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ilmKart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ripza Jan 10. 2024

입장과 귀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독일에서 드디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개봉했고, 나는 영화시간표를 확인한 뒤에 이 작은 도시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조합인 일본어원어음성과 독일자막으로 상영되는 일자과 시간에 극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한 달 전쯤 본 <크리에이터> 이후 두 번째였고, 오늘의 상영관은 극장에서 가장 큰 곳이었다. 화요일 오후에는 영화관이 전체적으로 할인을 하는 듯했고, 그래서 나는 10유로를 지불하고 열댓 명 정도와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이제, 나의 세계는 잠시 접어두고 영화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려 한다.


 


상상은 많은 것을 대체한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상상으로는 맛볼 수 있다. 영화나 소설도 상상에서 나오는 창작물이다. 영화는 상상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라고 서두에 말하는 것 같았다. 영화의 극초반, 마히토는 엄마가 입원해 있는 불탄 병원으로 가지만 결국 그곳에 다다르지 못한다. 건물은 무너지고 (아마도) 엄마는 죽었을 것이다. 마히토는 이것을 마음에 품는다. 도쿄에서 시골로 이사를 간 뒤에, 새엄마이자 엄마의 동생을 만나고 어느 날, 그는 없어진 엄마의 동생인 '나츠코'를 찾기 위해 왜가리를 따라 상상 혹은 환상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엘리스는 토기를 따라 굴로 들어가고, 마히토는 왜가리를 따라 어떤 탑으로 들어간다. 한편, 감독의 예전작인 <센과 치히로>가 생각나기도 한다. 현실에 없는 공간으로 들어간 소녀는 거기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데, 주인공의 공간적 이동은 꼭 그것과 닮아있다. 이러한 공간에서는 역시 환상적인 존재와 이야기가 가득하다. 마법을 품고 있는 돌이라던가, 사람의 말을 하는 새, 괴상할 정도로 부풀어 오르고 사람 같은 앵무새 그리고 범상치 않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까지. 한편 탑이라는 공간은 그의 꿈이라고 무방할 정도로, 탑의 내용물들은 그가 원래 가지고 있던 기억이나 형태들이 나오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골로 갔을 때 자신을 맞이해 준 할머니들이 목각인형으로 나오거나, 어렸을 때 먹었던 맛있는 빵을 다시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따로 있다. 그는 '나츠코'를 찾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잠시 시선을 마히토에서 그가 들어간 '탑'이라는 공간을 살펴보자. 아들과 새 아내가 사라진 뒤에, 마히토의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탑의 기원을 듣는다. 외계에서 떨어진 돌이 있었고, 거기에 사별한 아내와 새 아내의 큰아버지가 건물을 짓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사별한 아내가 어렸을 때 탑으로 사라졌다가 이내 다시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단, 기억은 사라졌던 채로. 탑이란 공간은 마히토의 가족과 얽힌 공간이고, 거기에 입장할 수 있는 인물들은 마히토의 입장에서 큰할아버지와 혈연관계를 지닌 사람만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유전>이나 <랑종>에서 피를 물려받아야 가능한 '자격'이라던가 '운명'처럼,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이후 그대들~)>에서는 탑의 입장조건, 그리고 나중에 마히토가 자신의 큰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듣는, '이 세계를 물려받을'조건이 그렇다. <유전>에서 찰리의 아빠가 나머지 가족과 분리되어 있는 것과 비슷하게, <그대들~>에서도 마히토의 아빠는 그곳과의 접점이 없다. 그는 현실세계에서 그의 가족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편, 탑은 공간적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마히토와 같이 건물 로비에서 늪처럼 빠져 사라진 할머니인 '키리코'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여자를 만나고, 마히토는 그녀와 함께 생선을 잡고 영혼과 같은 존재들이 윤회를 위해 승천하는 것을 본다. 이때 펠리컨의 습격을 막아주는 소녀를 보게 되는데, '히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녀는 짐작컨대 마히토의 엄마이자 미치코의 언니인 히사코의 어렸을 적으로 보인다. 이처럼, 탑은 시간이 뒤섞인 곳이기도 하다. 과거(미치코)와 현재(마히토와 나츠코)가 뒤섞이고, 탑에는 실종된 큰할아버지가 있다. 그래서 탑은 더더욱 환상적인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마치 <몬스터 주식회사>처럼 모든 세계의 모든 시간대로 향하는 문이 있기도 하고, 설명되지 않는 공간적 접합 요소들도 있다. 



