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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Sep 28. 2024

<핼러윈>

초단편소설 - 5



그는 전날의 숙취 때문에 잠에서 깼다. 그의 회사에서는 이번 달 말까지 진행하는 정기 사내 소방 훈련이 있었고, 전날에 그 건으로 회식을 했다. 회식 자리에는 그와 같은 사무직 말고도 방재센터에서 일하는 소방대원들도 참석했다. 평소에 불과 물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불판에 갓 구워진 뜨거운 고기도 뜨거운 내색도 없이 먹었고, 찬 술로 위를 식히는 것도 아주 능숙했다. 그는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사원이었다. 그의 바로 위 선배와 그의 나이 터울은 십 년이었다. 당연하게도, 회식 자리를 잡고 계산하는 일 또한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 되었다. 테이블을 이리저리 옮기며 잔을 비우고 따르는 것도 그의 일 중 하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그런 일에 능숙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잘했다. 불을 싫어하지만 불을 잘 끄는, 그런 일에 비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을의 소방 훈련은 다른 때 보다 더 길었다. 건조한 가을에는 불이 더 쉽게 난다. 그리고 몇 주 전에는 그가 일하는 사업장 바로 옆 다른 공장에서 가스 누출로 인한 화재 사고도 있었다. 그는 한 번도 대화한 적도 없는 사장의 지시를 몇 단계를 거쳐서 받아 일주일의 소방 훈련을 계획했다. 그는 방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공부를 했고, 그런 삶을 살아왔다. 이랬던 그가 그의 회사에서 생산하는 제품, 그러니까 그가 전공한 과목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물질의 생산과는 하등 관련 없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의 동기들이 제품 개발과 분석을 하고, 라인에서 불량이 난 원인을 분석할 동안 그는 소방과 관련된 자격증을 준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도 벌써 1년이 됐다. 가끔은 회사에 다니면서 거기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의아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전 직장을 생각하면 지금이 나았다. 그는 지금 회사 전에 두 개의 회사에 다녔다. 지금보다 더 산골에 있던 두 회사. 어두침침한 공장 내부, 일이 끝나면 매일 회식에 붙들려 나가던 자신을 생각하며 현재를 다행이라 여겼다.


지금 그의 회사는 분명히 나쁘지 않았다. 그는 점심을 먹고 식당 건물 앞에 있는 운동장을 걸었다. 축구장 크기의 탁 트인 인조 잔디 구장은 식사 후의 여유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가을이면 구장을 빙 둘러치고 있는 단풍과 은행이 색색깔로 치장됐다. 어쩌면 식사 후 운동장을 걷는 일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개발팀에 있는 다른 동기와 같이 운동장을 돌았다. 동기는 그와 같은 학번, 같은 과를 나온 이였다. 출신학교를 밝히는 일이 흔하지 않아 그는 그 사실을 같은 사업부에 내려와서야 알았다. 동기를 만나면 늘 상 나누는 이야기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어제 회식이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하면 동기는 어제는 아홉 시까지 야근을 하다 갔어.라는 대화가 이어졌다. 회사에서의 삶이 힘들고, 그것을 혐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계속 입에 담게 됐다.


오후 근무가 시작됐다. 며칠 사이 비가 오면서 바람이 칼을 갈았는지 외투 사이로 급습하면서 온몸이 떨렸다. 그래도 오늘이면 외부에서 진행하는 소방 훈련 마지막 날이라 그 바람도 오늘만 참으면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대피 훈련으로 운동장에는 각 건물 안에 있는 부서 사람들이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해가 지면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다. 소방 훈련은 크게 두 가지 체험으로 구성됐다. 하나는 소화전을 이용한 방수였고, 다른 하나는 소화기를 이용한 분사였다. 직원들은 직접 방화복을 입고 물을 쏘는 체험을 했다. 그는 옆에서 조용히 그것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자신의 현재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일곱 시에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삶. 배운 것과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 회식 장소를 잡고 사람들을 응대하고 법인카드로 몇십만 원의 값을 계산하는 삶. 앞으로도 이런 삶을 며칠이나 더 이어가야 할까. 그건 그도 알 수 없었고 훈련 장소에 있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체험을 하고 있던 곳에서 물줄기의 방향이 바뀌어 그에게 물이 튀었다. 시간을 맞추기라도 한 듯 바람이 불어 소화기의 백색 분말이 그를 덮쳤다. 그는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졸업식을 마친 학생의 모습이 됐다. 사람들이 몰려와 괜찮냐고 물었고, 그는 그저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친 건 무언가를 바꾸고 싶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일도, 회식 장소를 잡는 일도. 그의 주변이 그에게 시키는 대로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는 것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몇 주 전의 화재 사건도 그냥 자연스럽게 두었기 때문에 일어난 건 아니었을까. 옷이 엉망이 된 그는 회사 내 샤워장으로 가서 몸을 씻었다. 따뜻한 물이 자신을 덮쳐왔고 그는 그 자세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일주일간 진행한 소방 훈련의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 몇 월 몇 일. XX 부서 참석 00명 불참 0명. 교육내용 : 직원들에게 화재 및 방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설명과 참여형 교육을 진행했음. 참여형 교육 : 소화전 사용법 및 소화기 사용법 숙지.


그가 기숙사로 다시 들어온 시간은 밤 열 시간 넘은 시각이었다. 샤워를 한 번 더 한 뒤 그는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엎어져 버렸다. 평소라면 그가 보고 싶어 찜해 두었던 영화를 보며 잠에 들었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 볼 영화는 많고, 이 회사에 다닐 날도 많이 남아 있으니까. SNS를 보다가 그는 연락한 지 오래된 뉴욕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이 제다이 복장을 하고 사진 찍은 것을 보았다. 그제야, 그는 오늘이 핼러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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