 메일이 왔을 때도 한 프랑스인 할아버지가 내 메일을 알려달라고 했더랬다. 나는 그에게 답장을 수요일날 보냈고, 목요일날 또 장문의 이메일을 그에게로부터 받았다. 아직 에피소드가 그닥 많이 쌓이지 않아서, 주말 쯤에 답장을 할 생각이다.
그러고보면, 어떤 나라에 대한 인상은 그 나라 사람이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를 약간 깔보는 것 같았던 영국과 벨기에 어린놈들 때문에 두 나라에 대한 호감도가 이번에 많이 떨어졌는데, 반대 급부로 프랑스에 대한 호감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외국인들은 사고가 확실히 자유로움을 느꼈다. 누가 뭘 하던 그걸 존중해주는? 아까 말한 프랑스 아주머니도 어떤 글로벌 회사에서 경제관련 (아마도 회계?)일을 하다가 진로를 바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고, 독일어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해서 독일어를 배우고 시험을 본다고 했었으니까. 프랑스 할아버지는 70의 나이에도 유머스럽게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기 위해서 독일어를 배운다고도 했다.
사실 그들의 나라에서 그들의 선택도 일반적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회사를 때려치고 독일 유학을 간다고 할 때 대부분 (그런 선택을 한 걸) 놀라워했었는데, 여기에서는 나의 선택도 그저 평범(?)해보이는 선택5 정도로 생각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나도 너무 나의 선택에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겠다라는 건 아니다.) 너무 대단하다고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처음 선택을 내렸을 때의 목표와 목적을 향해 묵묵히 가는 것에 방점을 두려고 한다.
이번 반 선생님은 목소리도 작고, 마스크도 끼고 조용조용한 성격이라 말이 잘 안들릴 때가 있다. 저번 반에서 같이 올라온 미국인은 이전 반 선생님이 그립다고 살짝 디스를 하기도 했다. 나도 일정 부분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선생님마다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는거니까 누군가는 이런 수업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지. 나는 사실 분위기는 이번 반이 더 좋다. 나이가 조금 있어서 그런지 다들 차분하고, 수업 시간에 대놓고 핸드폰이나 딴짓을 하는 (나이 불문이겠지만) 어린 애들도 없어서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다. 아참, 첫 날에 내 옆에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프랑스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다음날에 월반을 해서 그 다음반으로 올라가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알자스 지방 사람이라 독일 국경 바로 근처라서 자신의 사투리가 독일어랑도 비슷하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녀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독일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학원에 왔다고 했다.
어쨌든 또 이렇게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다.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나를 마주한다. 운전도 처음에 할 때는 정면 보기에 바쁘고 발과 손을 어디에 둬야할까 불안한게 있지만 능숙해지면 시야도 넓어지고 조작도 자연스러워지는 것처럼. 이제는 수업시간에 미쳐 다 하지 못한 책의 남은 부분도 조금씩 보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고, 공부의 루틴도 잡히기 시작했다. 확실히, 너무 오랜만에 장시간 (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공부를 하니까 적응이 안됐던 것 같다. 원래도 학교 다닐 때 엄청 시간을 많이 쏟는 유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독일어라 지치기 않고 계속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