주인공인 마히토를 생각해 보면, 탑은 그가 성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초반에 말했던 것처럼, 그에게는 스스로가 정한 임무가 있다. '새엄마를 구해 돌아가기.'그리고 그는 탑의 상층에 이르기 위해 순례처럼 보이는 모험을 떠난다. 그가 겪은 경험들은 일종의 '수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과거의 상처가 있고, 극복해야 될 '엄마'에 대한 관계정리가 있다. 엄마의 여동생을 (21세기의 현재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종종 있었던) 새엄마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해 탑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을 원인으로 죽은 엄마가 불로 마법을 쓰는 사람으로 나오고, 어린 시절의 엄마와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대들~>에는 새가 많이 나온다. 영화가 별다른 예고편이나 줄거리에 대한 정보 없이 마케팅을 시작했을 때, 나는 포스터에 나온, 간단한 스케치로 그려진 왜가리의 얼굴이 꽤 멋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 전, 왜가리를 닮은 새를 보면 꼭 이 영화가 생각나고, 독일에서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깐. 새 부리 밑에 또 다른 눈이 있는 것을 그때도 보았고, 그래서 그것이 어떠한 탈의 형태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를 봄으로써 어느 정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맞는 추리였음을 깨달았다. 왜가리는 두 가지가 공존하는 새라고 영화에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거짓과 진실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주인공을 '꾀는' 존재임과 동시에 나중에는 친구가 되어 '동행'하는 존재가 된다. 마히토의 화살에 의해 뚫린 부리의 구멍은 마히토가 나무를 깎아 채워주기도 한다. 한 편, 부정적인 면이 더 강조된 새들도 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히치콕의 <새>또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대들~>에선 펠리컨과 앵무새가 그렇다. 펠리컨은 미히토가 처음 다른 세계로 떨어졌을 때, 그를 죽음으로 내보는 존재면서도 환생을 막는 존재기도 하다. 실제 세상에서도 펠리컨은 물체를 보면 우선 입으로 삼키려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먹어치워 없애버리는 존재, 윤회 자체를 막는 존재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아이를 물어다 준다는 '황새'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위치로 설정된 것 같다. 



하지만 그로테스트한 존재는 앵무새들이다. 마히토가 떨어진 세계에서 앵무새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색색깔의 몸을 가진 그들은 사람을 먹어치운다는 설정이다. 두툼한 몸체 뒤에 칼과 갖가지 조리도구를 들고 시시각각 마히토를 노린다. 탑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면, 폭식을 위해 무언가를 잘라내고, 먹고 싶어서 달려드는 무자비한 존재가 따로 없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그가 설정했던 시간대인 2차 세계대전 시대의 군인이나 전쟁을 비유한 것처럼 느껴졌다. 시골에 도착했을 때,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까지 모조리 군대로 징집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일본의 전쟁 범죄 사실과는 별개로, 모든 전쟁에서는 사람들이 끌려가고 희생된다. 인간이 잡아먹힌다는 설정은,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인간의 비유라고 생각된다. 또한, 앞서 말한 펠리컨이 날면서 환생할 존재들을 잡아먹는 것은, 마치 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을 보아하니,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나 폭격기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앵무새 또한, 현실 세계로 나왔을 때 나약해지지만 사람들에게 오물을 뒤집어 씌우는 행동, 그러니까 무언가를 배출해서 떨어뜨리는 것도 폭격을 생각나게 했다.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앵무새는 무자비한 일을 하는 '사람'자체에 대한 모사임과 동시에, 계속 반복되는 전쟁이라는 파괴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자, 그래서 영화의 제목처럼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아야 될지 결정을 했는가? 조금 진부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질문에 답을 한다면 '그렇다'가 되겠다. 마히토는 탑에서 큰할아버지로부터 탑을 포함한 환상세계의 상속을 여부를 질문받지만 거절하고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택한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지만, 큰할아버지의 탑은 순백의 돌로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다. 마히토는 이것을 물려받아 아슬함을 유지하면서 탑을 완성하는 것을 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탑은 앵무새 왕이 와서 무너뜨리고, 칼로 반을 내면서 무너진다. 이제 그들은 상상 속에 머무를 수 없다. 각자 다른 시간에서 온 존재들은 자신들의 사명감을 가지고 탑에서 탈출한다. 히미는 현실로 돌아가 훗날 마히토를 낳는 것을 선택하고(비록 자신은 병원의 화재로 죽을 것이지만), 나츠코 역시 현실로 돌아가 아이를 낳는다.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잉태와 출생이 결정되는 한편, 큰할아버지라는 존재와 마법이 걸린 돌은 소멸을 맞는다. 결국에 영화가 말하고자 싶었던 것은 나아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온갖 사건이 일어난 뒤에 결국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어찌 보면 보수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번 작이 그의 은퇴작이라는 기사가 있었던 것처럼, 확실히 이번 작에서는 그가 경험한 것들이 상당수가 나온다고 나중에 검색을 해보면서 알았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대들~>의 '마히토'와 '큰할아버지'에 자신을 투영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농담으로는, 지브리 스튜디오를 살리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미히토'를 그리면서도, 이제 자신의 영화인생을 정리하면서 후계자들에게 이제 어떻게 해볼래?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일지도. ENDE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23년 9월~12월의 영화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