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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4-15 한

by soripza

일요일


전날 저녁의 통화를 아침에 이어갔다. 친구는 밤 12시가 넘어 새벽까지 미국법인 회사의 동료들고 홈파티를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졸려서 그냥 잘 법도 한대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마웠다. 전날과는 반대의 상황으로, 그러니까 이번에는 해가 내 쪽에 가까웠고 그의 쪽에서는 먼 쪽으로, 그것이 또한 영상통화라는 매개체로 행해지다 보니 서로의 배경으로 빛의 유무를 확인 할 수 있어서 묘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독일로 넘어왔을 때 먼저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하자고 제안해준 것도 그였고, 그때마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북돋아준 사람도 그였다. 내가 MBTI를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그 기준으로 우리 둘은 중간에 N과 S만 달랐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나는 미시적인 세상을 태하는 태도는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예컨대 문학이나 문화 또는 환경에 대한), 거시적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과거/미래 혹은 현재와 같은 시간의 어느 순간에 좀 더 집중하느냐)는 다른 것이 다른게 이해가 됐던 것 같다. 만 5년의 시간 동안 회사에서 내가 얻은 것들이 있다면 이렇게 그만두고서도 연락을 할 수 있고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생긴 것,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쌓아서 그 발판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물질적으로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인 것 같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해외를 나오기도 해서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묘하게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쨌든 서로의 위치에서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사실 이날 (이미 나의 글쓰기 기질을 알고 있던 대학교 친구들을 제외하곤 거의 처음으로) 나의 브런치 계정을 알려주어서, 언젠가는 지금 글쓰고 있는 글을 읽는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의 (어쩌면 본질적으로서의) 다른 면을 보여주느 것도 재밌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나서는 점심 때 동아리 후배와 통화를 한 번 더 했다. 인터넷을 무한대로 쓸 수 있는 유심을 신청해서 받았고, 핫스팟도 사용할 수 있는터라 드디어 집에서 맘 놓고 노트북도 사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경축)인터넷 게시 이벤트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 파주로 자주 놀러가서 졸업한 이후에도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그는, 얼마전 퇴사를 하고 혼자만의 시간(이자 싸움이자 휴식)을 가지고 있다. 매주 브런치에 자신이 읽은 책과 드라마, 영화에 대한 리뷰를 올리는데 그 양이 범상치 않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자신을 알아가고 새롭게 출발할 원동력을 끌어올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와 홍수 같은 재해들이 없었다면 그가 지금쯤 어떠면 통화대신 베를린에 놀러와서 같이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날은 사람들과의 교감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월요일


본래는 B2.4반에 들어가야 했지만, 어학원에서 수강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를 C1.1반으로 승급시켜줬다. 어학원에서 이제 3개의 강의를 6주동안 들으면서 약간은 B2도 허덕이면서 들었다고 생각이됐기 때문에 내가 C1반을 정말 들을 수 있을까? 라고 반신반의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참, 오늘은 월요일이라 Lena와의 독일어 과외도 있는 날이었고 오늘은 Lebensmittel(먹거리/식료품)에 대한 이야기를 REWE라는 대형 매장에서 만나서 하기로 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과외를 연결해준 또다른 한국분의 집으로 가는 대신 집에서 나와 매장까지 20분을 천천히 걸었다. 베를린에 주민으로 등록되어 살고는 있지만, 집-학원을 반복하는 일상이 대부분이라 주변 상권이나 지리를 잘 아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유있게 나와 거리를 걸으면(독일식으로는 spazieren gehen) 기분이 좋아진다.

거의 정확히 10시에 레나를 매장 앞에서 만났고, 안으로 들어가 여러가지 과일/채소등을 보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아시아에서만 자란 나, 그리고 뭔가를 알아보는 것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마트에 갈 때마다 이 과일이 뭘까, 이 채소만 뭘까 라고 바라만보면서 익숙한 것만 사오곤 했는데, 오늘로서 이제 그들의 품종에 대해 간략하게 알게됐고, 다음에 마트에 가면 무엇을 더 시도해볼 지 알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원래는 한 시간 정도 마트를 구경하고 한 시간은 커피를 마시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는데, 그가 말한 커피집은 인기가 많았는지 줄이 길었고 그래서 그냥 근처 공터의 의자에 앉아 토요일의 코로나검사에 대한 일과 새로 들어가는 C1.1수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정치적인 주제(이데올로기로 사회주의였던 구 동독 지역의 사람들이 왜 현재에 극우파 정당를 지지 하는 가)를 너무 깊지 않은 수준으로 나눴다.

이제 수요일이면 과외도 마지막이고, 기념으로 저녁에 세명이서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마지막이자 내 독일어 회화실력이 늘 수 있게 되어 저번주에 위험한 곳(Dussmankaufhaus : 방대한 양의 책과 DVD등의 문화물품을 파는 곳)에서 페촐트의 영화를 DVD로 두 개를 샀고, 저녁때 이들에게 하나 씩 선물할 생각이다.


수업시간에 거의 딱 맞춰 도착했고, 이미 교실은 가득차 있었다. 강좌 수준이 C1이라서 그런지 다들 말도 유창하게 잘 하는 것 같았다. 다행힌 건 이번 선생님은 활달한 편이라 수업시간에 활력도 넘쳤고, 작은 테이블 안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보통 수업을 들으면 첫 날에 말을 한 사람과 가장 친해지곤 했는데, 이번엔 그 대상은 앨자스 지방(독일과 프랑스의 국경 근처, 프랑스의 동남부)에서 온 수학선생님인 Jean-Philip(쟝 - 필립)이었고, 그와 첫 번째 1시간 반 수업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다행히도 6주동안 회화실력도 늘고, 오전에 Lena와 회화도 했기 때문에 말도 좀 더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C1.1수업도 들을 만 했다. 아니, 어떤 면으로서는 B2.3(아르민 괴벨스 선생님 미안합니다.)보다 좀 더 귀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수업은 순조롭지만, 은행은 순조롭지 못했다. 한 달 전에 Deutsch Bank에서 계좌를 만들었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편지도 받지 못했고, 그 때문에 유학원에서 은행에 독촉편지를 쓰라는 가이드를 받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편지를 인쇄하고, 편지 봉투를 샀다. 독일은 아직은 한국처럼 인터넷을 모든 영역에서 잘 사용하지는 않아서 이런 일을 아직도 아날로그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화] 유학원과 통화를 하면서 알게된 것이긴 하지만, 내가 운이 지지리도 없는 케이스라고 했다.) 그래도 독일어에 자신감도 생기고 (여기엔 일요일의 통화가 주요했다!) 앞으로의 생활이 즐거울 것 같아 은행일은 신경을 덜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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