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파트는 이제 완전한 계급의 울타리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혹은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아파트의 시세를 확인하고, 이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아파트를 둘러싼 온갖 지리적 정보들은 '호재'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아파트를 계급화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돌았다. 아파트는 클로스터화(化)되어 서로 다른 계급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다.
봉준호는 <기생충>에서 한국의 계급화된 사회에 대한 그의 회의론을 전 세계에 알렸고, 그가 가진 계급에 대한 생각은 그의 전 작품들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플란다스의 개>역시 아파트가 주 공간이다.)
아파트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계급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계급과도 이어진다. 아파트가 지어지는 프로세스에는 건축회사부터 시작하여 일용직까지 이어진다. 일용직들은 보통 그 일을 수십 년 해온 십장들과 일당을 벌기 위해 온 사람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무시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구성된다. 이러한 구조는 철저히 자본주의 하에서 원가절감을 위해 일어난 일의 결과다.
아파트는 겉으로 보아서는 럭셔리한 느낌을 주지만, 그 안의 모습들은 몇 년 전부터 일어난 이러한 원가절감에 대한 이슈로 인해 곪아있다. 재료의 양이 적게 들어가고, 그 재료를 만드는 사람들 역시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감시는 뒷돈으로 무마되고, 사고가 터졌을 땐 서로 모르쇠로 일관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라는 허울 같은 계급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보인다. 부동산 가격이 비싼 곳에 청약이 시작되면, 당첨률은 복권의 그것을 상회한다.
보수 정부에서는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세금으로 그 계급을 계속 유지하는 쪽으로 정책을 내고, 규제를 없애준다. 그 결과 콘크리트 건축물은 오래 지속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건축되고, 그 재건축의 질은 그전보다 형편없어졌다.
그 아파트는 새로운 재건축이 진행되기 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폐허의 전조들을 입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발견한다.
21세기 신우생학
현재는 여느 때보다 개인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혹은 틱톡에 이르기까지 개인은 이제 방송국이나 에이전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중앙 집권적인 미디어는 서서히 힘을 잃고 있고 정치의 장(場) 역시 조금씩 이동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의 중요 전달매개체는 영상이고, 이것들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자극한다. 이전보다 더욱 시각적 정보가 범람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그 치우쳐진 감각의 노예가 된다. 더욱더 자극적인 주제와 영상, 초당 도파민의 분출 속도가 알고리즘을 지배한다.
시각적인 정보의 의존성이 커지면서 한편으로는 과거 어느 시점보다 외모가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포털에서는 몸매가 드러난 옷을 입은 채 스윙을 날리거나 페달을 밟는 여성들의 클립이 여과 없이 노출된다. 쇼츠와 릴스와 같은 다른 플랫폼의 영상들도 마찬가지다.
몇몇은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제품광고를 하며, 조회수를 위시하여 광고료를 받아간다. 플랫폼은 광고비를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알고리즘으로 이끌기 위하여 더 선정적인 영상들을 올린다. 영상은 적법한 프로세스가 아닌 방식으로 참조되고 이는 다시 짤이라는 형태나 원본의 해상도가 해체된 상태로 또다시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100년 전에는 가능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자본을 모은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보며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날 때도 있지만 외모지상주의의 농도는 더 짙어져서, '환생'아닌 이상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비관론에 빠지기도 한다.
2020년대가 시작되면서 이제는 포르노로 돈을 버는 것은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포르노 역시 사업이고, 여기에는 기획자/촬영자/스텝/배우에 이르는 인적자원이 투입된다. 하지만 직간접적인 삽입 없이도 그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도 있다.
새로운 플랫폼에서는 개인방송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어필할 수 있고, 유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투입되는 자본은 이전보다 적고, 수입은 안정적이다. OTT나 구독서비스는 귀찮음에 의해 영속되는 모델이다. 한번 구독을 시작하면, 구독을 취소하는 프로세스는 귀찮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
유튜브에서는 얼굴과 몸매를 클로즈업하며, 그들의 영상 조회수가 몇백만인지 혹은 하루에 후원금으로 얼마를 벌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자랑스럽게 혹은 부끄럽게 그 액수를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노동이나 지식의 가치는 21세기 신우생학에 밀려 서서히 낮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